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조벽 동국대 석좌교수가 지난 14일 서울 종로구 부암동 자택 베란다에서 인성교육의 필요성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김연수 선임기자 nyskim@munhwa.com |
|
|
|
조벽(58) 동국대 석좌교수는
자신을 아웃사이더라고 불렀다. 자메이카와 미국에서 교육을 받았고 미국 대학 교수로 20여 년간 재직하는 등 40년간 외국에서 생활해 국내에 혈연, 지연, 학연 등의 연줄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그런 그가 지난 10년간 줄기차게 우리 교육의 혁신을 이야기해오고 있다. 국내에서 배우지도 가르치지도 않았던 아웃사이더란 점이 결격 사유로 꼽힐 만한데 그는 오히려 “그래서 더 객관적으로 보고 할 말을 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지난 2012년 서울교육감 보궐선거에서 보수진영의 후보로, 올해는 진보진영의 후보로 거론된 것을 보면 그의 자신감이 터무니없는 것은 아닌 것 같다.
그는 학교폭력대책위원, 여성가족정책위 자문위원 등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지만 공직을 포함해 어떤 자리를 맡을 생각은 없다고 했다. ‘어디 줄을 서거나 하지 않고 할 말을 다하는 것’이 자신의 가치여서 공직을 맡아 인사이더가 되는 순간 ‘바보’가 될 거라고 믿고 있는 사람이었다.
지난 14일 오후 인터뷰를 위해 찾은 조 교수의 서울 종로구 부암동 자택은 환상적인 전망을 뽐냈다. 거실 3면의 통유리를 통해 보이는 북악산 자락과 북한산 능선은 신록까지 더해져 눈부셨다. 한참 넋을 놓고 바라보다 마주앉은 조 교수에게 피할 수 없는 ‘세월호 참사’에 대해 물었다. 자연스러운 시작이라고 생각했지만 그는 답변을 거부했다. “언젠가는 이번 참사에 대해 말을 하겠지만 지금은 말보다 행동으로 (구출된 학생들이나 실종자 가족들을)도와줄 때”라는 게 이유였다. 그리고 세월호 참사 피해자들의 심리치료를 지원하기 위해 자신이 EFA(Emotional First Aid·감정응급조치) 교육을 진행중이던 심리상담사 37명과 함께 2주간 경기 안산시에서 오전 9시부터 오후 9시까지 봉사활동을 했다고 덧붙였다. 에둘러 갈 필요가 없다 싶어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우리 교육의 혁신에 대해 줄곧 주장해왔는데 우리 교육의 가장 큰 문제점은 무엇인지.
“총체적인 관점에서 우리 교육의 가장 큰 문제는 어른이 아니라 어린애를 양성하고 있다는 것이다. 나는 어린애와 어른을 나이로 구분하지 않는다. 나는 나눠주는 자(Giver)인가 받는 자(Taker)인가를 기준으로 판단한다. 갓난아기는 하루 종일 달라고만 한다. 그러다 성장하면서 점점 독립적으로 된다. 사회적, 경제적으로 독립하는데 그렇다고 모두 어른이 되는 것은 아니다. 노부모에게 필요한 것을 주기 시작할 때 비로소 어른이 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결국 어른은 주는 존재다. 그런데 너무나 많은 학생들이 대학에 와서도 계속해서 얻고, 받고, 자기 몫을 챙기는 데만 익숙해져 있다. 최근 대기업 신입사원 2000여 명을 대상으로 강연을 한 적이 있다. 왜 대기업에 들어왔느냐고 물어봤다. 다들 조금 더 높은 봉급, 대기업의 후광, 안정된 생활, 좋은 배우자를 얻는 것을 그 이유로 꼽았다. 결국 모두 얻는 것을 생각했다. 이렇게 얻으려고만 하는 한 그들은 어린아이다. 어디에서 어떤 일을 하든, 내가 무엇을 어떻게 기여할 것인가를 생각하는 것이 어른이다. 그래야 인재로서 인정받을 수 있고 리더가 될 수 있다. 우리 학부모들은 자식들에게 ‘내가 먹여주고, 차 태워주고, 모든 것을 다 해줄 테니 앉아서 공부만 해라’고 가르친다. 이렇게 하면 우리 사회는 망하게 된다. 혼자서는 결코 행복해질 수 없다.”
―유독 우리 사회에서 오랜 기간 동안 그런 방식의 교육이 이뤄지는 원인이 뭐라고 보는가.
