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으는 작은 새-^^女子 감독 수난-^^조혜정의 경우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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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53 한준구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 댓글 0건 조회 1,798회 작성일 2013-11-07 23:05본문
조혜정 前배구감독
“나는 남자 감독들에게 공공의 敵이었다”
기사입력 2013-11-07
[新 여성시대]2부 전문직
<8>스포츠 지도자
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soojin@donga.com
“남자 감독들에게 나는 말 그대로 ‘공공의 적’이었다. 여자에게는 절대 질 수 없다고 생각한 듯했다. 우리가 다른 모든 팀의 타깃이 되고 있다는 걸 재임 내내 느꼈다.”
조혜정 국민생활체육회 이사(60)는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에서 ‘나는 작은 새(Flying Little Bird)’라 불리며 구기 종목 최초로 한국에 메달을 안겨준 주역이다. 그런 그의 이름 앞에 2010년 4월 또 다른 수식어가 붙었다. 바로 ‘프로 첫 여성 감독’이다. 프로배구 여자부 GS칼텍스 사령탑으로 오라는 연락을 받고 1주일 동안 잠을 설쳤을 정도로 가슴 벅찬 자리였지만 오래가지는 못했다. 3년 계약을 하고 1년 만에 물러났다. 2010∼2011시즌 5개 팀 중 5위. 성적 부진이 이유였다. 조 이사는 당시 소감을 묻자 “대단한 자부심을 느꼈지만 아직은 여성이 프로팀 감독을 하는 것이 어렵다고 느꼈다”고 말했다. 조 이사는 왜 그런 생각을 했을까.
○ 한국 스포츠를 빛낸 여성의 힘
한국 여성이 국제 스포츠 무대에 처음 등장한 것은 1948년 런던 올림픽이었다. 당시 출전 선수 50명 가운데 유일한 여성이었던 18세 소녀 박봉식(이화여중 5학년)이 그 주인공이다. 육상 원반던지기 선수였던 그는 국내에서 세계기록을 세우기도 했지만 런던에서는 부담감 탓인지 하위권에 머물렀다.
시작은 미약했지만 이후 세계무대에서 한국 여성의 역할은 그야말로 눈부셨다. 언급한 것처럼 올림픽 구기 종목에서 한국에 처음으로 메달(동)을 안겨준 건 여자 배구다. 처음 메달을 딴 종목 역시 1984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의 여자 농구다. 지금까지 배구와 농구의 올림픽 메달은 남자를 포함해 이게 전부다. 한국 구기 종목 최초의 올림픽 금메달은 1988년 서울 올림픽 여자 핸드볼이 차지했다. 여자 핸드볼은 1992년 대회에서 2연패에 성공했다.
세계선수권대회에서도 마찬가지다. 구기 종목 한국 최초의 세계선수권 메달은 1967년 체코슬로바키아 대회의 여자 농구(2위)에서 나왔다. 처음 금메달을 배출한 종목은 1973년 사라예보 대회의 여자 탁구였다. 한국 올림픽 사상 최초의 2관왕은 1988년 여자 양궁의 김수녕이고, 한국 올림픽 역대 최다관왕은 여자 쇼트트랙의 전이경(1994년 릴레함메르 대회 2관왕, 1998년 나가노 대회 2관왕)이다. 2010년 밴쿠버 겨울올림픽에서 ‘피겨 불모지’ 한국에 첫 올림픽 금메달을 선물한 이는 김연아였다. 한국은 2009년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27개 대회에서 12승을 수확하는 등 세계 여자 골프의 중심이기도 하다. 남녀를 통틀어 한국이 국제축구연맹(FIFA) 주관 대회에서 첫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린 대회는 2010년 17세 이하 여자월드컵이었다.
대한체육회 자료에 따르면 2013년 등록선수는 초등학교부터 일반까지 총 13만1290명이다. 이 중 여성은 22.4%(2만9434명)에 불과하다. 하지만 여성이 역대 올림픽에서 따낸 금메달은 전체의 39%(32개)나 된다. 국제경기연맹총연합회(GAISF) 사무총장과 세계역도연맹 사무총장을 지낸 오스카 스테이트는 한국 스포츠에 대해 “여자가 남자보다 훨씬 잘한다”는 평가를 내리기도 했다.
○ 멀기만 한 지도자와 전문체육인의 꿈
한국 여자 농구는 1979년 서울에서 열린 세계선수권대회에서 미국에 져 준우승을 차지했다. 당시 경기장을 찾은 관중은 미국의 경기력보다 대표팀 감독이 팻 서밋이라는 27세의 젊은 여성이라는 것에 놀랐다. 종목을 막론하고 여성이 대표팀 감독을 한다는 것을 상상할 수 없던 시절이었다.
