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3.11.25 19:21수정 : 2013.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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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영길과 나아지는 살림살이’의 권영길 이사장은 지난 20일 인터뷰에서 박근혜 정부의 통합진보당 해산
심판 청구를 “공안 탄압”이라고 비판하는 한편 통합진보당에 대해서도 “국민의 지지를 받을 수 있는 반성과 토론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
[한겨레가 만난 사람] 시민운동가로 돌아간 권영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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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영·길’ 이름 석자는 한국 진보정치의 상징이다. 1997년 ‘국민승리21’ 후보로 대선에 출마한 것을
시작으로, 2000년 민주노동당 창당, 2004년 의회 진출 등 그의 정치 역정은 모두 한국 진보정치의 역사가 됐다.
지난 9월 그는 정계를 떠났다. 대신 사단법인 ‘권영길과 나아지는 살림살이’(약칭 나살림)를 만들어
사회운동에 나섰다. 무상교육과 무상의료 등 보편복지를 누릴 수 있는 나라를 만들기 위한 모임이다. 진보세력이 집권해야 복지국가가 가능하다는
점에서 그가 하는 사회운동 역시 크게 보면 진보정치의 범주 안에 있다. 단체 이름을 2002년 대선 때 했던 “국민 여러분, 살림살이
나아지셨습니까?”라는 선거구호에서 따온 것도 진보를 지향하는 정치와 운동이 별개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는 듯하다. 그래서일까. 지난 20일 서울
광화문 나살림 사무실에서 만난 권영길(72) 이사장의 진보정당에 대한 애정은 여전히 뜨거웠다. 권 이사장은 통합진보당에 대해서는 해산 심판
청구에 대한 투쟁뿐 아니라 자기반성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진보세력이 통합하지 않으면 미래가 없다’고 역설했다.
인터뷰/김종철 이승준 기자 phill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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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새 어떻게 지내고 있나?
“창원대 초빙교수로 일하면서 ‘권영길과 나아지는 살림살이’ 일을 하고 있다. 내년부터는 대국민 서명운동 등
나살림 활동을 본격화하려고 한다. 내년에는 1년 내내 거리에서 살 것 같다. 거리는 권영길의 고향이다. (웃음) 이제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는
거죠.”
지난 9월 출범한 나살림은 오는 27일 경남 창원에서 후원의 밤 행사를 연다. 그는 “출범식은 서울에서
했으니 권영길의 정치적 고향이자 진보정치 중심지인 창원에 가서 먼저 인사를 드리는 게 도리가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이후 나살림은 전국적인 거리
캠페인에 본격적으로 나설 예정이다.
-정계 은퇴하고 이제 쉬어도 될 텐데 왜 운동의 최전선에 다시 나서나?
“국회의원 활동하면서 회의에 빠졌다. 보편복지를 펼쳐보려 했으나 국회 안에서 받아들일 의식이 안 됐고,
국민들도 좋긴 한데 되겠느냐는 인식이 강했다. 특히 가장 관심을 기울이고 힘을 보태야 할 저소득층과 비정규직 이런 분들이 오히려 여기에 대한
이해가 굉장히 부족했다. 그래서 정말로 보편적 복지를 이루려면 아주 더디 가더라도 밑에서부터 새로운 바람이 일지 않으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진보정당들이 현재 어려운 처지에 있다. 진보정치의 산증인으로서 요즘 마음이 안 좋을 것 같다.
“안 좋은 정도가 아니다. 민주노동당은 권영길의 영혼인데, 민노당이 사실은 풍비박산이 났다. 마음이 안
좋은 상태를 넘어서서 정말 참담하기 이를 데 없다.”
-진보정치의 중심은 어쨌든 그동안 민주노동당과 뒤를 이은 통합진보당이었다. 그런데 통합진보당은 해산 심판
청구를 당하는 등 풍전등화에 있다. 법적인 문제뿐 아니라 경선 부정 논란과 폭력사태 등으로 국민의 외면을 받고 있다. 이중의 위기다. 위기가
어디서 비롯됐다고 보는가?
