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시대 북한의 미래를 둘러싸고 국내외에서 많은 논의들이 오가고 있다. 버락 오바마
미국 행정부가 북한이 변할 때까지 기다리겠다며 뒷짐을 지고 있는 상황에서 박근혜정부는 통일대박론을 들고나와
한·미 간 모종의 교감이 있는 게 아니냐는 관측도 있다. 미국의 한반도 전문가 중 대북정보를 가장 오래 다뤄온 로버트 칼린(67)이 최근 서울을
방문했다. 그는 미 중앙정보국(CIA) 근무 18년간 북한을 들여다본 데 이어 국무부 정보조사국(INR)으로 옮겨 또 14년간 동북아담당관으로서
북한을 다뤄온 인물이다. 40여년간 미 정부 안팎에서 북한을 관찰했고, 방북 횟수만도 30여 차례에 달한다. 미국에서 칼린만큼 북한의 속살을
속속들이 알고 있는 사람은 없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그는 미 정보기관의
분석맨으로 오래 활동한 때문에 대중적으로는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지난해 발간된 돈 오버도퍼의 ‘두 개의
코리아’(The Two Koreas) 제3증보판의 공저자로서 참여하면서 주목을 받았다. 지난 5월 하순 이 책의 국내번역 작업 협의차 방한한
그를 서울 시내 호텔에서 만나 얘기를 나눴고, 그가 참석했던 북·미 몽골접촉 등에 대해 지난 17∼18일 추가로 이메일
대화를 진행했다.
―미국의 대표적인 북한전문가로서 독자적으로 책을 펴내는 대신 워싱턴포스트의
전문외교기자 출신 오버도퍼의 ‘두 개의 코리아’ 공저자로 참여하게 된 배경이 궁금하다.
“나는 대중적으로 알려져 있지 않은
북한분석가지만 오버도퍼는 명성이 높은 원로저널리스트다. 그의 책은 한국전쟁 이후 2000년까지
기술되어 있다. 당시는 김대중정부와 빌 클린턴 행정부 시기여서 한반도 문제에 대한 낙관주의가 팽배해 있었다.
그런데 클린턴 행정부가 끝나고 조지 W 부시 행정부가 들어서면서 국면이 바뀌었다. 나는 오버도퍼의 책에 2000년 이후부터 요즘까지의 상황을
보완해 넣었다.”
―북한에 대해 제일 잘 아는 미국의 북한전문가로 알려져 있는데.
“내가 북한에 대해 정보가 많은
사람인지는 모르겠지만, 40년간 북한문제에 집중해오고 있다는 것은 사실이다.”
―북한을 너무 많이 알기 때문에 때때로 과도하게
북한에 대해 너그러운 입장을 취하는 게 아닌지.
“(웃으면서) 북한을 보는 것은 어떤 면에서 거울을 보는 것 같다. 모두 다 자기식
대로, 자국의 관점에서 북한을 보려는 경향이 강하다. 우리는 대개 우리 자신을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그것은 북한을 볼 때 좀더 분명해진다.
모든 사람들은 북한에 대해 놓치는 게 많다. 북한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북한을 볼 때 지적으로 정직하게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내가 40년간 북한을 분석하고 협상할 때 이런 원칙이 견지됐다.”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북한에 대해 너무 이해하려는 태도를
보이는 게 아닌가 하는 비판도 있다.
“북한 사람들은 나를 아주 터프하다고 보고 있다. 북한 사람들은 내가 북한을 너무 잘 알고
있어 북핵협상 때마다 강경한 입장을 견지했다고 비판까지 하고 있다. 한국의 일부 인사들은 나를 보고 북한을 변호한다(defend)고 하는데
동의할 수 없다.”
―귀하는 북한과의 협상에 있어 대화를 중시하는 비둘기파로 분류되는 게 사실이다.
“그건 잘못된
선입견이다. 내가 쓴 글이나 주장을 보면 내가 비둘기파가 아니라는 점을 알게 될 것이다.”
―어떤 면에서 아니라는
얘기인가.
“나는 내 생각에 동의하지 않는 이들과도 대화를 하면서 서로의 생각을 발전시켜야 한다고 보는
실용주의자다.”
인터뷰 후 그는 몽골로 이동, 로버트 아인혼 전 미 국무부 비확산 군축담당특보와 울란바토르에서 리용호 북한 외무성
부상을 접촉했고 이 뉴스는 최근 보도됐다. 이에 대한 의견을 물었더니 칼린은 18일 이메일에서 다음과 같이 밝혔다.
