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 4대 개혁과 조광조 그리고 친일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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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53 한준구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 댓글 0건 조회 1,866회 작성일 2013-11-19 02:11본문
한국 최고의 박물학자중의 한 분으로 우뚝선 바 있던 조선일보의 수십년간 기*고의 명*품 칼럼인 이규태 코너의
故 이규태 선생은?
조선왕조의 4대 개혁을 자기 나름대로 명명하면서
언급한 바 있었는 데
태종 이방원의 사병 혁파등의 주체 개혁--그는 처가의 식구들을 도륙하여
아들 세종이 주변의 간섭없이 마음대로 선정을 베푸는 데 숨은 공로자였다.
중종 시절 4년간의 벼락출세 과정에서 정암 조광조는
그의 도학개혁이 실패로 돌아가면서 사약을 먹고 유명을 달리했다
후일 율곡 李珥선생은
조광조의 어설픈 개혁을 아직 벼가 익지도 않았는 데
주변의 동조자들을 좀더 모으지 않은 상태에서
설래발래격으로 나섰다고 한편 아쉬움을 드러낸 적이 있다고 합니다.
흥선대원군의 사원철폐등의 실사구시개혁도
명성왕후-후일 황후됨--와의 20년간의 치열한 시아버지-며느리 정권 투쟁끝에
그의 개혁은 망국의 원인 제공으로 전락하기에 이른다.
김옥균의 개화개혁도 그 뜻은 나쁘다고 볼 수는 없을 수도 있겟으나
하여튼 어설픈 3일천하로 막을 내리고 구천에서 그의 가묘를 쳐다보며 지금도 원통해 할 지도 모르겠다.
그리하여, 몇몇 국내외 현재 학자들은
본시 조선왕조이후 한국은
제대로된 사상혁명이나 종교혁명이 일어나지 않았다고 하며
특히,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쌍끌이로 당하면서도
조선왕조가 뒤집어지지않은 것을 이상해 여기는 외국 학자들도 다수 있다고 할
정도입니다..
이런 과거로 인해 한국인은 좀더 冷사회성에 가까운 심정적 유전자를 갖고 태어나고 있으며
일제 시대에 친일에 앞장선 자의 후손들이
거의 절손된 대표적인 매국노 이완용의 자손을 제외하곤
과반수가 광복이후에도 떵떵거리고 잘 살고 있는 반면에
독립운동가의 직계 자식들및 그의 후손들은 3대에 걸쳐 가난의 질곡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어
우리 민족의 정체성 확립에 정말 안타까운 점을 보여주고 있어 늘 가슴이 아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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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칼럼
- 2013.11.17 1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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