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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조 이성계-역성 혁명이전의 숨겨진 이야기들-박사 논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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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53 한준구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 댓글 0건 조회 2,062회 작성일 2014-03-30 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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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고려말의 한동안 불우했던 사대부 출신이자
조선왕조의 설계자인 정도전에 대한
대하사극이
오랜동안 시청율 1위를 유지하던 개콘을 넘어서
다수의 관심을 더욱 고조시키고 있습니다.
다음 몇년전에 저 한준구가
우리 게시판에 올린 내용을 다시 올리오니
정도전 팬들은 한 번 차근차근 음미하면서 읽어보시길 강추합니다.
********************
@@@太祖 이성계 家門은?
몽골 군벌(軍閥) 성장했다!
1.강화도로 천도한 고려를
몽골이 함락시키지 못한 것은?
이전에 국사 시간에 배운 기억으로는 천하의 몽고군도
바다를 낀 해전에는 유독 약했기 때문에 고려 왕실과 귀족이 보전될 수 있었다 라고 배웠는 데
사실은?
몽골군의 주력 부대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2.몽골군이 강화도는 비록 함락시키지는 못했지만
육지의 원근 각처에서는 도륙과 약탈과 집단 성폭행이 있었음에
틀림없으리라 그동안 여겨 왔는 데
몽골의 원나라 제국은
경제적으로는 고려를 약탈하지는 않았다는 새로운 발표가 나왔다.
3.조선 건국의 태조 이성계와 그의 선친은 함경도에서 제법 잘나가는 무사 집안 정도로만 배운 것으로 알고 있었는 데
이성계는?
100년에 걸쳐 원나라의 관*리로 세력을 키운 가문의 힘을 바탕으로 조선을 건국할 수 있었다 라는 새로운 논문이 발표되었다.
***위의 새로운 내용의 논문 발표의 당사자는
중국 內몽골대학교 교수로 몽골史 전공의 발표자인
이름은? 보르지기다이 에르데니 바타르 교수로서
현재 43세이다. 그는 2009년 9월에 한국에서 출간한
'팍스 몽골리카와 고려'
란 저서에서
13세기 몽골(원나라 제국)과 고려의 관계에 대해 한국
학계의 일반적인 통설과 다른 관점에 대해 제시하고 있다
**1998년 한국에 유학와서
2006년 강원대 사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바 있는
위에 언급한 교수는
자기 자신을
칭기스칸의 동생였던 조치 카사르 씨의 후손이라고 밝히기도 하였다.
*******이어지는 주요 역사 이야기
a.몽골군이 강화도를 정복하지 못한 주요 원인으로
수전(水戰)에 약해서가 아니라
당시 주공격 대상이 금나라와 남송이었기 때문이다
라고 주장하고 있다.
몽골의 수군은 서하(西夏)나 금(金)나라 같은 국가들을 상대로 수없이 많은 하천을 건너 작전을 벌인 경험을 쌓았고
전선(戰船) 10,000척(일만척)을 보유하는 등 막강한 전력을 자랑했을 정도이니
주공격 루트가 아닌 고려에 대해
몽골족이 보조 공격 루트로 삼아서 인지
고려 함락을 못하게 된 것이라고 주장하는 데 그럴만한 사유가 된다
몽골군은
1221년 금나라 군대와 수전을 벌여 크게 승리한 바 있고
1236년 남송 군대와의 대규모 수전에서
선박을 무려 300척을 노획하는 전과도 올렸다는 것이다.
b.위의 몽골 교수는 또 다음과 같이 주장하고 있는 바
몽골과 고려의 전쟁 기간에는 약탈이 물론 있었지만
쿠빌라이 칸이 등극한 1260년대 이후로
원제국은 고려를 약탈하지는 않았다 는 것이다.
원제국의 왕실과 혼인하여 부마국이 된 고려의 국왕은
몽골의 그 어느 귀족보다도 높은 대우를 받았다는 것이다
元제국은?
고려가 기근을 겪거나 자연 재해가 발생했을 때
대규모로 식량을 제공하는 등 경제적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c.유라시아 대륙의 절반이 거의 몽고제국 원나라의 말발굽아래 신음할 때, 나아가 러시아의 모스크바까지 그들의 치하에서 허덕일 때
즉 소위 팍스 아메리카나 의 호칭에서 패러디한
그당시 팍스 몽골리카 체제 하에서
고려왕국은 거의 유일하게 나라 이름을 유지하고
독자적 조세권과 징병권을 가졌던 것에 대해
위에서 언급한 바타르 교수는 말하길:
"고려가 元제국에 먼저 通婚 관계를 요구
이를 성사시킨 것이며
이는 고려 외교의 승리였다."
d.바타르 교수는 이어서
"1392년 조선을 건국하게 되는 이성계
몇 代에 걸쳐 성장한 고려계 몽골 군벌 가문 출신이었고
원나라의 직할 통치 기구인 쌍성총관부(雙成總管府)에서
거의 100년간 몽골 관직을 맡아 세력을 쌓았기 때문에
조선을 건국할 수 있었다."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리고 또 이어서
"이성계 가문은 직계 4대조까지 모두 몽골 이름을 가지고 있었으며
당연히 이성계도 청년 이전 시절에는
몽골 이름을 가졌으리라 추정해 볼 수 있지 않은가?."