“큰 틀에서 보자면 그동안 한국은 위로 올라가는 교육을 해왔다. 즉 계층 상승용 교육이었다. 고려시대부터 이런 교육이 일부 계층을 중심으로 시행돼오다 광복 후에는 모든 이들에게 개방됐다. 실제로 1960∼80년대에는 배경이 없고, 미천하게 시작하더라도 공부를 열심히 해서 좋은 대학을 나와 좋은 직장을 얻으면 상류층으로 올라갈 수 있었다. 당시에는 그것이 유효한 성공 전략이었다. 활발한 계층이동이 바로 ‘다이내믹 코리아(한국의 역동성)’의 핵심이었다. 그러나 어느 정도 발전한 사회에서는 위로 올라가려면 남을 짓밟아야 한다. 그래서 이제 위로 올라가는 전략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다 함께 앞으로 나아가는 교육을 해야 한다. 앞으로 나아갈 때만 함께 갈 수 있다. 모두가 윈윈(win-win)할 수 있는 것이다.”
―앞으로 나아가는 교육은 어떤 교육인가.
“위로 올라가는 이유는 남이 심어놓은 나무의 열매를 나 혼자 먼저 따먹겠다는 것이다. 성공하고 돈을 많이 번다는 것은 우리 사회가 축적해놓은 열매를 독식하겠다는 것 아닌가. 앞으로 나아가는 것은 열매를 따먹는 데 급급하는 것이 아니라 열매가 열릴 더 많은 나무를 심는 것이다. 뒤에서 따라오는 후손들이 열매를 따먹을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그렇게 사고방식, 패러다임 자체가 변해야 한다. 교과과정을 아무리 개선해도 사고방식이 바뀌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정말 교육에 대한 인식의 일대전환이 필요한 것 같다. 그런데 현재의 시스템에서 가능하겠는가.
“사실 우리는 교육문제를 해결할 정답을 이미 알고 있다. 초·중·고교의 홈페이지에 들어가보면 ‘우리 교육의 목표는 인성이다’고 적시돼있다. 학교의 가장 큰 목표는 인성교육인 것이다. 그런데 학교현장에서 인성교육은 뒷전이다. 학교에서는 오로지 국어, 영어, 수학, 사회, 과학만 집중적으로 가르친다. 가정교육이라는 개념이 사라진 지도 오래됐다. 우리가 아는 인재의 가장 중요한 조건은 인성이다. 이를 놓쳤기 때문에 한국에 인재가 없는 것이다. 학교장들을 대상으로 특강을 할 때가 있다. 그때마다 나는 두 가지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요구한다. 학교 홈페이지에 내건 ‘교육의 목표는 인성’이란 약속을 지키든지, 아니면 아예 그 문건을 내리라고 말이다.”
―교장이 선택을 할 수 있겠는가.
“우리는 혁신이라는 말을 많이 쓴다. 혁신은 현실을 바꾸자고 하는 것이지, 거기에 맞추자는 것이 아니다. 2014년의 현실이 아니라 우리 아이들이 사회에 나가서 일할 때 맞게 될 미래의 현실에 맞게끔 현재를 혁신하는 것이 교육자가 할 일이다. 지금 현실에 교육을 맞추면 다 망가진다. 2년 전쯤 신문에 변호사들이 6급 공무원으로 일을 시작한다는 기사가 났다. 그로부터 10개월 후에 변호사들이 7급 공무원으로 취직을 한다는 기사가 나왔다. 나는 내년에는 변호사들이 8급 공무원이 아니라 택시기사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택시기사를 비하하려는 것이 아니다. 영어에 ‘문라이팅(moonlighting)’이라는 단어가 있는데 검색해보면 예문 중 “법대생이 택시기사로 되는 것”이라는 설명이 나온다. 지금 미국 사회가 그렇다. 그래서 우리의 현재가 아니라 아이의 (미래의)현실에 맞추는 교육이 필요한 것이다.”
―인성교육은 어떤 것인가.