“몽골 미팅은
북한 인사들과의 통상적인 커뮤니케이션 차원에서 진행된 것이다. 그들이 지금 뭘 생각하는지, 원하는 게 뭔지에 대해 듣고 우리의 견해를 밝히는
자리였다. 그 어떤 것에 대한 합의가 있었던 자리는 아니다. 이번 접촉에 참석한 우리측(미측) 인사들은 모두 북한의 시각을 그대로 수용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그들과 직접 대면해 얘기를 들어주는 게 현 상황에서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지금은 미 정부 밖에서
북한분석가로 활동하고 있지만, 그래도 기회가 닿는 대로 북측인사들과 대면접촉을 해서 그들의 입으로부터 최근 상황에 대한 얘기를 듣는 게
필요하다는 차원에서 몽골 접촉이 이뤄졌다는 설명이었다.
―한국과의 인연은 언제부터 시작됐나.
“1973년 서울에 처음
왔다. CIA에서 일할 때인데 그때 서울은 지금과 정말 달랐다. 북한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북한이 얼마나 한국에 비해 뒤처져 있는가를 얘기하곤
했는데, 지난 40년간 남북한을 다 본 사람으로서 볼 때 요즘 북한은 한국의 70년대 같다. 1970년대 서울과 부산을 달렸을 때의 느낌을
요즘의 평양과 원산 등에서 받는다.”
그는 사진촬영을 위해 서울 중구 롯데호텔에서 조선호텔 쪽으로 걸어가면서 “여기는 1970년대
차이나타운이 형성되어 있던 곳이고 시티의 에센스였던 곳”이라고 회고했다. 그렇지만 어디에도 그 옛날의 흔적이 없어 아쉬웠다고 말했다. 그는
조선호텔 옆에 세워진 현대차 제네시스를 보고 “와우”라고 탄성을 내면서 유심히 브랜드를 살폈다. 그런 그에게 “현대차”라고 했더니 “내가
1981년부터 2년간 서울에 근무할 때 포니를 타고 다녔는데 현대차 수준이 여기까지 왔다니 놀랍다”고 했다. “몸집 큰 미국인에게 포니는 너무
작지 않았느냐”고 웃으면서 말을 건넸더니 “그 차는 작고 심플해서 좋았다”고 화답했다. 그의 머릿속에는 여전히 서울의 30∼40년 전 풍경이
뚜렷하게 남아있는 듯했다.
―서로 비슷했던 남북한이 40여년 만에 천양지차로 다른 사회가 됐다는 얘기인데 북한의 요즘에 대해선
어떻게 보는가.
“북한 경제는 회복되고 있다. 어떤 사람들은 평양만 그렇다는 얘기를 하는데 맞는 얘기다. 그런데 기억하는가. 한동안
서울이 한국의 상징이었다는 것을. 요즘 북한이 바로 그렇다. 평양에서만 좋아지고 있다고 하지만 평양이 북한인 것이다. 사람들은 북한의 전반적인
콘텍스트를 이해하기 전에 한 단면만 보고 결론을 내리려 한다. 그렇다 보니 잘못된 방향으로 생각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잘못된
대북인식이 잘못된 정책을 이끈다는 얘기인가.
“그렇다. 예컨대 이명박정부는 북한붕괴론에 입각해서 여러 주장을 펼쳤는데 잘못된
전제에서 나오는 정책은 잘못될 가능성이 크다. 컨틴전시플랜도 그렇다. 한·미 양국은 지난 25년간 잘못된
가정과 전제하에 대북 정책을 진행해온 게 많다.”
―박근혜 대통령의 통일대박론에 대해선 어떻게
보는가.
“한국에는 그것이 잭팟이나 보난자일 수 있지만 북한에는 재난이다. 그렇다면 그런 정책을 갖고 북한과 협상을 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한국에서는 정치적으로 통일논의는 많이 하지만 실제 준비는 별로 하지 않고 있는 것 같다. 북한의 어린이들은 치명적인 영양실조 상태에
빠져있다. 그 아이들이 어떤 시점에 지나게 되면 지적 저능상태에 빠지고 그것은 평생 회복되지 못하는 상태로 고착된다. 그런 아이들은 통일 후
한국에도 부담이 될 것이다. 그런 점에서 나는 북한에 대한 인도적 지원마저도 정치적으로 접근하는 한·미 양국의 정책을 이해할 수 없다.
90년대만 해도 미국은 북한의 식량부족사태 때 세계식량계획(WFP)이 요청하면 지원했다. 그런데 미국은 이제 식량 요청이 오면 정치적 조건을
먼저 계산한다. 이것은 도덕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다.”
