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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이산가족 두 번 못 만나는 非인도적 상봉-이대론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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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53 한준구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 댓글 0건 조회 2,650회 작성일 2014-02-24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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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제목과 관련한 다음 글을 찬찬히 읽어보시길 바랍니다.
사건·사고
1985년 첫 상봉행사 ‘만남’ 이후 30년…
 
“다시 못 본 어머니, 더 그리워요”
 
이지선 기자 jslee@kyunghyang.com
ㆍ80대 황준근 목사 인터뷰
ㆍ“못 만난 분들에 미안해 아무 소리 못하고 있죠”

“한번 만나고 나니 더 그리워요. 너무 아쉽지만 어쩌겠어요. 한번도 못 만난 분들께 미안해 아무 소리도 못하고 있죠.”

황준근 목사(87)는 1985년 분단 이후 처음 열린 ‘남북이산가족 고향 방문(이산 상봉행사의 당시 명칭)’에서 팔순 노모를 만났다. 첫 상봉은 남한에서 30명, 북한에서 35명이 서울 워커힐호텔과 평양 고려호텔에서 각각 두고 온 가족들을 상봉했다. 30년 전 서울에서 만난 어머니는 지금 아들의 나이보다 더 젊었다.

황 목사는 21일 경향신문과 인터뷰에서 “그 뒤 어머니와 한번도 만나지 못했다. 지금은 돌아가셨을 거다. 너무 아쉽다”고 말했다.

황준근 목사가 1985년 9월 분단 이후 첫 남북이산가족 고향방문단으로 방북해 평양 고려호텔에서 어머니 조희영씨와 만나고 있다(왼쪽 사진). 그로부터 근 30년이 흐른 21일 황 목사가 경기 양주시 자택에서 상봉 당시 어머니와 함께 찍은 사진을 내보이고 있다. | 경향신문 자료사진·박민규 기자
 

1985년 9월20일자 경향신문에도 황 목사 모자 상봉 얘기는 보도됐다. 첫 상봉단에 포함된 황씨는 어머니를 만나기 위해 성경포도주를 준비했다. “목사가 되어 돌아오겠다”는 약속을 절반은 지켰다고 어머니께 보여주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어머니는 교회를 지키겠다며 내려오지 않겠다고 하셨어요. 제가 5대 독자인데 괴나리봇짐 하나 쥐여주면서 ‘넌 떠나야 한다’고 하셨죠. 지금도 생생합니다.”

단 한번의 이산가족 상봉이 마지막이었다. 황 목사는 “내가 아쉽다는 말을 어떻게 하겠느냐. 나는 한번이라도 만났지만 평생 못 만나고 돌아가신 분들도 많다. 미안해서 아무 소리도 못하겠다”고 했다.

30년 전 첫 이산 상봉에서 가족과 만났던 상봉자들이 대부분 황 목사와 같은 처지로, 다시 북녘 가족들을 만나지 못하고 있다. 황 목사는 “상봉 이후 10년 동안은 같이 고향상봉에 나섰던 분들과 매년 상봉행사가 열렸던 9월20일에 만나 그때 이야기도 나누고 안부도 전했다”며 “이제는 대부분 세상을 떠나면서 모임도 끊겼다”고 말했다. 고향방문단 단장이었던 홍성철 전 국토통일원 장관을 비롯해 함께 상봉의 기쁨을 맛봤던 천주교 지학순 주교, 이성오 전 남북의료기 대표, 우대규 전 한일약품 사장 등이 별세했다.

황 목사는 현행 방식대로 이산가족 상봉행사를 진행하면 안된다고 말한다. 황 목사는 “지속적으로 서신 교환을 하고 생사확인을 하는 방식이 필요하다”며 “딱 한번 만나고 재회는커녕 연락조차 못하는 방식으로는 그리움만 쌓인다”고 했다.

그는 “만남 이후에 적어도 1년에 한번이라도 지속적으로 서신 교환은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헤어진 아픔이 더 커진다”며 “남북 모두 이 문제는 진정성을 갖고 풀어 갔으면 한다”고 거듭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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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은 못 만나는 ‘비인도적 상봉’, 이대로는 안된다
유신모 기자 simon@kyunghyang.com
ㆍ희망자 7만명인데 한 번에 100명
ㆍ생사 확인·서신 왕래 등 병행해야
ㆍ갈수록 고령화, 연간 3800명 사망

2000년 8월15일 남북 이산가족 상봉이 공식화한 이후 처음으로 서울에서 열렸다. 주름투성이의 이산가족들이 반세기 만에 만난 혈육을 부둥켜안고 눈물을 쏟는 장면은 전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사흘 뒤인 18일 이른 아침 벌어진 이별 장면은 훨씬 더 충격적이었다.

