재,보선으로 大權까지 거머쥔 경우및 재보선-오묘한 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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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53 한준구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 댓글 0건 조회 1,469회 작성일 2014-07-06 03:18본문
박근혜·김대중,
재,보선으로 入門해 ^^大權 잡았다
수정: 2014.07.05 15:48
등록: 2014.07.04 15:04
재보선 통해 떠오른 인사들
재보선이 세간의 관심을 끄는 가장 큰 이유는 주요 정치인들의 등용문이나 복귀 무대로 활용됐다는 데 있다. 역대로 재보선을 발판으로 대선주자
반열에 올라 실제 대권까지 잡은 경우를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국민들의 관심은 높지 않지만 ‘그들만의 리그’를 펼치는 정치인들에게 있어서는
상징적인 의미를 지니는 하나의 승부처라 할 수 있는 셈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1998년 4ㆍ2 재보선을 통해 정계에 발을 디뎠다. 박정희 전 대통령 사후 사실상 공식적인 외부활동을 자제한 채 칩거에
들어갔던 박 대통령은 당시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후보로 같은당 김석원 전 의원의 사직으로 공석이 된 대구 달성에서 치러진 보궐선거에서
당선되면서 본격적인 정치인으로서의 활동을 시작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도 재보선을 통해 공식적으로 정계에 입문한 케이스다. 전남 목포와 강원
인제에서 몇 번의 고배를 맛 본 김 전 대통령은 61년 5ㆍ13 재선거에서 민주당 후보로 민의원에 당선됐다. 하지만 5ㆍ16 군사 쿠데타로 인해
김 전 대통령은 당선이 되고도 국회에 등원조차 하지 못했다. 정치입문은 아니지만 노무현 전 대통령도 98년 7ㆍ21 재보선에서 새정치국민회의
후보로 당시 한나라당 이명박 전 대통령이 서울시장 경선 출마를 선언하며 의원직을 사퇴한 서울 종로에 출마해 당선되면서 6년 만에 화려하게 국회에
복귀했다.
야권 대선주자들도 재보선 통해 등장
공교롭게 현재 야권의 잠룡으로 불리는 인사들도 재보선을 통해 본격적으로 정계에 입문한 케이스가 많다. 대표적인 경우가 안철수 새정치민주연합
공동대표다. 안 대표는 2012년 대선에서 문재인 당시 민주당 후보와의 단일화 진통 끝에 예비후보직에서 사퇴했다. 잠시 휴지기를 가진 안 대표는
이듬해 열린 4ㆍ24 재보선에서 진보정의당 노회찬 의원이 통신비밀보호법 위반으로 의원직을 상실한 서울 노원병에 출마해 당선되면서 사실상
본격적으로 제도권 정치에 발을 들여 놓기 시작했다.
6ㆍ4 지방선거를 통해 야권의 유력한 대선주자로 떠오른 박원순 서울시장도 재보선을 통해 입성한 케이스다. 박 시장은 2011년 당시
한나라당 오세훈 서울시장이 무상급식 주민투표 패배에 대한 책임을 기조 사퇴한 서울시장 선거에 나서 한나라당 나경원 후보를 꺾고 당선됐다. 더구나
당시 인지도가 미약했던 박 시장은 각종 여론조사에서 지지율 50%를 상회하던 안철수 대표와 17분간의 대화 끝에 단일화를 이뤄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번 7ㆍ30 재보선 출전이 유력시 되는 새정치민주연합 손학규 상임고문은 재보선과의 인연이 깊다. 손 고문은 93년 4ㆍ23 재보선에서
통일국민당 윤항렬 후보의 사망으로 공석이 된 경기 광명 보궐선거에 민주자유당 후보로 출마해 당선되면서 본격적인 정치인의 길을 걷게 된다. 이후
손 고문은 2011년 4ㆍ27 재보선에서 당시 한나라당 임태희 의원이 청와대 비서실장으로 임명되면서 사퇴한 경기 성남 분당을에 민주당 후보로
출마해 예상을 뒤엎고 한나라당 대표 출신 강재섭 후보를 꺾고 당선됐다.
새누리당 7ㆍ14 전대는 재보선 출신 후보들의 경합장
“유혈이 낭자하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로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는 새누리당 7ㆍ14 전당대회의 양강 후보인 서청원 김무성 의원은 공교롭게
19대 국회 재보선을 통해 입성했다. 김무성 의원은 2013년 4ㆍ24 재보선에서 선거사무장의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당선 무효형을 받은 이재균
의원의 의원직 상실로 공석이 된 부산 영도에 출마에 당선됐다. 김 의원은 19대 총선 공천에서 탈락했지만 이를 수용하고 2012년 대선에서
박근혜캠프 총괄본부장으로 활약하면서 대선 승리의 발판을 마련한 뒤 이듬해 재보선을 통해 공식 복귀한 것이다.
서청원 의원도 6개월 뒤에 치러진 10ㆍ30 재보선에서 새누리당 고희선 의원의 사망으로 보궐선거가 치러진 경기 화성갑에서 당선되면서 정계에
복귀했다. 재보선을 통해 복귀한 두 거물이 새누리당의 당권을 놓고 한 치 물러섬 없는 경쟁을 펼치고 있는 셈이다.