―언제부터 미국이 인도적 지원에 있어 정치적 계산을 먼저 한 것으로
보는가.
“부시행정부 때부터다. 이명박정부도 대북비료지원 및 식량지원을 조건화했다.”
―이명박정부 때에는 천안함
폭침사건과 연평도 포격도발 사건이 발생해, 무조건적인 대북지원이 힘들었던 것 아니냐.
“천안함, 연평도 사건 이후 그리 오래지 않아
이명박정부는 북한과의
비밀 대화를 추구했다. 그간의 남북대화 과정을 보면, 갈등상황이 발생한 뒤에도 남쪽에서 그 같은 국면을 신속히
회복해서 대화재개를 하곤 했다.”
―적어도 노무현정부 때까지는 그랬던 것 같다.
“내가 ‘두 개의 코리아’ 북한편을
쓰면서 보니, 김대중정부는 물론이고 노태우정부 때 진지하게 북한과 대화했더라. 특히 노태우정부는 보수적이었지만, 아주 슬기롭게 북한과 대화하며
건설적인 조건을 만들어 나갔다. 왜 요즘의 한국정부는 다시 노태우정부 때처럼 정책을 펴지 못하는지 묻고 싶다.”
―노태우정부 때는
좋은 조언자들이 있었고 경제도 좋았다.
“그렇다. 당시 북한측은 아주 어려운 상황에 있었다. 나는 역사의 창문이 열리면 슬기롭게
기회를 잡고 진전시켜야 한다는 말을 자주한다. 창문이 열리면 움직일 준비를 하고 행동에 나서야 하는데 이명박정부는 그런 창문이 열렸을 때에도
기회를 잡지 않았다.”
―언제가 그런 국면이었는가.
“2007년 10월 부시행정부 말기에 그랬다. 그런데 그런 기회를
잡지 않고 넘겨버리면서 부정적인 일들이 일어났다. 두 개의 코리아 책에도 나쁜 결정, 나쁜 후속사건들이라고 썼다. 물론 북한만의
실수는 아니었고 한·미 양국도 모두 잘못된 선택을 했다.”
―나쁜 결정이라는 것은 무엇을
지칭하나?
“부시행정부가 했던 나쁜 선택은 2001∼2002년 대북 경수로 지원을 거부하면서 제네바 합의를 종식시킨 것이다.
어린아이를 목욕탕으로 던져버리는 것처럼 제네바 합의를 던져버렸다. 그 결과 진공상태가 조성됐고 현재까지 그 후유증을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
―이명박정부 때의 나쁜 선택, 나쁜 결정은 무엇이라고 보는가.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후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은 조문단을 보내면서 대화제의를 했다. 그런데 이명박정부는 이것을 받지 않았다. 그러면서 싱가포르에서는 비밀협상을 했다. 이것이
역효과를 낳았다. 2011년 김정일 사후 남쪽에서 조문단을 보내지 않은 것은 또 하나의 열린 기회를 스스로 닫은 것이다.”
―오바마
행정부는 전략적 인내를 주장하며 북한이 변화할 때까지 기다리겠다는 자세를 보이고 있는데.
“장자의 무위의 철학이라는 게 있는데
오바마 행정부의 대북정책도 그와 유사하다. 북한과 관련해 아무것도 안 한다는 게 입장이라면 입장이다. 북한이 변하기 전에는 아무것도 안 한다는
것인데 만약 북한이 핵을 개발하지 않고 있다면, 장거리탄도미사일을 개발하지 않는 상태라면 그 같은 입장이 좋은 정책일 수 있다. 그렇지만,
북한은 지속적으로 핵과 장거리미사일을 개발하고 기술을 진전시키고 있다. 그러니 아무것도 안 하고 기다린다는 정책은
위험하다.”
―미국의 한반도 전문가들 사이에는 귀하와 같은 대화파가 있는 반면, 헤리티지재단의 브루스 클링너 같은 대북제재
강화파도 있다. 이란제재와 같은 수준으로 대북제재를 해야 북한이 변화할 수 있다는 클링너의 주장은 이란 핵협상이
진전되면서 설득력을 얻고 있다. 최근엔 천영우 전 청와대 외교안보
수석도 유사한 주장을 펴고 있다.
“이란식 핵접근은 오직 이란에서만 가능한 것이다. 오바마
행정부에서 이란 및 북한에 대한 제재에 관여한 이와 얘기를 한 적이 있는데, 제재는 그 제재로 영향을 받을 대상이 있어야 효과를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란의 주 수입원은 원유판매다. 그런데 북한에게는 그런 게 없다. 이란에는 또한 중산층이 있어 제재에 타격을 받을 수 있는데 북한에는
그런 층이 없다. 클링너 같은 주장은 하나의 판타지다.”