“인성은 수천 년 전부터 내려온 덕목으로 농경시대의 대가족제도에서 생긴 개념이다. 그래서 집안에 할아버지 할머니가 안 계시는 것은 물론 핵가족마저 해체되는 요즘, 이 개념을 아이들에게 이야기하면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 따라서 인성을 새롭게 정의해야 한다. 물론 핵심은 항상 똑같다. 남을 배려하고 감사하고 사랑할 줄 아는 것이다. 다만 지금 이 시대에 이런 덕목을 갖춰야 하는 이유가 달라졌다. 알다시피 인성은 창의력의 핵심이다. 이를 입증하는 연구 결과도 많다. 인성은 소통과 융합의 핵심이고 장기적인 성공의 유일한 지표다. 우리가 자주 사용하는 ‘합리’라는 것은 이성과 감성의 이치가 합쳐진 것이다. 영어로 합리적인 것을 ‘래셔널(rational)’이라고 표기하는 것은 오역한 것이다. 래셔널은 이성의 개념만 포함하기 때문이다. 논리와 감정의 세계가 합쳐져야 합리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만큼 이성과 감성을 잘 융합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데 지금 우리 교육에서는 잘하는 것과 좋아하는 것이 제대로 융합되지 못하고 마구잡이로 섞여 학생들을 힘들게 만든다. 감정의 세계, 마음의 세계가 곧 인성의 세계다. 공(恭), 덕(德), 배려(配慮) 등의 글자에는 다 마음 심(心)자가 들어간다. 바로 심적 요인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그걸 학교와 가정에서 제대로 배우지 못해 이성적인 부분과 감정적인 부분이 분리돼있고 그래서 불행하다. 이제 왜 아이들에게 인성을 가르쳐야 하는지 논의할 때다.”
―어떻게 인성교육을 해야 하는지 좀 구체적으로 말해달라.
“인성은 아쉽게도 말로 가르치는 게 아니고 보여주는 것이다. 어른이 어른스러운 모습을 보여주면 아이들이 보고 배우는 것이다. 교과목처럼 강의식으로 가르치는 것이 아니다. 예를 들어 가정에서는 자녀들이 자기가 먹은 밥그릇을 싱크대로 옮기게 하고, 중학생이면 토요일에 설거지를 하도록 한다. 그렇게 가정에서 베푸는 방법을 차근차근 배워나가는 것이 최고의 인성교육이다. 학교에서는 학생들이 자신의 감정세계를 만나는 것을 연습시켜야 한다. 지금은 아침부터 밤까지 꼼짝 말고 죽은 듯이 공부만 하라고 가르친다. 시키는 것을 시키는 대로 해야 훌륭하다고 가르친다. 그래서 우리 아이들은 머리만 돌아가고 다른 부분들은 죽어있는 상태가 됐다. 이런 교육환경에서는 인성교육이 정말 어렵다. 내가 교사들에게 요구하는 것은 교육 경험을 디자인해야 한다는 것이다. 교사가 교과과정을 익히고 연습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교과과정을 디자인하는 데 그치지 말고 경험을 디자인해야 한다. 오늘 이 수업을 할 때 학생들에게 어떻게 공부하는 즐거움을 안겨줄 수 있을까. 어떻게 학생들의 관심을 유도할지를 고민해야 한다. 아이들의 관심이 커지면 그것이 곧 꿈이 되고 비전이 될 수 있다. 교과과정만 기계적으로 가르치면 학생들은 공부의 괴로움만 맛보게 된다. 이제 평생교육시대라고 하는데, 공부가 괴로우면 절대 평생 할 수 없다. 이제 교사들은 개학 첫날의 1시간, 1주일, 한 학기, 1년, 6년, 이런 식으로 교육 방법을 디자인해야 한다. 지금 우리 아이들의 감정세계가 메말라 죽어가고 있다. 창의력의 핵심은 지식과 사고력에 모험심과 호기심, 허심(여유)과 긍정심이 더해지는 것이다. 이런 것들은 모두 심적 영역이다. 교육적으로 보면 머리로 하는 인지적 영역과 구분해 정의적 영역이라고 할 수 있다. 교사들은 이런 인지적 영역과 정의적 영역의 지식을 모두 배웠다. 그런데 실제 학교 현장에서는 인지적 영역만 키우는 교육이 이뤄지고 있다. 창의력의 핵심을 가르치지 않고 있는 것이다. 호기심이 없는데 과연 창의력이 나올 수 있을까? 여유가 있어야 새로움을 수용하고 포용할 수 있다.”
―사실 우리 학교에서 즐거움을 얻기는 어려운 것 같다.