북측 상봉단을 태우고 공항으로 떠나는 버스 유리창에 얼굴과 손을 맞댄 채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고, 땅바닥에 주저앉아 대성통곡을 하다 끝내 실신하는 이산가족들의 모습은 눈뜨고 볼 수 없는 참상이었다. 이제 헤어지면 살아생전에는 다시 얼굴을 볼 수 없다는 엄연한 현실 앞에서 이들은 죽음보다 더 깊은 절망을 맛봤다. 행사 관계자는 “이런 상봉은 다시 있어서는 안될 비인도적 행사”라고 말했다.

이산가족들이 짧은 상봉을 마치고 헤어져 다시는 볼 수 없는 상봉 방식은 처음부터 문제로 지적됐다. 상봉 후유증이 너무 컸기 때문이다. 당시 김대중 대통령도 첫 상봉 행사가 끝난 뒤 “서신 왕래, 생사 확인, 면회소 설치가 가능한 한 짧은 시간 내에 이뤄지도록 노력하라”고 말했지만 지금까지도 변화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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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봉 이후 이산가족들은 브로커를 이용해 제3국에서 다시 재회하는 이른바 ‘민간 상봉’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민간 상봉은 막대한 비용이 드는 데다 북쪽의 가족이 위험 부담을 감수해야 하기 때문에 마음 놓고 추진하기 어렵다.

상봉 인원이 극소수라는 현실은 가장 큰 문제점이다. 이산가족 상봉을 신청한 12만명 중 지금까지 상봉이 성사된 사람은 2만여명에 불과하다. 현재 생존해 있는 신청자는 7만여명이지만 그나마 70대 이상의 고령자가 대부분이다.

현재와 같은 ‘정치적 과시용’ 상봉에 그치지 않고 실질적으로 이산가족의 아픔을 달래줄 수 있는 상봉이 되려면 먼저 이산가족의 수요를 세분해 파악하는 것이 급선무다. 국가인권보존소 윤여상 소장은 “상봉 신청자 중에는 생사 확인, 서신 왕래, 대면 상봉을 원하는 사람 등이 섞여 있다”면서 “대면 상봉만 추진하지 말고 생사 확인 작업을 병행해 생존자들끼리 소식을 전할 수 있도록 우선 조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산가족들의 고령화를 감안해 80대 이상의 고령자 우선으로 상봉을 추진해야 한다는 제안은 당연해 보인다. 상봉이 이뤄지고 난 뒤 제한적으로라도 근황을 알 수 있도록 후속 조치가 이뤄져야 한다는 방안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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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한반도
“규모·방법 다양화” 정부, 이산가족 상봉 행사 정례화 방안 추진
안홍욱 기자 ahn@kyunghyang.com
정부는 3년4개월 만에 재개된 남북 이산가족 상봉을 정례화하는 것을 추진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18일 국무회의에서 “앞으로 이산가족들이 자주 만날 수 있는 근본적인 대책을 세워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통일부도 올해 업무보고에서 ‘대북 협의를 통한 이산가족 문제의 근본적 해결’을 주요 업무과제로 제시했다. 정부는 이번에 형성된 남북 고위급 채널을 통해 이산가족 문제 해법을 제안할 것으로 보인다.

상봉 정례화는 2000년 6월 남북정상선언에 따라 상봉 행사가 열린 때부터 남측이 지속적으로 제기해온 문제다. 노무현 정부 때 금강산면회소 건설을 통해 상봉의 정례화·제도화 토대를 닦고, 2007년 10월 남북정상회담에서 상시 상봉 확대와 영상편지 교환사업 추진 등에 합의했지만 이후 진척되지 못했다. 이명박 정부에서 남북관계가 파탄나면서 남북 화해·협력의 상징인 이산가족 상봉이 직격탄을 맞은 때문이다.

청와대는 “이산가족 상봉과 같은 인도적 사안은 국제사회의 보편적 가치로 정치·군사적 문제와 연계될 수 없다”는 입장이지만 현실은 남북관계 상황과 밀접하게 연관돼 있음을 보여준다. 북한은 이산가족 상봉 문제를 대북 제재인 5·24 조치 해제, 금강산관광 재개와 연결시켜서 바라보고 있다. 박 대통령은 “북에서도 이 문제에 적극 나서야 할 것”이라고 촉구하고 있지만 이산가족 상봉 정례화를 위해선 남북관계의 실질적 개선을 위한 정부 움직임이 같이 이뤄져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 시각이다.

정치권도 상봉 확대를 한목소리로 주문하고 있다. 새누리당 황우여 대표는 지난 20일 “이산가족 문제는 시간을 다투는 문제로 상봉의 규모와 횟수, 방법을 다양화해서라도 인도적 차원에서 최대한 늘려야 한다”고 말했다. 민주당 김한길 대표도 21일 “대규모 남북 이산가족 상봉의 일상화가 필요하다”며 “민주당은 박근혜 정부의 남북관계 개선을 통한 통일 지향 정책을 적극 지원할 것”이라고 밝혔다. 김 대표는 “통일이 대박이 되려면 금강산관광 재개와 교류협력 활성화, 5·24 조치 해제와 인도적 지원 강화 등 실질적인 남북관계 개선이 선행돼야 한다”고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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