“위기라는 말을 넘어서서 소멸이냐 생존이냐 하는 존폐의 갈림길에 서 있다. 공안 탄압을 부정하지 않지만
탄압은 항상 있어왔고, 앞으로도 탄압은 있을 수밖에 없다. 민노당 만들 때도 마찬가지였다. 계속 싸워나가야 하는 문제다. 그렇다면 오늘 이
지경에 이른 책임은 바로 진보정당 내부에 있다. 그 원인은 정파 패권주의다. 패권주의가 분열을 가져왔다. 분열이 없었다고 한다면 오늘날 이렇게
됐을까. 민노당 분당이 없었다면 진보정치는 국민들의 희망으로 대안정치로 우뚝 섰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국민들이 차려준 밥상을 진보정당 스스로가
차버린 것이다. 이걸 차버렸는데 국민들이 용납할 수 없는 것이다.”
-분열을 초래한 주요 원인이 있지 않겠느냐. 많은 사람들은 당권파로 불리는 현재 통합진보당 그룹의
패권주의와 대북관을 원인으로 지목하고 있다.
“그 시각에 동의한다. 국민들이 한때 22%의 지지율을 보내주기도 했던 만큼 진보정당은 집권을 위해 진정성
있게 먼 길을 걸어가야 했는데 분당이 됐다. 콩알이 하나밖에 없으면 그걸 심어서 콩이 열리도록 해야 되는데 그걸 심을 생각은 안 하고 쪼개
갈라먹으려 하니 틀렸죠. 그리고 우리 생각이 옳고, 우리는 항상 옳은 길과 험난한 길을 간다는 도덕적 우월감에 빠져 있었다. 정파 자체가 나쁜
것이 아니라 패권주의에 빠진 게 문제다.”
올곧은 언론인이었던 권 이사장은 1988년 파리특파원을 마치고 귀국한 직후 <서울신문> 노조
창립에 가담하면서 진보운동가로 거듭난다. 그는 서울신문 노조위원장 직무대행을 거쳐 그해 11월 언론노련 초대 위원장, 1995년 민주노총 초대
위원장을 맡는 등 노동운동의 한복판에 섰다. 이어 1997년 대선을 시작으로 2002년과 2007년 등 연거푸 세차례 진보후보로서 대선에
나섰다. 경남 창원에서 두차례 국회의원에 당선된 그는 2011년 6월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의 통합 물꼬를 트기 위해 19대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하지만 그는 진보 통합에 국민참여당 쪽이 참여하는 것을 반대해 결국 신생 통합진보당에서 사실상 발을 뺐다.
-한국 진보정치에 미래가 있을까?
“진보정치가 소멸되면 국가와 민족의 재앙이다. 국가를 제대로 이끌기 위해서는 진보정당이 필요하다. 그래야
균형있는 나라가 된다. 그래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진보정당의 통합이다. (진보정당이) 여러 개 있어서는 국민들이 받아들이지 않는다. 너희에게
기대를 걸까 말까 고민하게 하려면 우선 하나로 되어 있어야 한다.”
정계 떠나 ‘권영길과 나살림’ 발족
국회서 못 이룬 보편복지 위해
후원 행사·대국민
서명운동 채비
내년은 거리에서 살 것 같다
진보정당 공안탄압 문제지만
내부 분열은 정파 패권주의 탓
지방선거까지 통합 어렵다면
연합이라도, 후보 연대라도 이뤄야
-통합진보당은 진보세력 안에서도 외면받고 있다. 이런 상태에서 진보정당 통합이 가능하겠는가?
“현실적으로 통합의 문제는 매우 어려울 것이지만 그래도 해야 한다. 통합을 위해서는 현재에 있는 당만으로는
힘들고, 이들을 엮어내고 담을 수 있는 그릇이 필요하다. 그 그릇은 노동 중심의 새로운 진보정당이라고 본다. 어렵지만 진보통합의 문이 열려 있고
단일화된 진보정당에 대한 희망을 갖고 있다.”
권 이사장은 진보 재통합과 관련해 지난 2일 출범한 ‘노동정치연석회의’의 역할에 기대를 걸었다. 민주노총의
현장조직들이 중심이 된 노동정치연석회의는 지난달 정의당과 노동당, 민주노총이 참가한 가운데 노동 중심의 진보정당 건설 문제를 논의하기도 했다.
-실체 여부와 관계없이 통합진보당에 대한 국민들의 인식이 지금 너무 안 좋다. 통합진보당이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진보세력은 한 발짝도 나아가기 힘든 게 아닌가?
