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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팬 필독 요망-유럽 최고 리그로 부활한 분데스리가와 차범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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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53 한준구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 댓글 0건 조회 2,875회 작성일 2014-02-24 0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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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대전 패전 이후 다시 경제 부흥을 일으킨 서독--당시 통독 20년전--은
70년대 중반 유럽 최고의 리그 즉 분데스 리가를 만들기에 이르게 됩니다.
70년대 후반 아시아 최고의 축구 스타 차범근은 당시에는 너무나 생소했던 유럽 진출 즉 독일 분데스리가로 진출하게 됩니다.
당시 일본의 오쿠데라 선수가 먼저 분데스리가에 발을 먼저 내 디뎠지만
차범근이 제대로 활약하는 반면 그는 붐붐차에 밀려서 빛을 못보게 됩니다.
차범근이 성공적인 데뷔와 맹활약을 하게 되자 축구 장사꾼으로 유명한 네덜란드 축구팀중의 하나인 아인트 호벤에서
차범근 말고 아시아에서 누가 볼 잘 차느냐고 아시아 축구인들에 묻고는 이내 한국의 진도개 허점무를 당시 화란 즉 네덜란드로
스카웃되어 갑니다. 당시 노장급의 히딩크하고는 같이 뛸 기회는 없었다고 합니다.허정무의 따님중 이름이 허화란이 있습니다
당시 차범근은 아시아의 갈색의 폭격기로 독일 축구팬들의 뇌리에 아름답게 각인되어 있으며 외교관 100명이상의 역할을 했다고
하는 분들이 다수 있습니다.
차범근은 감독으로서는여러모로 고려해 볼때 75점이상 주기는 어렵지만(그는 감독 운이 없을 때가 훨씬 많았다)
스타 출신 감독은 감독으로서 대성하기 힘들다 라는 스포츠 격언이 물론 있긴 합니다만-----
선수로서는 거의 100점에 가까운 선수로서 한국 축구 100년에서 최고의 단 한명을 꼽을라 치면
다수가 차범근을 뽑는다고 합니다.(전문가들의 선택시)
최고의 유럽 리그를 꼽는다면?
70년대에는 분데스리가
80년대에는 세리에 A(에이가 아니라 발음상 그냥 아 임)
90년대에는 스페인 리그(프리메라 리가 또는 라 리가 프리메라)
2000낸대에는 프레미어 리그(영국인들은 과반은 프리미어 리그라고 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2010년대에는 아마도 2008년 무렵부터는 독일의 분데스 리가가 다시 활성화되어 이젠 프레미어리그를 넘어서는 소위
오버래핑 과정이라고 저는 봅니다.(한경기 평균 4만명은 오직 분데스리가 밖에 없습니다)
차범근 처럼 하드웨어가 대형선수가 아닌 손흥민선수는?
리오넬 메시 처럼 손메시가 되어주길 기원합니다.(물론 부상없이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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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슨 전차’에서 ‘꿈의 무대’로…
진격의 분데스리가
박찬하 | 채널M 분데스리가 해설위원
ㆍ2005년 도르트문트 파산의 ‘교훈’… 중계권료 비중 크게 낮추고 이적료·연봉 등 무리한 지출 줄여 재정건전성 확보

2012~2013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은 바이에른 뮌헨과 보루시아 도르트문트가 맞붙은, ‘독일 클럽들의 잔치’였다. 두 팀은 바르셀로나와 레알 마드리드를 격파하며 ‘엘 클라시코’ 대신 ‘데어 클라시커’를 만들어냈고 세계 축구의 중심을 독일로 끌고 오는 데 성공했다. 스페인 시대의 종말을 고하고 이른바 ‘독일 분데스리가 대세론’에 힘이 실리는 순간이었다. 1963년 분데스리가 창설 이후 여러 클럽이 유럽 정상에 올랐지만 이처럼 거대한 성공을 이뤄내며 돋보이는 활약을 펼치지는 못했다. 분데스리가 클럽 간의 유럽 챔피언스리그 결승은 처음이었고, 이전에 독일 팀이 우승을 차지한 것도 2001년이었으니 말이다.

