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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의정 ^류성룡--明 ^이여송將軍-무릎꿇었다? 및 ^시진핑 以夷制夷 外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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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53 한준구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 댓글 0건 조회 1,242회 작성일 2014-07-12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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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우리가 以夷制夷 하는 건가?
 
 
or, 중국 당하는 이이제이인가?
 
 
선우정 국제부장
선우정 국제부장
'중국의 근대'를 연 혁명가 쑨원
 
1924년 일본에서 한 연설에 이런 대목이 나온다.
"중국은 왕도(王道)에 의해 그들을 감화시켰고, 감동을 한 그들은 조공했다."
'그들'은 한국을 포함한 주변국을 말한다.
'스스로 중국을 상국[上邦·상방]으로 숭배했고 중국의 속국[藩屬·번속]이 되고자 했다'는 것이다.
이때 식민지 한국의 한 신문사 특파원이
"한국의 독립은 왜 언급하지 않았느냐"고 물었다.
쑨원은 "일본에서 그 문제를 거론하고 싶지 않다"고 냉랭하게 답했다.
당시 일본은 '대(大)아시아주의'를 주장하던 쑨원의 후원자였다.


90년 후 중국 지도자의 역사 인식은 흘러간 세월만큼 달라진 듯하다.
시진핑 중국 주석은 "임진왜란이 발발했을 때 양국 국민은 적개심을 품고 어깨를 나란히 해 전쟁터로 같이 향했다"고 연설했다.
'어깨를 나란히 했다[竝肩·병견]'는 대목이 인상적이다.
쑨원의 연설은 우리를 욱하게 하고
시진핑의 연설은 우리를 들썩이게 하지만,
역사를 읽으면 다른 기분을 느낀다.

시진핑이 '어깨를 나란히 했다'고 말한 임진왜란 당시
우리 임금의 중국관(觀)을 상징하는 사건이
'걸내부(乞內附)' 파동이다.
'내부'란 한 나라가 다른 나라 속으로 들러붙는 것을 뜻한다.
백성과 강토를 버리고 중국에 복속하겠다고 요청한 것이다.
그럼에도 중국은 개전 초기 일본과 조선의 결탁을 의심했다.
임금은 정성을 다해 숭배했지만
중국은 조선을 일본과 같은 '이(夷)'의 일부로 본 것이다.
명나라의 파병은
조선을 위해서가 아니라
전장(戰場)의 요동 확대를 우려해 내린 고육책이었다.
중국은
유구(琉球)국을 통해
일본의 목표가 중국 침략이란 사실을 조선보다 먼저 파악했다.

조선 땅에 진입한 명군(明軍)에 관한 기록은 비참하다.
일국의 재상이라는 영의정
군량을 제때 못 댄 잘못으로
明나라 장수 이여송 앞에 꿇어앉아 사죄했다.
굶어 죽는 시체가 거리를 덮던 때였다.
영의정 ^^류성룡
"나랏일이 이 지경에 이른 것을 생각하니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러내렸다"고 기록했다.
시진핑이 '한·중 전우애(戰友愛)'의 상징으로 언급한 장수 진린에 대해
그는 이렇게 적었다.
"그 군사가 (조선 관료의) 목을 끈으로 묶고 끌고 다녀 얼굴을 피투성이로 만들었다.
말렸으나 듣지 않았다."
진린과 전우애를 나눴다는 이순신도
명군에 대해 "인명(人命)과 재물을 빼앗으니 백성이 온다는 소문만 듣고 도망갔다"는 기록을 남겼다.
"명군이 데려간 조선 여자가 수만 명이었고,
조선 백성 사이에 '왜적은 얼레빗, 명군은 참빗'
이란 이야기가 돌았다"고 기록한 사서(史書)도 있다.
왜적의 약탈은 부스러기라도 남기지만,
명군의 약탈은 싹 쓸어버린다는 뜻이다.
선의 임금·재상·백성 누구도
중국과 '어깨를 나란히' 한 적이 없었다.