역시 전대주자로 나선 김태호 의원도 국무총리 후보자에서 낙마한 후 절치부심하다 2011년 4ㆍ27 재보선에서 당시 민주당 최철국 의원이
정치자금법 위반으로 의원직을 상실한 경남 김해을 보궐선거에 출마해 당선되면서 복귀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역시 전대에 도전하고 있는 홍문종
의원도 2003년 4ㆍ24 재보선에서 당선된 바 있어 9명의 전대 주자 중 4명이 재보선을 치른 경험이 있다.
김성환기자 bluebird@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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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권 심판론 작용하지만
인물·투표율도 큰 변수로
수정: 2014.07.05 15:49
등록: 2014.07.04 17:05
[H Cover Story]
역대 재보선으로 본 여야 승패의 법칙
통상 재보궐 선거는 ‘여당의 무덤’으로 불릴 정도로 집권여당에게 불리한 게 사실이었다. 일종의 중간 평가 성격으로 정권 심판론이 강하게
작동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누가 출마하느냐, 그리고 투표율에 따라 여야 승패의 법칙은 얼마든지 뒤바뀔 수 있다.
선거 공백기, 여당에 보내는 중간 경고장
역대 국회의원 재보궐 선거 결과를 살펴보면, 어느 진영이 정권을 잡든 ‘여당 필패론’이라는 공식이 대체로 유지돼왔다. 국민의정부와 참여정부
당시 치러진 총 13차례 재보궐 선거 승리는 모두 야당 몫이었다.
특히 총선ㆍ대선ㆍ지방선거 등 큰 선거가 없는 해 치러진 재보선 승패는 더욱 쏠렸다. 예컨대 2001년 10ㆍ25(3곳), 2005년
4ㆍ30(6곳)과 10ㆍ26(4곳) 선거에서 여당은 한석도 건지지 못했고 당시 야당인 한나라당이 싹쓸이했다. 반대로 이명박정부 들어와서 치러진
2009년 4ㆍ29(5곳)와 10ㆍ28(5곳) 선거에선 여당으로 바뀐 한나라당은 2곳만 차지하고 나머지는 야당에게 내줬다. 2011년 4ㆍ27
선거에서도 ‘정권심판론’을 전면에 내걸고 출마한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에게 한나라당은 텃밭인 분당을을 빼앗기기도 했다. 이처럼 재보선은 ‘선거
공백기’에 쌓여 있던 불만 여론을 정부여당에게 분출하는 중간 경고장 역할을 톡톡히 해왔다는 점에서 분명히 야당에게 유리한 선거 판이다.
보상심리로 인물 경쟁력이 크게 좌우
그러나 구도만 믿고 인물에 신경 쓰지 못하다 야당이 패배한 경우도 있다. 2010년 7ㆍ28 선거 당시 4대강 사업과 민간인 불법 사찰
파문으로 민심 이반이 심각해 야당이 압승을 기대했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민주당 3곳, 한나라당 5곳으로 도리어 야당이 참패했다. 특히 서울
은평을에서 야당은 민주노동당, 국민참여당 후보와 단일화 문제로 씨름을 벌이다 선거 이틀 전에야 가까스로 민주당 장상 후보로 단일화하는 내홍 끝에
‘왕의 남자’로 불리던 이명박 대통령의 최측근인 한나라당 이재오 후보에게 패하며 충격에 휩싸였다. 재보궐 선거의 경우 자신이 뽑은 지역 일꾼이
떨어져 나갔다는 허탈감에 일종의 보상심리로 거물 정치인을 선호하는 경향이 여느 선거보다 더 크다는 게 확인된 대표 사례다.
지방선거 직후 여름 재보선은 투표율이 관건
역대로 재보선은 투표율이 낮았지만, 특히 지방선거 직후 실시되는 이른바 ‘여름 재보선’의 경우 투표율은 더욱 떨어지는 경향을 보였다. 다른
선거가 없었던 2011년 4ㆍ27과 2013년 4ㆍ24 재보선 투표율은 각각 43.5%, 41.3% 등을 기록했지만, 지방선거 직후 실시된
2002년 8ㆍ8(29.6%) 2006년 7ㆍ26(24.8%) 2010년 7ㆍ28(34.1%) 재보선 투표율은 40%대에 한참 못 미쳤다. 불과
1,2개월 전 실시된 지방선거로 인해 정치적 피로감이 더해진 데다 여름휴가철과 겹쳐 젊은 층의 지지를 끌어내야 하는 입장에선 불리할 수밖에
없다. 실제 역대 지방선거 직후 실시된 4차례 재보선에서 투표 참여가 높은 50대 이상 노년층의 절대적 지지를 받는 한나라당은 야당이나 여당이나
공수가 바뀌더라도 모두 승리를 거뒀다. 배종찬 리서치앤리서치본부장은 “아무리 정권심판론이 비등하고 직전 지방선거에서 승리했더라도 그 지역
유권자들을 투표장으로 끌어오지 못하면 어떤 거물이 와도 보수 지지층의 결집을 넘어서는 게 결코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강윤주기자 kk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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