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大中의 英語 vs. 권노갑의 英語 vs. 영어(囹圄)생활의 배우 ^신성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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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53 한준구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 댓글 0건 조회 1,698회 작성일 2014-06-29 10:08본문
권노갑 회고록의 紙面을 많이 할애해 주신
동아일보사측 및
관련 글 보도 기자제위께
깊이 감사 드립니다.
그리고
의미깊고 재미있는 살아있는 현장 역사를
글로 보여주시는 권노갑 고문에게도
깊이
감사드립니다.
******************
인물 정보
도서
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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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맑은물
- 대통령과 함께 한 사람들 5
- 2000.0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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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림
- 누군가에게 버팀목이 되는 삶이 ...
- 1999.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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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맑은물
- 대통령과 함께 한 사람들 1
- 1999.0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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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順命 ]권노갑 회고록〈24〉감옥서 만난 영화배우 신성일
- 동아일보 A14면 1일전
- 1950년대 후반 목포여고 영어 교사 시절의 권노갑. 홀어머니가 돌아가시자 4년간의 영어교사 생활을 접고... 영어, 권노갑의 영어 ▼ “succeed 뒤엔 to를 쓰면 안됩니다”… 권노갑 지적에 DJ는 “…응, 알았네” 권노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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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기념회 참석한 권노갑 상임고문
- 뉴스1 3일전
- 권노갑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이 25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도서관 앞 야외광장에서 열린 강기정 의원의 출판기념회에 참석해 김한길 대표, 박영선 원내대표와 인사나누고 있다. 2014.6.25/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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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원들과 인사 나누는 권노갑
- 뉴시스 3일전
- = 25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도서관 야외공연장에서 열린 강기정 의원 출판기념회-'강기정이 전하는 임을 위한 행진곡 이야기, 노래를 위하여'에서 새정치민주연합 권노갑 상임고문이 의원들과 인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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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노갑 상임 고문과 인사하는 원내대표
- 연합뉴스 3일전
- 김한길 새정치민주연합 공동대표와 박영선 원내대표가 25일 오전 국회 도서관 야외공연장에서 열린 강기정 의원 출판기념회에서 권노갑 상임고문과 인사를 하고 있다. 2014.6.25 leesh@yna.co.kr ▶확 달라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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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정보
[順命 ]
권노갑 회고록
@+24편: 감옥서 만난 영화배우 申星一
기사입력 2014-06-28
1950년대 후반 목포여고 영어 교사 시절의 권노갑. 홀어머니가 돌아가시자 4년간의 영어교사 생활을 접고 상경해 DJ를 돕는다. 동아일보DB
3修 끝에 국회의원이 된 그는
강 의원은 출감하면 정치는 그만둘 생각이라면서 내게 이렇게 말했다.
“국회의원이 되면 영화배우의 인기에다 권력의 날개를 하나 더 다는 셈이라고 생각했는데 실제 해보니 아무것도 아니데요. 오히려 과거보다 더 위축됐어요. 정당인으로서의 의무를 해야 하고, 肝 다 빼주면서 지역유권자 기분에 맞춰야 되고. 이건 내 생리에 맞지 않은 것이었어요.”
누구나 자기의 전문분야와 영역이 있는 것 같다. 그는 이런 말도 했다.
“누구 편에 줄서기를 하고 그래야 공천을 받으니 정말 하기 싫었습니다.
그것이 전부는 아니지만, 현실정치에는 분명 강 의원이 지적하는 그런 부분도 있다. 조직을 중시해야 하는 정치는 예술가나 연예인에게는 생리적으로 어울리지 않는 분야일지도 모른다.
은막의 대스타였던 그로서는 자신의 처지에 대한 회한도 컸을 것이다.
아마도 그 회한을 품고 마음을 다스리는 방법의 하나로 그는 운동을 택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칠십 가까운 나이인데도 시간만 나면 콘크리트로 만든 역기를 들고, 골프채 대신 3m짜리 빗자루로 하루에 20∼30번씩 스윙 연습을 하곤 했다. 그리고 추운 겨울날이면 반드시 냉수로 샤워를 했다. 그런 탓에 그의 머리칼은 은빛이었지만 가슴이나 팔뚝은 30대 청년처럼 근육이 잡힌 건장한 몸을 유지했다.
그러나 밤에는 懷恨(회한) 때문에 잠을 잘 이루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좀 해주십시오.”
