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歷史-안정복의 ^^동사강목-그의 치열한 ***역사 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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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53 한준구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 댓글 0건 조회 1,436회 작성일 2013-11-24 21:55

본문

 
 
 
 
 
 
 
 
엄격했던 순암 안정복선생의
 
 
역사인식
 
 
 
이기환 선임기자 http://leekihwan.khan.kr
▲ 순암 안정복의
 
 
학문과 사상…
 
 
 
임형택 외 | 성균관대 출판부
 
 
 
 


“위만조선과 기자조선은 고조선에 포함시키되… 기자동래설이나 기자 운운하는 용어는 사용하지 않는다.”

1963년 8월8일 발표된 국사교과서 내용 통일안 가운데 한 대목이다.
하기야 당시 학자들이 저마다의 학설을 고집하는 바람에 서로 다른 내용의 교과서들이 발행된 것도 문제였겠다.
그러나 역사교과서를 정치적으로 ‘통일’할 일인가.
필시 위만이나 기자가 중국인 신분이라는 점을 저어했으리라.
 


최근 나온
<순암 안정복의 학문과 사상>(임형택 외 지음) 및
<순암 안정복의 동사강목연구>(강세구 지음) 등을 읽으면서
한숨이 터져나왔다.
새삼 요즘의 역사의식이 순암(1712~1791)이
 
 
<동사강목>을 썼던 시절보다 훨씬 못한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순암 안정복선생은?
 
 
 
독학으로 공부하다가 35살이 돼서야
 
 
성호 이익의 문하생으로 들어갔다.
과거시험은 보지 않았다.
 
38살에 비로소 스승(이익)의 천거로
 
 
동몽교관(초등교 교사)이 됐다.
 
 
지금의 기준이라면
 
 
영락없는 ‘재야 사학자’의 대우를 받았을 것이다.
그러나
당대 지식인 사회에서
 
 
 
누구도 그를 무시하지 않았고, 무시할 수도 없었다.
 
“<삼국사기>는 소략하고
<고려사>는 요점이 적으며
<동국통감>은 의례에서 크게 벗어났다.
여러 역사서가 그 오류를 그대로 답습한다.”
 
 
 
(<동사강목> ‘자서’)

 
 
순암은
“주자의 <통감강목> 필법에 따라
 
 
우리나라의 역사를 다시 쓰겠다”
는 의지를 다졌다.
 
 
그것이 <동사강목>이다.
순암은
‘단군조선→
기자조선→
마한→
삼국통일 이후(문무왕 9년·669년부터)의 신라→
후삼국 통일 이후(태조 19년·936년부터)의 고려→
조선’이라는 정통 계보를 엄격하게 그렸다.
“동이(구이)의 일파인 단군은 개국시조”였고,
 
“문물을 일으켜 인현의 교화를 베푼 기자
 
성인”이었다.
순암이 정통으로 쳤던 기자는
 
일제강점기와 해방 이후 국내 학계에서 부정됐다.
중국인(상나라 왕족)인 기자의 동래를 두고
중국인들이 중화사상에 입각해서 조작한 역사가 아니냐는 인식이 퍼졌기 때문이었다.
1963년 국사교과서 통일안에서 기자가 빠진 배경이다.
하지만
 
<사기> <한서> 등에 등장하는
 
 
기자의 존재를 마냥 무시할 수 있을까.

 
기자의 출신국인
 
 
 
상나라가 동이족의 분파라는
 
 
 
학설이 설득력 있게 제기되고 있으니 말이다.
 
1930년대 인쉬(殷墟) 발굴을 책임진 푸스녠(傅斯年)과
역사학자 왕궈웨이(王國維)는
상의 선조가 동북에서 황허 하류로 와 나라를 건국했고
 
기자가 상 멸망 이후 (본향인) 동북으로 돌아갔다”면서
 
기자의 ‘종선왕거(從先王居)’를 주장했다.
상나라 귀족묘에서 출토되는 유골들도 한족과는 확연히 다른
 
 
동북방 인종의 특징을 나타내는 등
 
 
 
각종 고고학 자료들도 심상치 않다.

반면 순암은
‘위만’을 ‘참국(僭國)’으로 폄훼했다.
 
조선의 신하로 귀순한 위만
 
 
 
‘정통인 기자조선의 준왕(기준)을 쫓아내고
 
 
왕위를 찬탈했다’는 것이다.
대신 위만에 쫓겨 남쪽으로 내려가
금마군(익산)에 도읍한
 
 
 
‘준왕의 마한’에 정통의 지위를 부여했다.
 
 
 
마한의 정통기간은
 
 
기준 원년(기원전 192년)부터 온조 27년(기원후 9년)까지
 
 
202년이다.
 
 
순암
마한 멸망 이후(기원후 10년)부터 고구려 멸망(668년)까지의
 
 
삼국시대를 ‘무통(無統)’으로 분류했다는 점이 흥미롭다.
삼국이 팽팽한 접전을 벌였던 만큼
‘정통이 없던 시기’라는 뜻이다.
 
 
 
고려의 경우
 
태조 원년(918년)부터 후삼국 통일(935년)까지를 ‘참국’으로
 
 
분류했다.
 
왕건이 ‘도적’인 궁예의 부하였을 뿐 아니라 여전히 정통인 신라가 존속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순암은 후삼국을 통일한 936년부터의 왕건에게
 
 
겨우 정통의 지위를 부여했다.
 
 
 
그렇게 엄격했던 순암이었지만
역사 서술에는 신중 또 신중했다.
역사를 기록하는 자가 하나가 아니므로
 
 
허실이 복잡하게 얽히고 애증이 감정에 따른다.
 
 
재능이 없다 해도 저울대와 같은 마음을 갖는다면
 
 
실수를 가려낼 수 있을 것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멋대로 역사를 기록하려는 사람들이
 
 
 
반드시 곱씹어야 할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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