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대양 사건 재수사했던 명검사 심재륜과 유병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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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53 한준구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 댓글 0건 조회 1,186회 작성일 2014-05-20 06:02본문
[논설위원이 만난 사람/최영훈]
오대양사건 再수사 지휘했던 심재륜 변호사
기사입력 2014-05-19
“유병언이 오대양 집단자살 원인 제공했을 것으로 본다”
심재륜 변호사는 23년 전 오대양사건 재수사 당시를 생생하게 기억했다. 유병언 전 회장이 경호원
10여 명이 늘어선 가운데 대전지검으로 출두하는 장면을 실감나게 묘사했다. 그는 “유 씨의 신병 확보를 너무 쉽게 생각했던 것 같다”며 검찰
수사를 걱정했다. 박경모 기자
“1차 전쟁 때는 우리가 판정승을 거뒀다.”
심재륜 변호사(70)가
“우리 집안은 전쟁을 치러봤다”는 유병언 전 세모 회장의
장남을 거론하며 한 말이다.
세월호 선사(船社) 소유주인 유 씨와 자녀, 최측근들이 검찰
소환에 불응하고 잠적했다.
유 씨 역시 16일 출석 통보를 받고도 소환에 불응했다.
세월호 참사의 ‘몸통’에 해당하는 유 씨 일가에 대한 수사는
난관에 부닥친
상태다.
沈 변호사는 23년 전 대전지검 차장검사로
오대양 사건 재수사를
지휘했다.
“23년 전에도 유병언의 행방은 묘연했고 연락도 안 됐다.
인천상륙작전 하듯 허를 찔렀다
“수사에는
당시 대전지검은 유 씨를 참고인으로 소환했다가 바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그래서 체포영장을 건너뛰고 바로 사전구속영장을 친 것 같다.
“‘갈 데까지 가보자’는 사람들이다. 유혈사태가 발생하거나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사람이 나오면 어쩔 건가.”
―오대양 수사는 어떻게 진행했나.
“수사에 착수하기 전 자살과 종교집단이라고 하는 점을 오랫동안 골똘히 생각해봤다. 사이비종교에 대한 사전 공부를 했다.
“유병언이 오대양 집단자살의 원인을 제공했을 것으로 본다.
―당시 유 씨는 무혐의 처분을 받은 것인가.
“유병언에 대한 수사는
―상습사기는 어떻게 인정된 것인가.
“재산을 갖다 바친 신도의 다른 가족들이 문제를 삼은 사기사건 5, 6건이 무혐의처리됐다. 종교상 자발적인 헌금이라는 논리로 사건을 무마한 것이다.
―유 씨는 어떤 사람인가.
“그는 구원파 설립자인 권신찬 목사의 사위다. 신학교를 나와 목사로 활동하고 있었다. 권 목사는 그를 메시아로 내세워 신도들이 떠받들게 했다. 이 세상은 곧 종말을 맞게 될 테니 하나님 사업하는 그에게 헌금하는 것이 천국 가는 길이라고 신도들을 현혹한 것이다.”
천사같은 미소 띠고 조사받아
―조사는 어떻게 받았나.
“(웃으면서) 천사와 같은 미소를 띠고 조사를 받았지. 신도들은 그가 카리스마가 엄청난 사람이라고 했다. 옆에만 가도 찌릿찌릿한 느낌이 들고 병이 나은 사람도 있다고 했다. 그러나 내가 보기엔 그의 정체는 상습사기로 구속된 전력이 있는 사람일 뿐이다. 많은 사람이 그를 교주처럼 섬기는 것을 보면 고도의 최면술사라고 해야 할까.”
―근황을 아는 게 있나.
“지금은 사진작가 발명가 같은 사람으로 위장하고 있는 것 같다.
―신도들에게 돈은 어떻게 받았나.
“돈이 없는 사람에게는 집문서를 가져오게 했다.
―유 씨는 자신의 혐의를 시인했나.
“언론이 소설을 썼다고 혐의를 완강히 부인했다.
―5공 정권 실세와의 친분설은 사실인가.
“전두환 전 대통령의 동생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있더라.
자발적 자살을 한 것을 어떻게 살인죄로 기소할 수
있겠나.
지금 시기 특검 거론은 부적절
―유 씨에게 세월호 침몰의 책임까지 물을 수 있나.
“그를 업무상 과실치사로 기소하더라도 법원에서 유죄가 나올지 의문이다.
―구원파 측과 개인적 소송을 당하고 지금도 벌이고 있는 것으로 아는데….
“2년 전에 월간지에 기*고했다가 2억 원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당했다.
그는
▼유 前회장 직접 연루 증거 못찾아… 상습사기로 4년刑▼
1987년 8월 29일
1991년의
재수사는
다른 사건으로
복역을 마친 오대양 직원 6명이
구원파 신도 3명을 구타
살해 암매장했다고
충남도경에 자수한 것이 계기가 됐다.
집단자살 당시 구원파 윗선으로 추정되는 사람이
모처에서 신도들에게 전한 메모 하나가 현장에서 발견됐다.
‘이쪽에서도 어쩔 수 없다. 그쪽에서 알아서 하라.’
검찰은 “헌금과 대출 때문에 막대한 빚에 쫓기던 신도들이 ‘이제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합니까’라고 위에 물어 보았을 것이고,
쪽지의 내용은 그 답이었을 것”으로 봤다.
그래서 오대양의 박 사장 등이 최후의 선택을 했다는 추론이다.
그러나 오대양 집단자살에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이 직접적으로 연루된 증거는 없었다.
검찰은 헌금 등 11억 원을 챙긴 혐의(상습사기)로 유 씨를 구속기소했다.
1심에서 징역 8년, 항소심에서 징역 4년이 선고됐다.
법제처장을 지낸 송종의 당시 대전지검 검사장은
검찰동우지에
‘오대양 진혼곡’을 기*고했다.
그는 이 글에서
“오대양사건이 하필이면 대전지검으로 오게 된 것은,
구원을 받는다고 믿고 죽어갔을 30여 명의 원혼들이
한을 풀어달라고 내게 외친 것이 아닐까”
라고 자문자답(自問自答)했다.
최영훈 논설위원
그러나 오대양 집단자살에
최영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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