그러면 나는 그의 몸을 정성껏 마사지하여 풀어주곤 했다. 지난날 내가 권투선수를 키울 때 경험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시합을 앞둔 선수들은 긴장한 탓에 잠을 잘 이루지 못했다. 그럴 때 온 몸을 마사지해주면 푸근히 잠들곤 했다. 운동 끝나고 목욕을 한 후 그는 내게 와서 마사지를 해달라고 부탁했다.
그는 과묵하고 담백한 사람이었다. 나름대로 고집은 있지만 소신이 뚜렷하고 남에게 굽실거리는 것을 아주 싫어하는 성격이었다. 경상도 사람인데도 서울에서 오래 살아 그런지 거의 표준말을 사용했다.
그는 운동도 열심히 하지만 한편으로는 책도 많이 읽었다. 주로 역사서나 인생철학 같은 책들이었는데, 그가 옥중에서 2년 동안 읽은 책이 트럭 한 대분은 되는 것 같았다.
“이런데 안 들어왔으면 어떻게 이런 책을 보았겠습니까?”
○英語공부
내가 옥중에서 열중한 것은 영어 공부였는데, 날마다 영어사전을 찾아보면서 뉴스위크지나 원서를 읽고 있는 나를 보고 강 의원이 물었다.
“권 고문님은 왜 그렇게 영어를 열심히 공부하십니까?”
“출감하면 동시통역사가 되어 보려고.”
“나도 영어공부를 해보고 싶습니다. 어떻게 공부하면 됩니까?”
“영어는 무조건 외워야지.”
그 후 영어공부에 취미를 갖게 된 강 의원은 내가 권한 영한 대역의 ‘잠언’을 화장실 같은 데 갖고 가서 보다가 문장을 외워가지고 돌아오곤 했다. 그러고는 내게 그 문장을 외워보였다. 그러면 나는 그의 발음을 고쳐주고 문법적으로 어려운 문장을 해석도 해주고 했다.
3·1절이 가까워오자 강 의원이 내게 물었다.
“이번에 출감하게 되십니까?”
“그럴 것 같소.”
“나는 한 해를 더 지내야 풀려날 것 같습니다. 그러니 나도 앞으로 1년 동안 영어를 공부해볼 생각인데 좀 도와주십시오.”
나는 출감 이틀 전에 ‘로마의 휴일’ 영어 시나리오 대본을 그에게 주었다.
“그 대본엔 고급영어와 대중영어, 엉터리 영어가 섞여 있으니 한번 열심히 공부해 보시오.”
그런데 이틀 후 강 의원은 나와 함께 특사로 풀려났다.
함께 출감한 강 의원은 교정관들과 일일이 악수를 나눈 뒤 문밖에 대기하고 있던 기자들에게 “그동안 공짜 밥 잘 얻어먹었습니다”라고 했다.
그는 정치에 입문했던 것을 후회하지는 않는다고 했다. 정치에 입문하지 않았더라면 그 세계에 대한 동경이 계속 남아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전에는 감옥에 대한 두려움 같은 것이 있었는데, 이제는 그것도 경험을 했으므로 두려움이 없어졌다고 했다.
장부다움.
아마도 그것이 강신성일 의원의 지향점인지도 모르겠다. 내가 겪어 본 강신성일 의원은 정말 남자다웠다.
▼ 金大中의 英語, 권노갑의 英語 ▼
“succeed 뒤엔 to를 쓰면 안됩니다”… 권노갑 지적에 DJ는 “…응, 알았네”
권노갑 고문의 어릴 적 꿈은 국가대표 권투선수로 런던 올림픽에 출전하는 것이었다. 우리 민족이 일제 식민지배에서 벗어나 처음으로 올림픽 무대라는 걸 밟아봤던, 1948년의 바로 그 런던 올림픽에 서는 것이었다.
권투를 시작한 건 식민지배 시절 일본인 학생들한테 얻어맞은 기억 때문이었다. 권노갑은 전라도 대표 선수까지 올라가는 데는 성공했다.
하지만 국가대표가 되는 데 실패하자
영어 공부에 얽힌 에피소드가 유난히 많은 것도
이희호는 이화여전, 서울대 사범대 교육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램버스 대학과 스칼릿 대학에서 공부했다. 그는 귀국 후 대한YWCA연합회 총무를 맡고 있던, 당대 최고의 여성 엘리트였다.
미국 망명 중이던 1983년,
한국 사정을 모르는 미국 시청자들에겐
“웨이트(wait)!, 웨이트(wait)!”
“내가 그렇게라도 영어토론을 할 수 있었던 것은
그래도 목포여고 영어교사 출신인 권노갑의 눈에는
DJ=“(심드렁한 어조로) 응, 알았네.”
김창혁 전문기자 ch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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