“현재 가출아동이 20만 명이고 학업중단 청소년이 40만 명이라고 한다. 그러데 우리는 이들을 가리키는 단어부터 잘못 쓰고 있다. 우리가 어떤 현상에 이름을 붙일 때 그 현상을 보는 시각이 드러난다. 그리고 현상을 어떻게 이해하느냐에 따라 해결책도 달라진다. 나는 가출아동이 아니라 ‘탈가정 난민’이라는 개념이 더 맞다고 생각한다. 학업중단 청소년은 같은 맥락에서 ‘탈학교 난민’이다. 난민이란 자신이 소속된 곳에서 살지 못해 어쩔 수 없이 도망 나온 것이다. 즉 탈가정 난민, 탈학교 난민이라는 개념으로 바라보면 학생이 아니라 가정과 학교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인식할 수 있게 된다. 가출아동, 학업중단 청소년이란 단어는 마치 아이들 개개인에게 문제가 있는 것처럼 인식하게 만든다.”
―그간 무수히 교육정책을 바꿨지만 문제가 전혀 해결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한국의 모든 교육문제는 입시에 직결돼 있다는 것을 느꼈다. 1990년도부터 정부는 입시문제를 개선하는 정책을 꾸준히 발표했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달라진 것이 없다. 교육문제가 전혀 개선되지 않고 있다. 교육문제를 정책으로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우리 사회 전체가 교육에 대해 가치관을 새롭게 정립해야 한다. 새로운 가치관을 확립하지 않으면 교육의 악순환에서 벗어날 수 없다. 현재의 교육문제에 대해 우리 사회 구성원 모두가 공동으로 책임을 져야 한다. 그리고 교육당국과 사회, 가정이 함께 움직여야 한다. 남이 뭔가 해줄 때까지 기다려선 안된다. 남 탓을 해선 안된다. 지금 학부모는 교사를, 교사는 정부를, 초·중·고교는 입시제도를, 대학 교수는 초·중·고교를 탓하고 있다. 이렇게 계속 남 탓만 하면 문제는 영원히 해결되지 않는다. 각자 할 수 있는 일을 실행에 옮겨야 한다. 이런 노력으로 한국사회가 곧바로 바뀌지는 않겠지만, 그런 노력마저 하지 않으면 영원히 아무것도 바뀌지 않을 것이다.”
―입시제도는 하도 많이 바뀌어서 이젠 학교 교사들도 잘 모른다는 지적이 있다.
“사실 지난 50년간 입시제도의 경쟁 시스템이 한국사회의 발전을 이끌어왔다. 그래서 사람들이 이 체제와 가치관을 쉽게 버리지 못하는 것이다. 대학수학능력시험은 우리 사회에서 위로 올라가는 시스템의 핵심이다. 그런데 이제 그 시스템은 수명이 다했다. 그러면 수능이란 시스템 대신 뭔가를 잡아야 하는데 눈에 보이지 않으니까 수능 시스템을 쉽게 놓을 수가 없다. 그러나 나는 변화의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한국만큼 시스템에 변화를 주려고 시도하는 나라는 전 세계적으로 드물다. 입시정책을 매년 바꾸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다른 나라에서는 그런 시도를 할 엄두조차 못낸다. 우리 사회는 변화를 갈망하고 있고, 변화를 수용할 준비가 돼있다. 변화에 따른 값을 치를 준비가 돼있다는 것은 엄청난 사회적 자산이다. 거듭 강조하는데 지난 50년간 우리 교육 시스템은 정말 훌륭했다. 교육정책도 훌륭했고 거기에 엄청난 돈을 쏟아부은 학부모들도 훌륭했다. 그러나 그 성공 공식은 2000년 초까지만 통했다. 번데기가 허물을 벗는 데는 시간이 걸린다. 지금은 우리가 허물을 벗는 시기다. 번데기는 유충을 보호하기에는 완벽하지만 유효기간이 지나면 허물을 벗어야 한다.”
―인성교육을 하려면 교사에 대한 교육도 변해야 하지 않나.