“통합진보당이 반성해야 하는 게 맞다. 내부적으로 그런 대토론을 하려는 상황에 이르렀던 것으로 알고
있었다. 그런데 그게 박근혜 정부에서 해산 심판을 청구하는 바람에 무산됐다. 나는 통합진보당 창당에 대해서 비판해왔지만, 정부의 해산 청구에
대해서는 용납할 수 없다. 그 이유는 첫째 진보당이 반성하고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는 길을 가려고 하는데 그것을 가로막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외부적 탄압에 대해 통합진보당은 똘똘 뭉칠 수밖에 없다. 그렇게 되면 진보정치 전체의 통합과 단결마저 어려워진다. 박근혜 정부가 그걸 노린
것이다. 둘째는 민주주의 국가라면 정권이 정당을 해산할 수 없다. 민주주의의 기본은 사상과 결사의 자유인데 정권이 정략적 목적으로 해산 청구를
하는 것은 있을 수 없다. 하지만 통합진보당은 생존을 위해서 극렬 투쟁할 수밖에 없지만 이런 때일수록 내부적 토론을 해야 한다. 중요한 건
국민의 눈이다. 국민의 지지를 받을 수 있는 반성과 토론을 해야 한다.”
-박근혜 정부의 첫해를 어떻게 평가하는가?
“분명한 것은 역사의 후퇴다. 유신정권과 같은 내용적 모습을 보이고 있다. 전교조를 법외노조로 만들려고
하는 것이 구체적인 예다. 보편적 권리이고 인권인 노동기본권을 인정하지 않으면 민주주의라고 할 수 없다. 박 대통령은 어머니와 아버지의 비극적인
삶을 보고 가슴에 칼을 품은 것 같다. 그래서 어떻게 해서든 대통령이 되어야 하겠다는 생각을 한 것 같고 마침내 대통령이 됐다. 그러나 대통령이
된 뒤에는 뭘 해야 되는지 모르는 것 같다.”
-박 대통령에게 고언을 한다면?
“과거의 생각에서 벗어나서 진정으로 국가와 민족의 미래를 여는 그런 대통령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러기 위해
보편적 복지에 대한 개념부터 철저하게 성찰해주길 바란다. 남북관계에서는 너무 미국에만 매달리고 있다. 남북관계를 풀기 위해서는 중국을 비롯한
주변국가와의 합의도 중요하지만 남북 당사자 간의 실질적인 대화가 매우 중요하다.”
권 이사장은 내년 지방선거 전망에 대해서는 야권이 참패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왜 야권이 참패할 것으로 보나?
“박근혜 정부가 들어선 뒤 정치에 대한 국민들의 허무주의 바람이 더 강해졌다. 속된 말로 이제 누구도 못
믿겠다는 식이 되었다. 문제는 이게 야권으로 튄다는 것이다. 선거가 국민들의 답답한 가슴을 풀어주는 감동의 선거가 돼야 하는데 그러기는커녕
오히려 죽 쑤는 선거가 될 것이다.”
-내년 지방선거에서는 야권 단일화도 어려울 것 같은데?
“지난번 선거 때보다 어렵다. 진보정당의 통일 단결이 이뤄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진보정당의 통합이 안
되면 우선 연합이라도 해야 하고, 그것도 안 되면 야권 후보 간의 연합이나 연대라도 이뤄야 한다.”
-안철수 의원의 신당 움직임이 본격화되고 있다. 이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는가?
“안철수 신당이 바람직하냐 아니냐 이전에 정당에서 중요한 것은 정체성이다. 그런데 신당의 강령과 정책을
모르겠다. 한때는 최장집 교수를 영입해서 진보 중심의 정당을 만들 듯하더니 나중에 보니 그것도 아니더라. 물에 물 탄 듯 술에 술 탄 듯 하고
있다. 이건 새 정치가 아니며, 한국 정치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정당이 아니다. 당을 만들기 이전에 이런 걸 먼저 확실히 해야 한다.”
그는 지난 삶을 되돌아보면서 언론노조와 민주노총, 민주노동당 건설에 참여한 데 대해 “이 나라와 사회를
제대로 바꿔내고 만들어내는 중심체를 만들었다”며 자랑스러워했다. 그러나 2008년 민주노동당 분당을 얘기할 때는 “죽을 때까지 씻을 수 없는
상처다. 다시 허허벌판에 나선 것도 이에 대한 속죄의 의미”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에게서는 퇴장한 노정객의 모습을 찾을 수 없었다. 오히려
끝없이 ‘진보’하는 인간이 느껴졌다. 권영길의 인생 3막이 기다려지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