분데스리가의 습격은 한편으로 놀랍지만 결과적으로는 장기적인 계획이 뒷받침돼 이룬 쾌거다. 1970년대 승부조작 스캔들을 극복하고 유럽 무대에서 강자로 군림하던 시기도 있었지만, 이후 빠르게 변화하는 유럽 축구 시류에 올라타지 못하며 중심에서 조금씩 멀어져갔다. 유럽 대항전에서 경쟁력도 잃어 1990~2000년대를 거치면서는 ‘유럽 빅3’ 자리에서 밀려났다.

유럽 최고 리그로 발돋움하고 있는 분데스리가에 진출한 레버쿠젠의 손흥민(왼쪽)이 지난해 11월9일 레버쿠젠 바이아레나 홈구장에서 열린 리그 함부르크전에서 한국인 첫 유럽리그 해트트릭을 기록한 뒤 동료들로부터 축하를 받고 있다. 레버쿠젠 | AP연합뉴스

■ 위기를 기회로 ‘뿌리 깊은 탄탄함’ 갖춰

하지만 분데스리가는 흐름에서 잠시 멀어졌던 시기에 조바심을 내지 않고 오히려 내실을 다지는 기회로 삼았다. 다른 빅리그들의 선전과 관계없이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걸어간 것이다. 분데스리가의 궁극적인 목표는 모든 클럽이 건전하고 투명하게 운영되면서 성적까지 뒷받침되는, 뿌리 깊은 탄탄함을 갖추는 데 있었다.

내수시장 인기는 재정건전성을 시작으로 분데스리가의 목표가 하나씩 가능해진 중요한 지표였다. 막대한 관중 동원력은 타 리그와 비교했을 때 내세울 수 있는 그들만의 자랑이자 강력한 무기였다. 분데스리가는 경기당 평균관중이 4만명을 넘어 세계 1위를 자랑한다. 2012~2013 시즌에는 이전 시즌보다 늘어난 1경기 평균 4만4293명이 경기장을 찾았다. 이처럼 많은 관중이 경기장을 찾음으로써 클럽들은 고정 수입을 기대할 수 있게 됐고 입장권 수익뿐 아니라 식음료, 머천다이징 등 관련 상품으로 벌어들이는 수입도 늘었다. 스폰서십은 매력적인 분데스리가를 향해 끊임없는 구애를 펼치며 지갑을 열었다. 관중 동원-인기 상승-스폰서십-수익 증가로 이어지는 연착륙이 가능해진 것이다. 타 리그가 부러워할 만큼 매우 건전한 운영 방식의 성공적인 정착이라 할 수 있다.

1990년대 이탈리아 세리에A와 2000년대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의 발전에는 TV 중계권료가 밑바탕이 되었다. 현 프리메라리가를 이끄는 쌍두마차 바르셀로나와 레알 마드리드의 성공 역시 거액의 중계권료를 등에 업고 있다. TV 중계권료의 폭등은 클럽들에 엄청난 수익을 안겼고 구단 수뇌부는 늘어난 수입으로 전력을 보강하며 강자로 군림해왔다.
분데스리가 역시 1990년대 비슷한 기회를 잡을 수 있었다. 키르히 그룹이 1990년대 초부터 분데스리가 중계권을 사들이며 전체적인 중계권 규모를 키웠는데 2002년 키르히 그룹이 파산하면서 리그에 큰 타격을 입혔다.
1997년 유럽 정상에 오르고 2001~2002 시즌 독일 챔피언이었던 도르트문트가 2005년 충격적인 파산 상태에 직면했던 것도 중계권료가 제대로 들어오지 않으면서 돈줄이 막혔기 때문이다. 물론 거액의 중계권료만 믿고 지출을 늘렸던 책임도 피할 수는 없지만 이 사건은 당시 분데스리가가 어떤 어려움에 부닥쳤는지를 알려주는 단적인 예로 꼽힌다.
다행스럽게도 방송사 파산은 분데스리가 클럽들의 수익 구조에서 중계권료가 차지하는 비중을 바람직할 정도로 줄이는 결과로 이어졌다. 구단들은 중계권료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어떻게 더 많은 관중을 경기장에 부를 것인가를 고민했다. 저렴하고 다양한 입장권 가격 정책으로 팬 숫자를 늘렸으며 새 경기장 건설과 기존 경기장의 증축 기회였던 2006년 독일 월드컵을 잘 활용했다. 그 결과 2012~2013 시즌 분데스리가는 2011~2012 시즌보다 4.4% 증가한 21억7000만유로(약 3조1641억원)의 수입을 얻었다. 2부리그인 분데스리가2도 9.1% 상승한 4억1940만유로(약 6115억원)의 수입을 올렸다.