물론 그들이 없었으면 조선은 망했을 것이다.
그래서 조선은
'재조지은(再造之恩·망하게 된 것을 구해준 은혜)'이란 깃발 아래
썩어 없어진 한족(漢族)의 명나라를 몇 백 년 동안 숭배하다가
결국 내 나라까지 잃었다. 빚잔치는 100년 전에 끝난 것이다.

우리는 일본에 대해선 시시콜콜 과거를 따지지만
중국엔 관대하다.
중국의 침략사를 북방 오랑캐로 한정하고
한족의 중국을 우리와 일치시키는 '소중화(小中華)' 이념이
남아 있기 때문이란 관점도 있다.
특히 미국과 일본에서
이런 한국관(觀)이 확대되고 있는 것을 유의해야 한다.

 
21세기 중국의 화이(華夷) 질서에서
 
 
우리는 어디에 위치하고 있을까.
여전히 '이(夷)'에 위치한다면,
지금 우리는 중·미·일 대립이란 큰 그림 속에서
중국의 전통적 '이이제이(以夷制夷)' 전략에
장기 말처럼 놀아나고 있는 것이다.
@+프리미엄조선측 및 ^^선우정 기자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
 
 
6.25전쟁
"위대한 抗美援朝(항미원조) 전쟁"
이라 했던 ^^시진핑 主席
박정훈 디지털 담당 부국장 사진 박정훈 디지털 담당 부국장
우리 대한민국이
중국 앞에서 이 정도 대접받고 큰소리도 치는 것은?
아마도
서기 668년의 고구려 멸망 이후 처음일 것이다.
수(隋)·당(唐)에 맞짱 뜨던
고구려가
서기 668년이후
한반도
중국에 ^^시달림당하는 ^^약자(弱者) 신세였다.
중국은 한반도에 대해 패권국(覇權國)으로 군림했고,
군사적으로 침략한 일도 잦았다.
6·25 당시 코앞까지 왔던 남북통일을 무산시킨 것도 중국이었다.

시진핑 중국 주석의
적극적인 대한(對韓) 접근을 보고
우리가 많이 컸다는 것을 실감했다.
긴 역사적 맥락에서 볼 때
최근의 한·중 관계는 극히 이례적인 시기다.
韓·中 관계 2000년사(史)에서
두 나라가 이렇게 대등한 밀월(蜜月)을 누렸던 적이 없다.
지금 우리는 '단군 이래' 처음으로
중국보다 잘살고,
경제·기술력과 문화·소프트 파워의 질적(質的) 수준에서 앞섰다.
또한 우리는
동북아 지정학(地政學) 게임의 균형추를 좌우할 핵심 플레이어가 됐다.
시 주석의 '구애(求愛)'도 한국이 필요했기 때문일 것이다.

시 주석이 1박 2일간 쏟아낸
우호·친선의 수사(修辭)는 한국인들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가 한국을 '친척집'에 비유한 것은 진심일 것이다.
그러나 양국 관계에 관한
시진핑 主席의 ^^歷史觀
너무 낭만적이거나 편의적이라는 지적도 있었다.
그가 한·중 관계사(史)를
'수천 년 두터운 정(情)의 역사'로 풀어낸 것까진 좋았다.
그런데 자기 편리한 것만 골라서 얘기하는 바람에
한국인의 평균적인 인식과는 ^적지 않은 격차를 보였다.

시 주석은 서울대 강연에서
"역사적으로 위험이 발생할 때마다 양국은 고난을 함께 극복했다"고 말했다.
그는
임진왜란과 일제(日帝) 시대 한·중의 공동 항쟁을 예로 들었다.
맞는 얘기다.
그런데 우리 기억에서 중국
우군(友軍)보다 침략자였던 경우가 더 많았다.
고구려는 수 양제와 당 태종의 침략을 당했고,
(고구려 관련 아주 유익한 글 시리즈는? 동아일보 검색-윤명철을 치고
읽어보면 정말 재미있는 고구려 이야기를 시리즈로 읽어 보실 수 있는
행운에 접합니다. 윤명철 교수는 위대한 고구려 연구 학자입니다)
고려는 원(元)의 지배를 받았다.
조선왕조의 병자호란 때
물론 지배층이 漢族은 아니었지만
청(淸)
조선 임금을 무릎 꿇리고 절하게 하는 '삼전도의 굴욕'을 자행했다.
1950년 6·25 때만 해도
중국(당시 중공)
수백만명을 한반도에 투입하여
우리에게 총부리를 겨눈 주적(主敵)이었다.