―클링너의 주장이 판타지라고 일축하는 것은 좀 과한 것
같다.
“지난해 말 미국 TV프로그램에 클링너와 함께 출연해 논쟁을 한 적이 있다. 주장이 강하다고 해서 매력적인 것은 아니다.
글에서는 얼마든지 강경한 주장을 펼 수 있지만 그것을 얼마나 현실화할 수 있느냐가 문제다. 제재가 멋있는 개념이고 멋진 글로 표현할 수 있겠지만
현실에서 그대로 실행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대북 제재 시행에 있어 중국은 큰 구멍이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엄밀히 말해 개성공단은
유엔안전보장이사회 대북 제재의 위반이고 금강산관광도 재개될 경우 제재 위반이다. 박 대통령이 러시아와 협력해 북한 철도를 연결하겠다고 하는데
그것도 제재 위반이다. 한국은 안보리 제재 체제를 전혀 준수하지 않으려 하면서 말로는 이란식 제재를 주장하는데 이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
것이다.”
―클링너와의 논쟁에서 누가 이겼는지 궁금하다.
“중요한 것은 그의 주장이 내 입장을 바꾸지 못했다는
것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취임 첫해인 2009년만 해도 북한과 진지하게 협상하려 한 듯한데.
“노(No). 단지
그렇게 말했을 뿐 전혀 노력하지 않았다.”
―한국의 포용파 인사들은 그렇게 인식하고 있는데, 오바마 대통령이 전혀 그런 시도를
보이지 않았다는 얘기인가.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에서 일했던 제프 베이더의 책을 보면, 물론 이 책은 중국에 대한 게 대부분이지만
오바마 행정부의 최우선적인 목표는 북한의 행태를 바꾸는 것이었다고 기술되어 있다. 이에 따라 오바마 행정부 출범 한두 달 후 북한과 협상을 하지
않겠다는 입장이 결정되는데 이게 오바마식 대북 접근법의 시작이다. 북한의 행태가 변하기 전에는 협상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곧이어 북한이
핵실험을 하자 오바마 행정부는 이것을 하나의 공격으로 인식하고 네거티브하게 생각하기 시작했다. 2009년 8월 클린턴 전 대통령은 미국 여기자
유나 리·로라 링의 북한 억류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평양을 방문, 김정일 위원장과 만찬을 했는데 그것은 최상의 기회였다. 그런데 그때 클린턴 전
대통령은 어떤 정책에 대한 논의도 김정일과 하지 말라는 지침을 받았다. 김정일은 그런 대화를 하고 싶었을 텐데 진행이 안 된 것이다. 클린턴 전
대통령의 평양방문은 미국이 제네바 합의에서 퇴각한 이후 최대 기회였다. 클린턴 전 대통령은 김정일의 메시지를 워싱턴에 전했는데도 오바마 행정부는
움직이지 않았다. 오바마 행정부는 대북관여 정책을 원치 않았던 것이다.”
―그 이후 김정일은 사망했고 북·미관계는 여전히 제자리
걸음을 하고 있는데.
“김정일 사망 후 김정은은 새로운 체제를 수립하며 핵개발을 계속하고 있다. 우리는 지금 아주 터프한 시기를
맞고 있다. 북한은 뭐라고 하든 간에 핵무기를 개발 중이고 고농축우라늄(HEU)프로그램도 진행 중이다. 조만간 대륙간탄도미사일(ICBM)도
완성할 것으로 보이는데 이 같은 움직임은 동북아 정세를 불안정하게 만드는 요인이 될 것이다. 그러니 우리는 지금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를
생각해야 한다. 단지 전략적 인내를 할 때가 아니라 우리가 어떻게 움직여서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그러려면 북한과 어떤 형식으로든 대화가 필요한 것이다. 우리가 북한을 승인하거나 수용하자는 게
아니다. 북한이 우리가 지금 함께 살아가고 있는 상대라는 점을 인정하고 뭔가 타협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들과 어떻게 문제를 풀어야 할
것인가를 논의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 한국과 미국은 그저 북한의 붕괴를 기다리고 있는 것 같은데.
“조기 붕괴를
믿을 만한 근거는 없는 것 같다.”
―북한 체제가 지속가능하다고 보는가.
“그렇다. 나는 1974년부터 북한을
들여다보고 있는 사람이다.”
―그런 시각은 소수파인데.
“때때로 소수파가 맞을 수 있다.”
