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신 제독이 맞고 안중근 장군이 맞다는 견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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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53 한준구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 댓글 0건 조회 3,158회 작성일 2014-02-27 07:10본문
몇년 전 어느 학자인지 잘 기억은 안나는 데
그분이 이순신 장군보다는 이순신 제독이 맞다고 주장한 바 있는 데
워낙 우리 국민들에게는 이순신 장군이라고 부르는 데 너무 익숙해서 그런지
다른 전문가들이 그냥 언급을 안하거나
그냥 무시하는등 아직은 그냥 소수 의견으로 남아있는 듯합니다.
이와 같은 이유로 인해
안중근 의사라고 우리가 늘 익숙하게 접했는 데
다시 안중근 장군이라고 주장하는 것도
어느 정도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될 지
하여튼, 국민적 여론 조사를 한 번 해보았으면 하는 바람도
저 한준구 개인적으로 있긴 합니다.
위의 두분의 전문 연구학자들이 모여 각각 토론회를 열기를 소망합니다.
인물 정보
- 조동성 교수, 사회기관단체인
- 출생
- 1949년 1월 12일
- 소속
- 서울대학교 (교수), 안중근 의사 기념관 (관장), 희망제작소 (이사)
- 학력
- 하버드대학교 경영대학원 경영학 박사
- 수상
- 1999년 산업포장
- 경력
- 희망제작소 이사
2011.09~ 한국프로축구연맹 사외이사
2011.03~ 제6대 안중근 의사 기념관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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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성 칼럼/2월 26일]
'將軍 안중근'이라고 불러야 하는 理由는?
올해는 안중근義士가 순국하신 지 104주년(104주기?)이 되는 해이다.
안중근의 하얼빈의거가 양국에 미친 영향에 관한 깊은 공감대가 이루어졌고,
지난 2014년 1월 19일
하얼빈역 구내에(청사內에)
'안중근의사 기념관'의 설치로 그 결실을 보게 되었다.
얼마전 2014.2.14일에는
밸런타인데이의 과도한 상업성을 지양하고
안중근의사 사형선고일을 기억하자는 움직임이 전국적으로 일어나기도 하였다.
우리나라와 중국의 이 같은 안중근 추모 열기와는 反對로
日本에서는?
'안중근은 테러리스트',
'살인으로 사형판결을 받은 인물'
과 같은 妄言(망언)이 최고위급 인사에 의해 반복돼
역사인식에 있어 큰 차이가 있음을 드러냈다.
이러한 때에
안중근의 생애를 다시 한 번 살펴보고
안중근의 몸에 흐르는 군인 정신을 되새겨 보겠습니다.
安重根의 가계는?
조선 후기 이래로 무과에 급제해온 무반 가문이었다.
진사였던 아버지 안태훈 역시 가병(家兵)으로 포수들을 거느리고 있었다.
안중근 역시 집안의 기운을 받아
어릴 적부터 청계동의 산과 들을 말을 달리고 사냥을 하며 자라났다.
안중근은 간도를 거쳐 연해주로 망명한다.
교육운동과 애국계몽운동에 참여하던 안중근은?
대한제국 의군에 참가한다.
1908년에는 300여명의 의병들을 이끌고 국내진입작전을 벌여
두만강 근처 홍의동과 신아산에서 승리를 거둔다.
일본군 포로를 석방한 결과,
석방 포로들의 안내에 따라
( 그당시 후환을 없애자고 안중근의 동료 일부는 그냥 없애자는 견해도 팽배하였다고 하나, 안중근은 제네바 협정같은 국제법을 준수하여 그들을 방면하게 하고,
그들도 한 편 안중근 정신에 감화되었겠지만
살아남기 위해 '생포후 탈출했다'고 거짓 증언하고
길 안내하기는 내키지 않았지만
목숨 부지를 위해 할 수 없이 일본군의 안내자가 되었을 공산이 크지 않았나 하는
저 한준구의 소견임을 참조바랍니다. 여기서도 안중근의 위대성이 돋보입니다)
공격을 가한 일본군과의 영산전투에서 패해 세력을 잃게 된다.
안중근은 ?
1909년 왼손 약지를 잘라(그의 순국 직전의 사진의 손을 보면 알게됩니다)
11명의 동지와 斷指(단지-끊을 단 손가락지)동맹을 맺으며 대일항쟁을 계속할 것을
다짐한다.
1909년 10월 26일 러시아 재무대신과의 회담을 위해 하얼빈을 방문한 이토 히로부미는?총성과 함께 최후를 맞았다. 일본 제국주의의 상징이었던 이토를 쓰러뜨린 주인공은 한국인 안중근이었다.
현장에서 체포된 안중근은?재판정에서 대한제국 의군 참모 중장의 자격으로 이토를 사살했으니 군사재판을 열어달라고 요구하였다. 그리고 義兵전쟁을 대한제국과 일제의 전쟁으로 규정하였다. 이와 동시에 일제의 한국침략 상황을 세계에 폭로하면서 자신이 참가하고 있는 전쟁은?조국의 독립과 동양의 평화 구현을 위한 전쟁이라고 설명하였다.