“나는 교사와 학부모 대상 특강을 많이 한다. 학부모에게는 교육을 학교 등 가정 바깥으로 아웃소싱하지 말라고 이야기한다. 지금은 학교, 학원, 컴퓨터에 자녀 교육을 아웃소싱하는 부모들이 많다. 부모가 자녀를 먹여주고 입혀주고 학원까지 태워주는 것만 하면 불안할 수밖에 없다. 부모가 자녀교육의 중심을 잡고 있어야 한다. 교사들도 해야 할 일이 있다. 교육부 혁신세미나에 참석해 교사 670명을 상대로 설문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강연을 했다. 조사에 따르면 교대나 사대에서 앞으로 가르칠 교과목 내용에 대해 교육을 잘 받았느냐는 질문에 교사들은 C 평점을 줬다. 교과목 프로그램이 많아 당연히 A+일줄 알았는데 의외였다. 이유를 살펴보니 절반은 지나치게 많이 배웠다고 대답했고, 나머지 절반은 교과목 내용만 배웠지 가르치는 방법은 배우지 못했다고 답했다. 총은 받았는데 총알을 못받은 셈이죠. 그래서 교사들에게 어떤 교육 프로그램이 필요하냐고 묻자 학생들과 어떻게 인간관계를 맺을 수 있는지에 대한 프로그램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결국 지금 우리 교원교육은 강사를 키워내는 것이지 선생님, 스승을 키워내는 것이 아니다. 교사와 학생 사이의 신뢰는 서로 인간관계를 맺고 상호 존중할 때 생긴다. 그런 관계를 맺고 존중하는 과정과 그 결과물이 모두 다 인성교육이다. 인성교육은 도덕 교과목을 통해 가르치는 게 아니라 함께 호흡하면서 가르치고 배우는 것이다. 지금의 ‘교실 붕괴’는 우리가 자초한 것이다. 우리가 선생님의 기능과 역할을 축소시켰다.”
―우리 공교육이 교육업계에서 독점적 지위를 갖고 있지만 사교육에 비해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래서 나는 수년째 교육부에 혁신을 위해서 학교의 독점을 깨야 한다고 촉구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정규 교과과정을 이수해야만 학위를 준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정규 교과과정 외의 영역에서 교육이 이뤄지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면 기업체 교육은 대단하다. 대기업이 신입사원 교육에 투자하는 돈이 미국 명문대 4년 등록금과 맞먹는다. 따라서 고등학교만 졸업한 사람도 기업에 들어가서 학사학위를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러면 대학 병목현상이 사라질 것이다. 평생교육을 위해서 학교의 독점체제를 해체해야 한다.”
―학생들이 자신의 진로에 대해 고민하는 기회를 제공하는 취지에서 도입된 자유학기제를 어떻게 평가하나.
“꿈과 끼를 발휘하지 못하는 교사와 현재의 교육시스템에서 학생들에게 제대로 꿈과 끼를 발휘하게 해줄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그러나 희망적인 부분도 있다. 우리가 가진 장점과 강점을 살리면 된다. 10년 전부터 창의력 교육을 해왔는데 드디어 꽃을 피우기 시작하는 것 같다. 최근 각종 경연 프로그램을 보면 과거 기존 가수를 그대로 흉내 내는 것과 달리 편곡 등을 통해 재창조를 해야 인정받는다. 창의력이 중요한 판단기준이 된 것이다. 물론 예능계는 창의력 중시 가치관이 쉽게 확산될 수 있는 곳이다. 이제 그것이 다른 사회 영역으로 확산되고 중심부로 들어와 학교로까지 확산되면 우리 사회가 정말 한 단계 성장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교육당국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나.
“중앙에서 컨트롤할 것과 안할 것을 구분해야 한다. 그걸 구분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교육당국의 컨트롤을 극단적으로 없애는 것도 맞지 않고 지역에서 할 일까지 모두 다 규제하는 것도 맞지 않다.”
―고교등급제, 본고사, 기여입학제 등을 금지하는 3불정책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우리 사회의 성숙도와 직결돼있다. 입학사정관제를 시작할 때 실패 확률이 높다고 얘기했다. 관계의 거리(degree of separation)라는 개념이 있는데, 미국에서는 5단계를 거쳐야 아는 사람이 나오는데 한국은 한 단계만 거치면 만날 수 있다. 그만큼 익명성이 보장되지 않는 사회다. 이런 사회에서는 공정성과 신뢰성, 투명성을 확보하기 어렵다. 이런 사회문화적 차이를 고려하지 않고 섣불리 외국 시스템을 벤치마킹하는 것은 위험하다. 미국에서 입학사정관제가 시작된 이유는 학교 시스템이 너무나 다양해서 획일적인 잣대로 입학생을 뽑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국은 획일화된 시스템과 기준을 갖고 있는데 다양성을 확보하기 위해 이 제도를 도입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입학사정관제는 입시 병목현상을 완화시킬 수 있는 제도이므로 성공하기를 바란다. 이처럼 3불정책은 한국 교육 시스템에 필요한 것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인터뷰=박민 사회부장 minp@munhwa.com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