여느 분야와 달리 스포츠는 여성과 남성 종목이 구분돼 있다. 선수로서는 남성과 여성이 경쟁할 일이 없다. 여성과 남성이 본격적으로 부닥치는 것은 선수 은퇴 이후다. 선수로서는 뛰어난 성과를 거뒀지만 지도자나 스포츠 행정가 등으로 성공적인 체육인의 삶을 이어가는 여성은 많지 않다. 남성 스포츠 스타 출신 대부분이 지도자의 길을 걷는 것과 비교된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각국 체육단체의 여성 임원 비율을 최소 20%로 유지할 것을 권고하고 있지만 국내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대한체육회의 여성 임원은 전체 22명 가운데 4명(18.2%)이다. 지난해보다 2명 늘었지만 여전히 IOC의 권고 기준에는 못 미친다. 대한체육회가 지난해 8월 국회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체육계 여성 임원 비율은 8%에 불과했다.
여성 스포츠 스타가 가장 먼저 부닥치는 벽은 임신과 출산이다.
임오경 서울시청 핸드볼팀 감독은 “대부분 소속팀에 계약직으로 고용돼 있기 때문에 임신과 동시에 은퇴 절차를 밟아야 한다”고 말했다. 한 남자 프로배구팀 감독은 “대회는 물론이고 합숙과 해외 전지훈련 등이 많기 때문에 1년에 집에 들어가는 날은 3개월 정도밖에 안 된다. 출산과 육아에 신경 쓰면서 지도자를 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의 4대 프로 종목은 야구, 축구, 농구, 배구다. 프로야구와 프로축구는 남자 종목이라 당연히 여성 지도자가 없지만 2005년 출범한 프로배구 여자부는 물론이고 1998년 막을 올린 여자 프로농구에도 여성 감독은 현재 한 명도 없다.
여자 프로농구의 경우 2012∼2013시즌을 앞두고 이옥자 씨(61)가 KDB생명을 맡아 최초의 여성 감독이 됐지만 한 시즌도 채우지 못하고 물러났다. 현재 미국여자프로농구 12개 팀 가운데 여성이 감독으로 있는 팀은 7개로 절반이 넘는다. 코치 역시 여성이 더 많다. 1980년대 농구 스타 박찬숙 씨는 2007년 여자 프로농구 모 구단의 감독 공모에서 탈락한 뒤 여성에 대한 차별이라며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서를 제출하기도 했다.
○ “여자의 적은 여자”
조 이사가 ‘프로 첫 여성 감독’이라는 타이틀을 달았을 때 남성 감독들의 시선은 다분히 부정적이었다. 한 여자 프로농구팀 감독은 “여자의 적은 여자라는 말이 있다. 후배 선수들이 자신들에 대해 너무 잘 아는 여성 감독을 그리 좋아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같은 이유는 아니지만 조 이사도 그런 점을 느꼈다고 했다.
“처음에 부드러운 ‘엄마 리더십’을 내세웠다. 경기 때는 엄해도 평소에는 엄마처럼 자상하게 선수들을 챙겨주려고 했다. 하지만 어릴 때부터 타율적인 훈련에 익숙해진 선수들에게 통하지 않았던 것 같다. 같은 말로 혼을 내도 남자 감독이라면 선수들도 그러려니 하지만 엄마처럼 생각하라고 했던 내가 야단을 치면 더 상처를 받는 것 같았다.”
어느 종목이든 성적이 좋지 않으면 책임의 화살은 감독을 향하기 마련이다. 조 이사 역시 겪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문제는 그 화살이 감독이 아니라 ‘여성’을 향할 수 있다는 것이다. 조 이사가 맡았던 팀은 초반부터 하위권으로 처졌다. “엄마를 표방한 지도 스타일이 선수들을 더 느슨하게 만들었을 것”이라는 비판의 목소리가 기다렸다는 듯 나왔다.
9월 초 서울 올림픽파크텔에서는 체육인재육성재단이 마련한 ‘2013 여성 스포츠인 토크 콘서트’가 열렸다. 여성의 체육 참여 활성화 정책을 제안하고 이에 대한 여론 환기 및 네트워크 형성을 모색하는 자리였다. 참석자들은 체육계 전반에 뿌리 내린 남성 중심의 보수적 사고가 여성 체육인을 지금과 같은 위상에 머물게 하고 있다고 지적하는 한편 ‘배구 조혜정 감독’과 ‘농구 이옥자 감독’의 중도 하차만 놓고 프로 스포츠에서 여성 리더십이 통용되지 않는다고 결론을 내리는 것은 성급하다고 강조했다.
조 이사의 생각도 비슷했다. 그의 말이다.