1심에서 사형선고를 받은 안중근은? "일본에 무릎 꿇지 말고 담담히 사형을 받아들이라"는 어머님 조마리아 여사의 말씀대로 항소를 포기하고 죽음을 받아들인다. 그리고 1910년 3월 26일 (2월14일은 사형 언도일)사형집행일 가장 마지막으로 만난 간수 지바 도시치에게 '爲國獻身軍人本分(위국헌신군인본분ㆍ나라를 위해서 헌신하는 것은 군인의 본분)'이라는 휘호를 마지막으로 써주고 형장으로 향했다. 안중근은 군인으로서 죽음을 맞이한 것이다.
현장에서 체포된 안중근은?재판정에서 대한제국 의군 참모 중장의 자격으로 이토를 사살했으니 군사재판을 열어달라고 요구하였다. 그리고 義兵전쟁을 대한제국과 일제의 전쟁으로 규정하였다. 이와 동시에 일제의 한국침략 상황을 세계에 폭로하면서 자신이 참가하고 있는 전쟁은?조국의 독립과 동양의 평화 구현을 위한 전쟁이라고 설명하였다.
1심에서 사형선고를 받은 안중근은? "일본에 무릎 꿇지 말고 담담히 사형을 받아들이라"는 어머님 조마리아 여사의 말씀대로 항소를 포기하고 죽음을 받아들인다. 그리고 1910년 3월 26일 (2월14일은 사형 언도일)사형집행일 가장 마지막으로 만난 간수 지바 도시치에게 '爲國獻身軍人本分(위국헌신군인본분ㆍ나라를 위해서 헌신하는 것은 군인의 본분)'이라는 휘호를 마지막으로 써주고 형장으로 향했다. 안중근은 군인으로서 죽음을 맞이한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가 안중근義士를
안중근 將軍으로 불러야 하는 理由로 다섯 가지를 들 수 있다.
첫째,
안중근의 하얼빈 의거 성격이다.
하얼빈역에서 일어난 안장군의 저격은 개인의 정치적 목적을 위해 불특정 다수를 살상하는 '테러'가 아니라
전쟁터에서 적군의 수괴 이토 히로부미를 향한 군사작전의 일환이었다.
둘째,
안중근이 총을 겨눈 상대방의 신분이다.
안중근은 이토 히로부미와 영사, 관*리들만을 정조준했고,
민간인은 단 한 사람도 다치게 하지 않았다.
이 점에서 안중근의 거사는 일반인을 포함해서 일으키는 테러와 다르다.
셋째,
국제법을 어기고 사형을 선고한 일본 법정의 1심 선고에 대해 안중근은
항소를 포기하였다.
자신이 1심으로 이뤄지는 군사재판정에 서 있다는 각오를 보여준 것이었다.
넷째,
안중근은 재판장에게 자신을 참모 중장으로 불러달라고 했고,
군사재판을 열어달라고 했으며,
다섯째,
동서를 막론하고 적장의 주검을 적에게 인도하는 것은 불문율이다.
안중근 유해를 가족에게 돌려주지 않은 일본은?
국제 正義 관점에서 비판받아 마땅하다.
전 세계가 안중근을 군인으로 인정한다면?
우리가 일본정부에 유해를 정식으로 요구할 수 있는 근거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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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대한민국 육군은?
2010년 대한민국 육군은?
ㄱ.대한제국 義軍에 대해 한국군으로서의 자격을 인정하고,
ㄴ.안중근을 장군으로 부르기로 했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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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성 교수는?
지난 36년간 서울대에 재직하면서
외국어 서적 7권을 비롯해
@++한국일보사측 및 ^^^조동성 교수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위의 글중에서 일부는?
저 한준구가 첨언 및 윤문했음을 양지 요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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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전쟁 중에 적장 저격 안중근 장군은 평화주의자” 주간동아 2일전
[주간동아] 조동성 안중근의사기념관장. 한국을 대표하는 경영학자 조동성 서울대 경영학부 교수가 2월 20일... 바람입니다. ” 조동성 관장이 안중근 의사의 사형 재판 현장을 재현한 모형 앞에서 당시 정황을 설명하고... 네이버에서 보기 관련기사 보기 이 언론사 내 검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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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이순신 제독 관련 글입니다. 필독 요망합니다.
아래 웹문서 운영대표님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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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 장군?? 이순신 제독??생생海 2011/04/25 1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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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 페니키아의
육군과 공군의 장성급 장교를 장군이라고 호칭하는 것과는 달리,
해군에서는 제독이라는 명칭을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 알고 계신가요?
해군에서는 제독이라는 명칭을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 알고 계신가요?
그리고 서양권에도 이를 구분하여 사용하고 있는 바 우리에게 있어서 장군을 General로 제독을 Admiral로 부르고 있습니다.
Admiral VS General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먼저 General과 구분되는 Admiral의 의미를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Admiral의 호칭의 기원은 고대 페니키아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있습니다.
Admiral의 호칭의 기원은 고대 페니키아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있습니다.
일찍이 페니키아 인은 해양으로 나가 활동을 하였으며 배를 건조하는 기술에 능하고 연안 항해술이 밝아 지중해를 누비며 해외 식민지를 경영하고 통상 교역을 번창하였던 민족이었죠.
지중해를 장악하였던 페니키아인
이때 페니키아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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