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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록 속의 태종과 세종 및 우리 현대의 자화상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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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53 한준구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 댓글 0건 조회 1,337회 작성일 2013-12-05 00:41

본문

 
 
 
 
 
 

 

實錄이라는 거울에 비춰보는

 

 

 

우리들의 자화상

 
 
 
 
 
 
 
기사입력 2013-11-30
 
 
 
 
 
 
이종수 연세대 교수·행정학
가끔 시간이 날 때 조선왕조실록을 읽는다.

태조부터 철종까지 25대 472년간에 걸친 기록으로 1893권에 이르는 분량이니 무리하게 속도를 낼 수가 없다.
 
 
한자에 밝은 사람이 매주 한 권씩을 읽는다 해도
 
 
38년이 걸릴 기록이다.
우리의 조상들이 임금조차 볼 수 없게 하며 방대한 실록을 편찬하고 보관한 이유는 오직 하나, 후손들이 그것을 보라는 뜻에서였다.

많은 사람이 알다시피 실록과 사초는 임금이 볼 수 없었다. 권력에 굴복하지 않고 역사를 바르게 써서 교훈을 얻고, 그것을 통해 뒷날의 잘못을 경계하려는 생각,
곧 ‘감계(鑑戒)’ 때문이었다.
이 시대적 규범이 당시 살아있지 않았다면 실록은 권력자의 자화자찬이 되어 불쏘시개가 되어 버렸을
것이다.

어떤 날 읽은 실록의 내용은 그날 신문기사와 묘한 유사성을 보이기도 하고, 어떤 날은 묘한 대조를 이루어 머리에 계속 남을 때가 있다.
요즈음엔 하도 사초 실종, 또는 사초 유출이라는 말들을 하니 그와 관련된 장면들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는다.

1431년 3월 20일 세종은 아버지 태종을 사관들이 어떻게 기록했는지 궁금했다. 그래서 왕은 신하들에게 선왕에 대한 실록을 보고 싶다고 말했다.
 
 
이에 우의정 맹사성과 윤회(尹淮), 신장(申檣)
“전하께서 이를 고치시는 일이야 있겠습니까. 그러하오나 만일 전하께서 이를 보신다면 후세의 임금도 이를 본받아 고칠 것이고, 사관(史官) 또한 군왕이 볼 것을 의식하여 사실대로 기록하지 않을 것이니 어찌 후세에 그 진실을 전하겠습니까”라고 하자 임금은 “그럴 것이다”하고 물러섰다.


7년 후인 1438년 3월 2일 세종은 또다시 실록을 보고 싶다고 했다.
 
 
이번에는 황희와 신개가 나서
 
 
 
“만약 사기를 보는 게 자손으로 전해지면 후세에 그른 일을 옳게 꾸미고 단점(短點)을 장점으로 두호(斗護)할 것이니 천년 후에 무엇을 믿겠습니까”라고 했다. 임금은 다시 물러섰다.
물러섰을 뿐 아니라 그 후 어떤 조선의 왕도 실록을 보지 않는 규범이 섰다.
 
 
 
태종에 대한 재미있는 실록의 기사도 있다.
1404년 즉위 4년째를 맞은 태종은 2월 8일 친히 화살을 가지고 말을 달려 사냥을 나갔다. 노루를 쫓다가 말이 거꾸러지면서 태종이 말에서 떨어졌다.
다행히 상하지 않은 임금은 좌우를 돌아보며 “사관이 알지 못하게 하라”고 했다. 사관은 임금의 말까지 그대로 실록에 썼다.

실록의 이 기록들은 필자에게 역사도 사초도 아닌 시대의 공공성(公共性) 문제로 다가온다. 그리고 오늘의 우리 사회에 무너진 공공성의 모습과 자꾸만 겹쳐진다.

민주당 인사들의 집권 기간에는 남북회담 회의록이 국가기록원에 정상적으로 인계되지 않은 ‘사초 실종’ 문제가 발생했고 새누리당 인사들의 집권 기간에는 불법적으로 회의록이 유출된 ‘사초 유출’ 문제가 발생했다.
양측의 고소를 받은 현재의 검찰은 실종과 유출의 진실조차 규명하지 못하고 있다. 실종의 책임을 도덕적으로라도 통감해야 할 지도자는 “회의록은 멀쩡히 잘 있다”고 외치고, 회의록의 불법적 유출 혐의로 조사받은 여당 실세는 “‘찌라시’에서 보았다”고 해명했다. 대통령에 출마했던 지도자와 차기 후보로 거론되는 지도자의 발언에 담겨 있어야 할 책임감의 궤적은 찾을 길이 없다.

천하를 다스리던 임금조차 위민(爲民)과 역사를 논하는 신하 앞에 자신의 욕심을 버리고 사회적 규범을 따른 지 582년,
 
 
 
부끄러운 모습을 적지 말라는 임금의 뜻에 아랑곳하지 않고 직필의 소명을 사관이 다한 지 609년이 되었다.
그 세월을 거치며 우리가 가꾸어온 사회적 공공성이라는 것의 수준이 실록의 거울에 초라하게 비치고 있다.
겉으로 드러나는 회의록 관련 갈등이나 보수와 진보 사이의 갈등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그것을 다루는 사회적 공공성이 무너진 모습이 더 엄중한 문제다.
역사의 의미와 엄중성을 내세우는 신하 앞에 임금조차 순순히 물러서는 규범과 예(禮)의 형상이 새삼 그립다.

이종수 연세대 교수·행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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