딜로이트 풋볼 머니 리그에 따르면 바이에른 뮌헨은 2012~2013 시즌 유럽에서 세 번째로 많은 4억3120만유로(약 6287억원)를 벌어들였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4위로 내리며 직전 시즌보다 1단계 상승했다. 하지만 뮌헨의 중계권료는 1억700만유로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첼시, 유벤투스, AC 밀란보다 적다. 대신 상업적인 부분의 수입을 크게 늘리는 수완을 발휘했다. 만약 뮌헨이 바르셀로나만큼 중계권 수입을 얻었다면 유럽에서 가장 많은 돈을 번 레알 마드리드와 쌍벽을 이뤘을 것이다. 아시아 시장을 시작으로 파이 확보에 나서 조만간 수입이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분데스리가 클럽들은 또 무리한 지출을 지양해 재정건전성을 확보했다. 이는 도르트문트의 파산이 알린 경고 덕분이기도 하다. 클럽들은 지출을 줄이려고 인건비로 분류할 수 있는 ‘이적료+연봉’을 수입 대비 일정 수준 이하로 묶어뒀다. 빚을 내서 선수를 영입하는 일은 꿈도 꿀 수 없다. 클럽 라이선스 박탈까지도 가능한 분데스리가의 꼼꼼한 재정 관*리가 만들어낸 결과다.

■ 지도자·유소년에도 아낌 없는 투자

대신 좋은 선수들을 키워낼 지도자와 유소년 시스템에 아낌없이 투자했다. 독일은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 결승에 올랐지만 녹슨 전차라는 오명 속에 준우승에 그쳤다. 이후 독일 축구협회(DFB)는 모든 분데스리가 팀에 유소년 시스템을 운영하도록 지시하는 등 풀뿌리부터 시스템을 바꾸어 나갔다. 각 팀은 ‘우리의 아들’을 길러내 홈 관중을 매료시킨다. 유소년 시스템은 독일 대표팀을 이끄는 중심축을 20대 중반으로 바꾸는 등 독일 축구의 힘을 더 강하게 만들고 있다.

UEFA 지도자 자격증 가운데 가장 높은 레벨인 ‘PRO’를 소지한 지도자도 스페인보다 월등히 많은 3만5000명을 넘어섰다.

분데스리가는 승부조작, 관중 감소, 방송사 파산, 국제무대 성적 하락 등 모든 위기를 딛고 오늘의 자리에 올라섰다. 위기를 기회로 삼아 내실을 다진 덕분이다. 18개 클럽으로 운영돼 겨울 휴식기를 이용해 상대적으로 유럽 무대에 집중할 힘을 비축한다는 것도 장점이다. 이미 분데스리가는 3년 전 이탈리아 세리에A를 제치고 UEFA 랭킹 3위로 올라섰으며 1·2위를 다투는 스페인과 잉글랜드를 쫓고 있다. 이 모든 것이 최고에 올라서기 위한 과정들이다. 그게 바로 유럽 정상을 향해 묵묵히 전진하는 분데스리가의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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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데스리가의 한국인 1호 차범근,
한 시즌 17골 ‘레전드’
양승남 기자 ysn93@kyunghyang.com
한국에서 독일 분데스리가를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이름, 차범근(61). 지금은 차두리(FC서울)의 아버지, 해설위원으로 친숙하지만 그를 빼놓고 한국 축구와 분데스리가를 말할 수 없다.

1972년 20세의 나이로 최연소 국가대표에 뽑힌 차범근은 일찌감치 탈(脫)아시아급의 대형 공격수로 주목받았다. 1979년 프랑크푸르트에 입단하며 본격적인 분데스리가 생활을 시작한 차범근은 1979~1980 데뷔 시즌에 12골로 득점 7위에 올랐다. 동양에서 온 공격수 차범근은 1년 만에 독일 팬들을 사로잡았다. 빠른 발을 이용한 공간 활용과 파워 넘치는 공격은 금세 ‘갈색 폭격기’ ‘차붐’이란 별명을 만들었다. 이후 프랑크푸르트, 레버쿠젠 등을 거치며 10시즌 동안 활약은 꾸준히 이어졌다.