조혜정 국민생활체육회 이사(60)는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에서 ‘나는 작은 새(Flying Little Bird)’라 불리며 구기 종목 최초로 한국에 메달을 안겨준 주역이다. 그런 그의 이름 앞에 2010년 4월 또 다른 수식어가 붙었다. 바로 ‘프로 첫 여성 감독’이다. 프로배구 여자부 GS칼텍스 사령탑으로 오라는 연락을 받고 1주일 동안 잠을 설쳤을 정도로 가슴 벅찬 자리였지만 오래가지는 못했다. 3년 계약을 하고 1년 만에 물러났다. 2010∼2011시즌 5개 팀 중 5위. 성적 부진이 이유였다. 조 이사는 당시 소감을 묻자 “대단한 자부심을 느꼈지만 아직은 여성이 프로팀 감독을 하는 것이 어렵다고 느꼈다”고 말했다. 조 이사는 왜 그런 생각을 했을까.
○ 한국 스포츠를 빛낸 여성의 힘
한국 여성이 국제 스포츠 무대에 처음 등장한 것은 1948년 런던 올림픽이었다. 당시 출전 선수 50명 가운데 유일한 여성이었던 18세 소녀 박봉식(이화여중 5학년)이 그 주인공이다. 육상 원반던지기 선수였던 그는 국내에서 세계기록을 세우기도 했지만 런던에서는 부담감 탓인지 하위권에 머물렀다.
시작은 미약했지만 이후 세계무대에서 한국 여성의 역할은 그야말로 눈부셨다. 언급한 것처럼 올림픽 구기 종목에서 한국에 처음으로 메달(동)을 안겨준 건 여자 배구다. 처음 메달을 딴 종목 역시 1984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의 여자 농구다. 지금까지 배구와 농구의 올림픽 메달은 남자를 포함해 이게 전부다. 한국 구기 종목 최초의 올림픽 금메달은 1988년 서울 올림픽 여자 핸드볼이 차지했다. 여자 핸드볼은 1992년 대회에서 2연패에 성공했다.
세계선수권대회에서도 마찬가지다. 구기 종목 한국 최초의 세계선수권 메달은 1967년 체코슬로바키아 대회의 여자 농구(2위)에서 나왔다. 처음 금메달을 배출한 종목은 1973년 사라예보 대회의 여자 탁구였다. 한국 올림픽 사상 최초의 2관왕은 1988년 여자 양궁의 김수녕이고, 한국 올림픽 역대 최다관왕은 여자 쇼트트랙의 전이경(1994년 릴레함메르 대회 2관왕, 1998년 나가노 대회 2관왕)이다. 2010년 밴쿠버 겨울올림픽에서 ‘피겨 불모지’ 한국에 첫 올림픽 금메달을 선물한 이는 김연아였다. 한국은 2009년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27개 대회에서 12승을 수확하는 등 세계 여자 골프의 중심이기도 하다. 남녀를 통틀어 한국이 국제축구연맹(FIFA) 주관 대회에서 첫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린 대회는 2010년 17세 이하 여자월드컵이었다.
대한체육회 자료에 따르면 2013년 등록선수는 초등학교부터 일반까지 총 13만1290명이다. 이 중 여성은 22.4%(2만9434명)에 불과하다. 하지만 여성이 역대 올림픽에서 따낸 금메달은 전체의 39%(32개)나 된다. 국제경기연맹총연합회(GAISF) 사무총장과 세계역도연맹 사무총장을 지낸 오스카 스테이트는 한국 스포츠에 대해 “여자가 남자보다 훨씬 잘한다”는 평가를 내리기도 했다.
○ 멀기만 한 지도자와 전문체육인의 꿈
한국 여자 농구는 1979년 서울에서 열린 세계선수권대회에서 미국에 져 준우승을 차지했다. 당시 경기장을 찾은 관중은 미국의 경기력보다 대표팀 감독이 팻 서밋이라는 27세의 젊은 여성이라는 것에 놀랐다. 종목을 막론하고 여성이 대표팀 감독을 한다는 것을 상상할 수 없던 시절이었다.
여느 분야와 달리 스포츠는 여성과 남성 종목이 구분돼 있다. 선수로서는 남성과 여성이 경쟁할 일이 없다. 여성과 남성이 본격적으로 부닥치는 것은 선수 은퇴 이후다. 선수로서는 뛰어난 성과를 거뒀지만 지도자나 스포츠 행정가 등으로 성공적인 체육인의 삶을 이어가는 여성은 많지 않다. 남성 스포츠 스타 출신 대부분이 지도자의 길을 걷는 것과 비교된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각국 체육단체의 여성 임원 비율을 최소 20%로 유지할 것을 권고하고 있지만 국내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대한체육회의 여성 임원은 전체 22명 가운데 4명(18.2%)이다. 지난해보다 2명 늘었지만 여전히 IOC의 권고 기준에는 못 미친다. 대한체육회가 지난해 8월 국회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체육계 여성 임원 비율은 8%에 불과했다.