―강인덕 전
통일부 장관은 귀하처럼 중앙정보부에서 북한정보를 다루기 시작해 북한을 50년 이상 들여다본 전문가인데 북한체제의 지속가능성에 대해선 아주
회의적으로 보던데.
“그것은 당신이 어느 타임라인을 보고 판단을 하느냐에 따라 다를 수 있다. 빠르건 느리건 간에 이 체제는
실패(fail)한다. 그런데 아무것도 안 하면서 그 시기를 기다리는 게 과연 맞는 것인가. 우리는 오늘 이 순간, 이 상황에서 뭘 해야 할지는
생각해봐야 하는 것 아니냐.”
―북한의 향후 시나리오와 관련해 미얀마 군부체제
스타일로 변화할 가능성, 시리아의 바샤르 알아사드 체제처럼 굳어질 가능성 아니면 베트남처럼 개방 쪽으로 돌아설
가능성이 있다고 보는데 어느 쪽이 현실화가 가능할 것으로 보는가.
“북한은 외부의 상황에 따라 작용하고 있다. 북한 내부의
엔지니어나 관료들은 중국 등 주변국가들의 변화에 민감하다. 그런데 북한이 어디로 갈 것이냐의 문제에 대해선 우선 경제적 변화가 관건이다. 그것은
또한 상당부분 변화하고 있는 게 사실이다. 바깥의 분위기가 북한을 어디로 몰고 갈 것이냐의 측면이 있지만 우리는 누구도 김정은이 어떻게 할지
모르고 있다. 오직 데니스 로드먼만이 김정은과 얘기를 해봤을 뿐이다. 중국 덩사오핑(鄧小平)이 70대말 개혁개방을 시작할 때 중국이 어떻게
변화할지에 대한 청사진은 갖고 있지 못했다. 오늘날처럼 중국경제가 발전할 것이란 믿음보다는 다만 당시 중국이 처한 환경에서 개혁을 하지 않으면
상당히 어려워진다는 것을 알았을 뿐이다. 소련의 미하일 고르바초프도 마찬가지였다. 어떤 청사진을 갖고 있지 않은 상태에서 페레스트로이카를
시작했다. 김정은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현재 처한 위험이 개혁을 피하는 것보다 크다고 판단할 때 변화를 시작할 것이다.”
―장성택
처형 이후, 김정은의 개혁가능성에 대한 외부의 기대가 사라지고 있는데.
“물론이다. 장성택 처형은 수많은 사람들에게 충격을 줬다.
무엇보다도 중국지도부를 경악시켰다. 장성택에 많은 투자를 해온 중국의 지도부가 절망했을 것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한 북한에서는 장성택 처형
이후 뭔가가 진행되고 있다. 경제특구 논의도 진행 중이고 여러 가지 개혁정책이 발표되고 있다. 그것은 김정은의 정책이다. 느리게나마 북한은 뭔가
변화를 시도하고 개발을 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는 것이다. 그것이 북한 내부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아무도 모른다.”
―북한 평양
아파트의 붕괴를 얘기하며 김정은의 불안정성을 얘기하는 이들이 있는데.
“그 비슷한 시기에 아산의 한 오피스텔이 비스듬히 기울어진
사건이 있었고 세월호가 침몰했다. 물론 그에 앞서 뉴욕 맨해튼에서도
가스폭발로 인한 건물 붕괴가 있었다. 그것은 사건이다. 이 같은 사건의 이면에는 부패가 있고 관리 부실이 있다는
것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북한이 부패가 만연하고 돈이 모든 것을 결정하는 사회가 됐다는 한 증거일 뿐 체제 불안정을 드러내주는
증표는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장성택 처형, 대형 아파트 붕괴 등은 북한이 정상국가가 아니라는 증거이자 북한의
불안정성이 커지는 징후 아닐까.
“물론 북한의 폭발상황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그러나 다른 측면에서 볼 때 북한은
1997∼98년 최악의 기아사태를 이겨낸 나라다. 그때 그들은 종이가 없어
신문도 발행하지 못했고 전력 생산도 못했다. 그래도 체제는 생존했다. 북한을 칭찬하거나 찬양하자는 게 아니다.
그런 상황을 북한이 견뎌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북한에 대한 선입견을 배제한 상태에서 현실적인 눈으로 북한을
보자는 것인가.
“그렇다. 현실적인 눈으로, 북한을 바라보며 뭔가 대화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의 통일이 언제쯤 가능할 것으로 보는가.
“한국이 보다 효율적이고
스마트해지고 잘 살게 될 때.”
―서독 수준으로?
“
아마도 그럴 것이다.”
인터뷰=이미숙 국제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