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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53 한준구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 댓글 0건 조회 2,308회 작성일 2013-11-06 2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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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인사색 공연 앞둔 이장희
 
 
 
“방랑자의 인생노트, 들어보실랍니까”
 
 
 
 
 
강수진 기자 kanti@kyunghyang.com·사진 서성일 기자
입력: 2013년 11월 05일 22:04:26
“파도가 높아 배가 못나간답니다. 약속을 미뤄야겠어요.”가수 이장희(66)와 만나기 위해선 날씨를 늘 염두해둬야 했다. 인터뷰 약속을 했던 지난달 말, 하필 바다는 시샘을 부렸다. 바람이 파도를 일으키는 바람에 울릉도가 사람을 호락호락 내어주지 않았다. 얼마전 서울 대치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이장희는 “그래도 이만하면 빨리 나온 것”이라며 벼락같이 웃었다. 그의 웃음소리는 놀랄 만큼 컸다. 그는 “볕이 참 좋다”면서 레드 와인을 시켰다. 오전 10시 빈 속에 부어넣은 와인이 알싸했다.


▲“울릉도 생활 잠시 접고 노래인생 2막
젊은날 왜 음악에 미쳤는지 이제 알것 같아

송창식·최백호·한영애와 함께 서는 무대서
굴곡많은 내 삶, 멜로디에 실어 봐야죠”


이장희는 오는 20~21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송창식·최백호·한영애 등과 함께 ‘사인사색’ 공연을 한다. 1960년대 대중 문화의 핵심이 된 음악감상실 ‘세시봉’ 출신인 그는 ‘나 그대에게 모두 드리리’, ‘한잔의 추억’, ‘그건 너’, ‘겨울이야기’ 등 히트곡을 부를 예정이다.

“그 전에는 변변한 공연을 해본 적이 없어요. 가수로 활동한 지 몇 년이 채 안됐으니까요. 1974년인가? 이화여대 강당에서 공연을 열어본 게 전부였지, 아마….”

당시 이대 공연에서 입었던 의상은 고 앙드레 김이 디자인했다고 한다. “우주복 같이 번쩍이는 그 옷을 입고 쑥스러워했던 기억이 있다”고 떠올렸다.

방랑이란 말이 딱 어울리는 인생이었다. 연세대에 입학하고 나서 얼마지 않아 학교를 그만뒀고, 1972년 가수가 된 뒤에도 4년을 못 채우고 1976년 미국으로 훌쩍 떠났다. 금지곡도 많았다. “‘그건 너’는 책임을 남한데 전가한다는 이유, ‘불꺼진 창’은 불륜을 조장하고, ‘한잔의 추억’은 음주를 권장한다는 까닭에서 금지됐다”고 했다. 그는 “시대가 만들어낸 우스꽝스러운 일이었다”고 했다.

“1975년 가요정화 운동이라고 해서 노래가 많이 금지되고, 그 뒤 12월 대마초 단속에 연루돼 구치소를 가게 됐어요. 그게 불행인지 더 좋은 일이 생기려 했던 건지…. 구치소 창문으로 눈이 내리는데 그만하라는 사인 같더군요.”

미국에서 레스토랑 등을 운영하던 이장희는 1988년 ‘라디오 코리아’를 설립한 뒤 다시 승승장구했다. 방송사는 1992년 LA 폭동 당시 한인 교포들의 상황실 및 대피소가 될 만큼 미주 한인 사회를 대표했다. 폭동 뒤 부시 전 대통령이 방송사 스튜디오를 직접 찾아 격려문을 읽어내린 일화가 있다. 김용만·김국진·이종환 등이 DJ를 거쳐갔다. 이장희는 “(김)국진이는 미국에서도 골프만 쳤다”며 웃었다. 2003년 잘나가던 방송사는 문을 닫았다.

“전파사용료를 갑자기 올려달라는 요구가 있었는데, 때 마침 은퇴할 순간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원래는 50세에 은퇴할 꿈을 꿨는데, 그때 나이 이미 56세였죠. 더 운영하면 1000만 달러 넘게 팔 수도 있었을 텐데, 그러다가는 60세가 넘어갈 것 같아 방송사를 접었지요.”

사업을 그만두고 고고학을 공부해 ‘트로이 유적’을 찾은 독일인 ‘하인리히 슐리만’처럼 살고 싶었다고 했다.

2006년 울릉도로 가서 터를 잡았다. 자택 앞에는 ‘울릉천국’이라는 커다란 돌표 하나를 세웠다. 그러다 2011년 ‘세시봉’ 동료와 다시 세상으로 나왔다. 올해 초 이장희는 40여년 만에 처음으로 전국 투어를 벌이기도 했다.


“(강)근식(기타리스트)이랑 만나 연습하는데 그게 참 좋더라구요. 내가 왜 젊었을 때 대학까지 자퇴하면서 음악 하러 다녔는지를 그 연유를 깨달았어요. 쇼펜하우어는 음악이 최고라 했답니다. ‘무아지경’, 음악만이 자신을 잊게 해준다고 했다지요?”

유독 친했던 지인들이 세상을 떠났다. 2월 화가 이두식, 9월 작가 최인호씨가 차례로 생을 마감했다. 서울고 한 해 선배인 최인호는 이상벽(방송인)·강근주씨 등과 함께 몇 되지 않은 술친구였다. ‘그건 너’의 작사에 도움을 준 인연도 있다.

“1절만 하고 진도가 안 나가서 형에게 전화를 걸어 들려줬더니 ‘어제는 비가 오는 종로 거리’ 등 2절로 화답해줘 그 다음 소절을 써내려갈 수 있었다”고 소개했다. 또 “친구 (이)두식이는 교수로 퇴직하는 날 만나 헤어졌는데 그 다음날 갑자기 고통없이 세상을 떠났다”면서 “우리네가 어설픈 나이가 아니니, 그렇게 소주 한 잔 걸치고 기분 좋게 고통없이 떠난 것이 차라리 다행”이라고 했다. 이장희는 장례식에서 “두식아, 나도 곧 가마”라고 추도사를 했다.

그의 음악은 그의 일기였다. 이장희는 자신의 음악을 두고 “내 인생의 노트”라고 했다. 어머님이 돌아가신 뒤 지은 노래가 ‘어머님의 자장가’고, 아내와 이혼하면서 쓴 노래가 ‘안녕이란 두 말은 너무 짧죠’다. 울릉도에서는 ‘울릉도는 나의 천국’이란 노래를 지었다. 20~21일 열리는 공연 ‘4인4색’에서 자신의 인생 이야기를 멜로디 위에 얹어 놓을 참이다.

“(송)창식이요? 예전에 너 언제까지 노래할거니 하고 물었더니 ‘죽을 때까지 할거야’라 답하더군요. 노래 빼고는 할 줄 아는 게 없는 그 친구는 참 존경스럽습니다.”

이장희는 인터뷰 뒤 곧바로 미국 서부 ‘데스밸리’로 여행을 떠났다. 공연을 위해 잠시 서울에 왔다가 미국으로 돌아가 5~6개월을 더 머물 참이다.

“이러면 안 되는데, 노인네가 지난 몇 년간 너무 들떠 있었어요. 원래 자리로 가서 별을 좀 보며 지내야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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