여성 스포츠 스타가 가장 먼저 부닥치는 벽은 임신과 출산이다.
임오경 서울시청 핸드볼팀 감독은 “대부분 소속팀에 계약직으로 고용돼 있기 때문에 임신과 동시에 은퇴 절차를 밟아야 한다”고 말했다. 한 남자 프로배구팀 감독은 “대회는 물론이고 합숙과 해외 전지훈련 등이 많기 때문에 1년에 집에 들어가는 날은 3개월 정도밖에 안 된다. 출산과 육아에 신경 쓰면서 지도자를 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의 4대 프로 종목은 야구, 축구, 농구, 배구다. 프로야구와 프로축구는 남자 종목이라 당연히 여성 지도자가 없지만 2005년 출범한 프로배구 여자부는 물론이고 1998년 막을 올린 여자 프로농구에도 여성 감독은 현재 한 명도 없다.
여자 프로농구의 경우 2012∼2013시즌을 앞두고 이옥자 씨(61)가 KDB생명을 맡아 최초의 여성 감독이 됐지만 한 시즌도 채우지 못하고 물러났다. 현재 미국여자프로농구 12개 팀 가운데 여성이 감독으로 있는 팀은 7개로 절반이 넘는다. 코치 역시 여성이 더 많다. 1980년대 농구 스타 박찬숙 씨는 2007년 여자 프로농구 모 구단의 감독 공모에서 탈락한 뒤 여성에 대한 차별이라며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서를 제출하기도 했다.
○ “여자의 적은 여자”
조 이사가 ‘프로 첫 여성 감독’이라는 타이틀을 달았을 때 남성 감독들의 시선은 다분히 부정적이었다. 한 여자 프로농구팀 감독은 “여자의 적은 여자라는 말이 있다. 후배 선수들이 자신들에 대해 너무 잘 아는 여성 감독을 그리 좋아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같은 이유는 아니지만 조 이사도 그런 점을 느꼈다고 했다.
“처음에 부드러운 ‘엄마 리더십’을 내세웠다. 경기 때는 엄해도 평소에는 엄마처럼 자상하게 선수들을 챙겨주려고 했다. 하지만 어릴 때부터 타율적인 훈련에 익숙해진 선수들에게 통하지 않았던 것 같다. 같은 말로 혼을 내도 남자 감독이라면 선수들도 그러려니 하지만 엄마처럼 생각하라고 했던 내가 야단을 치면 더 상처를 받는 것 같았다.”
어느 종목이든 성적이 좋지 않으면 책임의 화살은 감독을 향하기 마련이다. 조 이사 역시 겪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문제는 그 화살이 감독이 아니라 ‘여성’을 향할 수 있다는 것이다. 조 이사가 맡았던 팀은 초반부터 하위권으로 처졌다. “엄마를 표방한 지도 스타일이 선수들을 더 느슨하게 만들었을 것”이라는 비판의 목소리가 기다렸다는 듯 나왔다.
9월 초 서울 올림픽파크텔에서는 체육인재육성재단이 마련한 ‘2013 여성 스포츠인 토크 콘서트’가 열렸다. 여성의 체육 참여 활성화 정책을 제안하고 이에 대한 여론 환기 및 네트워크 형성을 모색하는 자리였다. 참석자들은 체육계 전반에 뿌리 내린 남성 중심의 보수적 사고가 여성 체육인을 지금과 같은 위상에 머물게 하고 있다고 지적하는 한편 ‘배구 조혜정 감독’과 ‘농구 이옥자 감독’의 중도 하차만 놓고 프로 스포츠에서 여성 리더십이 통용되지 않는다고 결론을 내리는 것은 성급하다고 강조했다.
조 이사의 생각도 비슷했다. 그의 말이다.
“차별의 시선을 극복하지 못하고 불명예 퇴진한 것에 대해서는 후배들에게 미안하다. 하지만 여성 지도자도 분명히 통할 수 있다는 믿음도 강해졌다. 많은 경험을 쌓으며 자기만의 지도 방식을 개발하는 게 중요하다. 배구의 경우 선수들에게 공을 때려줘야 하기 때문에 남성 지도자들을 선호하는데 그러다보니 ‘남자 배구의 아류’가 돼가고 있다. 경기 스타일이 비슷한데 누가 여자 배구를 보겠는가. 여자 배구가 발전하려면 여성 고유의 특성을 살려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여성 지도자가 필요하다. 세계적인 스타 김연경 같은 선수가 지금부터 은퇴 이후를 준비하면 분명 좋은 지도자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선수들도 여성 지도자들을 자신의 미래라고 생각해야 한다.”
이승건 스포츠부 차장 why@donga.com
이승건 스포츠부 차장 w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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