"이성계 가문은 원제국 멸망 후 고려의 동북부 지금의 함경남도 지역을 대부분 통제하게 되었으며
원제국의 고려 지배로 인한 군사력이 약화된 고려왕실을 무너뜨리고 조선을 창업할 수 있었음에 틀림없다."
*** 위의 내용은 2009년9월30일자 조선일보의 이한수
기자가 보도한 내용임을 참고로 알려드립니다.
*******************
*******************
@@@ 다음은
조선왕조는 고려 뿐만 아니라
13-14세기 동북아시아 격변사의 총체적인 열매로 태어난
왕조임을
박사논문에서 강하게 주장한 윤은숙 박사의 논문
요약한 일부 내용을 이어서 기*고합니다.
1.조선 태조 이성계(1335-1408)는 고려계(系)몽골 군벌세력이었으며 조선왕조는 북방 유목 전통을 기반으로 건국한 국가이다.
2.윤은숙 박사의 논문 제목은?
'몽(蒙)-원(元) 제국기(期) 옷치긴 동북 만주 지배'
였다.
**윤박사의 주장은?
13-14세기 동북 만주 지역은 원나라의 otchigin(오트치긴
또는 옷치긴)王家가 지배하였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칭기즈칸이 1211년 자신이 정복한 영토를 여러 동생들에게
분봉했을 때
막내동생인 '옷치긴'에게
동북 만주 지역을 다스리게 하였던 것인 데
이 옷치긴 家는?
유목과 농경이라는 경제 인프라를 기반으로
이 동북만주지역에서 독립적인 세력을 형성할 수 있었다.
문제는 뭔가?
이 옷치긴 왕가의 지배 영역 안에
위에 언급한 대로 이성계 가문의 본거지가 있었다는 사실이다.
이성계高祖父 이안사(李安社-목조)는
전주를 떠나
두만강 유역인 오동지역에 자리잡은 뒤
1255년 5,000戶의 천호장(千戶長)과
다루가치(원나라의 지방관*리)의 지위를
원 황제로 부터 하사받았다.
千戶長이란 자리는?
몽골족이 아닌 사람이 임명되는 일이 아주 드문 고위 관*리로 ,
사실상 옷치긴가로 부터 승인받은 군벌세력이 된 것으로
보아야 한다(윤박사 주장)
1290년 옷치긴가문의 내분으로
이안사의 아들 이행리(李行里-익조)는
오동의 기반을 상실하고 함흥평야로 이주하였지만
천호장과 다루가치의 직위는
이행리의 증손자인 이성계 때까지 5대에 걸쳐 세습하게 된다.
다른 연계된 학위논문-
원제국 고려 지배세력 관계의 성격 연구- 을 쓴
바타르 박사는 말하길
:
"옷치긴 家를 통해 당시 최첨단이었던 몽골제국의 군사 기술을 직접 전수받은 이성계 가문은
옷치긴家에 직속된
오동과 쌍성총관부의 여러 조건들을 활용해
세력을 키워나간 것이다."
**이성계는?
1362년(위화도 회군 쿠데타 26년전)
원나라장수 나가추 와의 전투에서
이 첨단기술을 오히려 잘 이용하여 승리하게 된다.
**이어지는 윤박사의 주장은?
:
"1388년의 위화도 회군은?
몽골 내부 사정을 잘아는 이성계가
그 직전
원나라의 기본 무력이 무너졌음을 파악한 데서 나온
'몽골 출신 이성계장군의 배신'으로 보아야 한다."
"따라서 조선 왕조의 창업은 한반도의 자생적 산물이라고만 볼 수는 없다고 봅니다."
" 世界最高帝國 ++몽골의 진원지인
13-14세기 동북아 격변사의 총체적 열매로 태어난 왕조가
바로 조선왕조이다."
"親明 事大의 외형적 표방에도 불구하고
사실은?
팍스 몽골리카 체제의 중심인 북방 유목 제국적 전통을
조선왕조가 의연히 지켜낸 것이라 봅니다."
윤박사와 몽골의 바타르 박사 둘다 말하길:
"위에서 언급한 모든 내용은
조선 왕조의 역사가 몽골사의 일부라는 의미가 아니라
한반도의 범위를 벗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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