2006년 MBC가 월드컵 특집으로 방영한 <독일의 코레아너, 차붐>에 등장한 차범근.

그가 남긴 발자취는 실로 대단하다. 2번의 UEFA컵(현 유럽챔피언스리그) 정상에 오르고 1985~1986 시즌에는 17골을 터뜨려 리그 득점 4위에 올랐다. 이 기록은 아직도 분데스리가에 진출한 아시아 선수 한 시즌 최다골로 남아 있다. 1989년 현역에서 은퇴할 당시 분데스리가에서 기록한 98골은 당시 외국인 선수 최다 득점이었다.

경기 매너도 깨끗했다. 선수 생활 동안 단 한 장의 옐로카드만 받았고, DFB(독일축구협회) 포칼과 UEFA컵 등까지 합쳐 터뜨린 126골은 모조리 필드골이었다. 그는 “선수 시절 페널티킥 공포증을 겪어 키커로 나서지 않았다”고 말했지만 그렇기에 순도 높은 골은 더욱 가치 있게 평가된다.

차범근은 은퇴 후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여전히 독일인과 세계 축구팬의 사랑을 받는 선수로 남아 있다. 국제축구역사통계연맹(IFFHS)이 ‘20세기 아시아 선수’로 그를 선정한 것은 세계 축구가 그를 어떻게 바라보는지 알 수 있는 상징적인 일이다.

2014년, 한국 축구에서 제일 잘나간다는 손흥민(레버쿠젠)이 아직은 넘볼 수 없는 레전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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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 차범근·제2 손흥민 꿈꾸는
한국 선수에 ‘기회의 땅’
황민국 기자 stylelomo@kyunghyang.com
지동원(23)이 지난달 아우크스부르크(독일)에 재입단하면서 독일 분데스리가에서 뛰는 한국 선수는 그를 포함해 손흥민(22), 류승우(21·이상 레버쿠젠), 구자철(25), 박주호(27·이상 마인츠), 홍정호(25·아우크스부르크) 등 6명이 됐다. 분데스리가 한국 전성시대다.

분데스리가에 한국 선수들이 몰리는 것은 그만한 매력이 있어서다. 분데스리가는 이미 평균 관중에서 영국 프리미어리그와 스페인 프리메라리가를 훌쩍 따돌렸고, 유럽축구연맹(UEFA) 국가별 랭킹에서도 최상단을 차지했다.

개방된 분데스리가의 정책도 한몫했다. 스페인과 이탈리아가 유로 가맹국 시민권을 가진 선수들만 자국 선수로 인정하는 것과 달리 독일은 유럽축구연맹 가맹국 시민권자에게도 문호를 열었다. 동유럽 선수도 용병에서 제외돼 남미나 아시아의 재능있는 선수들에게는 기회의 땅으로 불린다.

한국 선수들도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손흥민이 분데스리가에서 첫 물꼬를 튼 뒤 구자철까지 잇따라 성공하며 ‘한국 선수는 믿을 수 있다’는 강한 인상을 남겼다.

2년 새 한국 선수만 3명을 데려온 아우크스부르크가 대표적이다. 임대 선수인 구자철이 5골·1도움을 올리며 극적으로 1부리그 잔류를 이끌자 그의 추천을 받아 지동원과 홍정호를 데려왔다. 그 결과 생존이 고민이었던 아우크스부르크는 올해 중위권을 유지하고 있다.

레버쿠젠은 아예 한국 유망주로 눈을 돌렸다. 1000만유로(약 144억원)라는 거액을 들여 손흥민을 데려온 레버쿠젠은 그가 공격의 한 축으로 자리를 잡자 아직 기량이 검증되지 않은 류승우를 입단시켰다. 손흥민의 옛 소속팀 함부르크도 지난해 12월 권로안(18)과 김동수(19)를 데려와 제2의 손흥민 키우기를 시작했다. 한국 선수에 대한 강한 확신이 없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최근 한국 선수들의 활약상은 여기에 불을 지피고 있다. 손흥민은 지난 8일 묀헨글라드바흐전에서 골을 넣어 두 자릿수 득점(리그 8골·컵대회 2골)을 기록하고 있고, 지동원은 아우크스부르크에 입단하자마자 강팀 도르트문트를 상대로 득점포를 쏘아올렸다. 구자철과 박주호도 매 경기 선발로 출전하면서 입지를 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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