여기까진 먼 옛날의 과거 역사니까 하고 넘어간다고 치자.
문제는
중국의 '역사 침범'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고구려를 자기네 역사에 편입하려는
중국'^^동북공정(東北工程)'
여전히 현재 진행 중이다. (중국의 수뇌부는 이 공정을 위해 엄청난 돈을
투자 및 역사 왜곡을 일삼아 우리의 고구려 발해등은 중국의 지방정권이라고
못을 박고 있다)
(그리고, 그들은 서남공정, 티벳공정을 통해 그들의 소수민족 55개 민족을
통일적다민족국가론 이란 논리를 앞세워 중국의 변방단속에 특히 유의를
하고 있으며 이 와중에 이슬람교의 위구르에선 위구르족의 차별대우에 대한
폭탄 테러등을 지속적으로 시도하고 있는 중임_
아리랑, 단오절,온돌을 ^^중국 것이라 주장하고,
김치의 연고권까지 내세우고 있다.
(과학史에 정통한 ^^박성래 前한국외국어대학 교수는 해시계,물시계도 중국것으로 이미 넘어가고 있다고 8년전 쯤 그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이런 중국의 ^^역사 팽창주의
언제 폭발해 우리를 향해 ^^비수로 날아올지 모른다.
'두터운 情의 역사'로 간단히 정리하고 넘어가기엔
아슬아슬한 상황이다.

우리에겐
분출하는 중화(中華) 민족주의의 폭풍에 당했던 기억들이 있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 때
중국 관중은
한국 선수들만 찍어 야유를 보냈고,
성화 봉송 과정에선
중국인 수천 명이
서울 한복판에서 난동을 부렸다.
중국군 참모총장이
한국 국방장관을 앞에 놓고
일장 연설하는 무례(無禮)도 있었다.
심지어
불법 조업 중국 어선을 단속하자
중국 외교부 대변인이
'문명적인 법 집행'을 요구하는 적반하장까지 했었다.

시 주석이 마음먹고 보내온 친선의 제스처에
재를 뿌릴 생각은 없다.
그러나 편리하게 좋은 면만 내세우며 덮고 넘어갈 만큼
한·중 관계의 기반이 단단하지는 않다.
시 주석은
일본의 우경화에 대해
두 나라가 공동 전선을 펼 것을 제안했다.
하지만 한·중 間에는
일본 못지않은, 어쩌면 일본보다 더할 갈등 요인이 수두룩하다.

'세월호' 사고로
한국 해경의 손발이 묶인 사이
서해 앞바다엔 불법 조업하는
중국 어선들이 가득 깔렸다.
이어島를 둘러싼
EEZ(배타적 경제수역) 협상에서도
중국은 한 치도 양보할 생각이 없어 보인다.
그래도
일본은 과거사의 원죄(原罪)가 있기에
우리가 뭐라 하면 움찔하는 시늉은 한다.
그러나 중국은 그렇지 않다.

시 주석은
副주석이던 2010년,
6·25전쟁을
'위대한 항미원조(抗美援朝·미국에 대항해 북한을 돕는) 전쟁'
이라고 공개 발언한 일이 있다.
6·25 60주년 좌담회에서
중국군의 참전에 대해 그는
"(미군의) 침략에 맞선 정의로운 전쟁이었다"고 했다.
시 주석이 6·25에 관한
중국 공산당의 공식 견해를 따르는 것은 당연하다.
다만 그만큼 역사 인식의 격차가 크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시 주석이 한 상 가득히 차린 '중국 파티'를
우리가 마다할 이유가 없으나
너무 취해선 곤란하다.
파티가 끝나면 찾아올 숙취(宿醉)를 생각하면서
우리 페이스(pace)를 지키는 것이 좋겠다.

[출처] 본 기사는 프리미엄조선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프리미엄 조선 및 ^^박정훈 기자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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