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신저의 두얼굴? 및 北韓의 기만전술? 주성하-이산 가족 상봉 불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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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53 한준구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 댓글 0건 조회 3,636회 작성일 2013-09-25 00:59본문
[지평선/9월 24일] 키신저의 두
얼굴
콘도르는 안데스 산악지대에 사는 수리과의 맹금류다. 길이 1.3㎙에 몸무게는 10㎏이
넘는다. 거대한 날개를 펴고 비상하는 모습은 하늘의 제왕이라 불릴 만하다. 잉카인들은 콘도르를 죽은 조상이 환생한 것이라며
절대자유의 상징으로 숭배했다. '엘 콘도르 파사(콘도르는 날아가고)'는 독립영웅의 환생을 바라는 페루 국민의 염원을 담은 토속음악으로, 사이먼&가펑클이 애잔한 선율에 담아 부르면서
유명해졌다.
▲ '콘도르 작전'은 1970~80년대 좌우대립이 극심했던 남미 친미국가들이 공산주의에 공동 대응한다는 명목으로 전개한 '좌파 때려잡기'였다. 칠레 아르헨티나 볼리비아 브라질 파라과이 우루과이 6개국 정보수장들은 75년 칠레 산티아고에서 콘도르 네트워크를 가동한 뒤 야당정치인, 반체제 인사들을 대한 암살과 납치공작을 자행했다. 83년 아르헨티나 독재정권이 종식될 때까지 계속되면서 5만명이 살해되고 3만명이 행방불명 됐으며 40만명이 투옥됐다.
▲ 콘도르의 주역은 73년 쿠데타로 집권한 피노체트(2006년 사망) 전 칠레 대통령이었다. 집권 17년 동안 자행된
'더러운 전쟁'으로 3,200명의 민간인이 사망ㆍ실종됐다. 이런 피노체트를 조종하고 지원한 배후가 '미국 외교의 아버지'인 키신저 전 국무장관이라는 사실이 또다시 드러났다. 조지 워싱턴대는 최근 정부문서를 인용, "키신저가
남미의 첫 민주사회주의 정권인 아옌데 정부를 전복시키기 위해 육군참모총장이었던 피노체트를 앞세워 군사쿠데타를 입안하고 감독까지
했다"고 전했다.
▲ '죽의 장막'을 걷어 올린 키신저가 독재정권을 비호한 정치공작의 장본인이라고 비난 받은 것은 처음이 아니다. 국가안보기록연구소(NSA)에 따르면 키신저는 76년 콘도르 작전에 대한 미국의 경고를 만류해 사실상 이를 방조했다. 75년 인도네시아군이 동티모르를 침공, 피의 살육을 벌이기 하루 전 독재자 수하르토와 회담한 것도 그였다. 그가 73년 미국ㆍ 북베트남(월맹)ㆍ월남의 파리협정 체결 공로로 받은 노벨평화상은 역사상 가장 수치스러운 평화상이라는 오점을 남겼다. 그는 올해 90세다. 고해성사를 할 시간도 얼마 없다.************************
북한 당국이 볼 때 이산가족을 다른 말로 풀이하면 적대계층이다. 출신성분을 중시하는 북한에서 수백 만 이산가족 중 99% 이상은
적대계급으로 분류돼 6·25전쟁 이후 60년 넘게 신음했다.
북한의 이산가족은 크게 6·25전쟁 전후로 남쪽으로 내려온 ‘월남자’와 의용군 등으로 북한에 올라간 ‘월북자’ 가족으로 분류할 수 있다.
월남자 가족이 어떻게 박해받았는지는 남쪽에 많이 알려졌다. 가족 중 월남자가 있으면 간부 승진은 물론이고 좋은 대학에 진학할 수 없다. 이들은 벗을 수 없는 신분의 굴레를 쓴 채 농촌과 광산 등 가장 어렵고 힘든 곳에서 평생 감시 속에 살아야 했다.
월북자 중에는 인민군으로 참전해 싸웠거나 또는 공산주의를 동경해 북한으로 간 사례가 많다. 북한에 공을 세운 사람이 적지 않은 셈이다. 하지만 정치와 거리가 먼 과학이나 예술 분야에 종사한 소수만이 계속 이용가치를 인정받았을 뿐 다른 사람들의 신세는 월남자와 큰 차이가 없다. 인민군으로 참전한 남쪽 출신 역시 대개 탄광이나 광산에서 평생을 보냈다. 김일성은 애당초 남쪽 출신들을 믿지 않았다. 중앙당이나 보위부 같은 북한의 핵심 권부엔 이산가족이 없다.
초기 남북 이산가족 상봉 때는 교수나 예술인 같은 북한이 내세울 만한 사람들이 나타났다. 하지만 상봉 횟수가 점차 늘어날수록 고생으로 얼굴에 주름이 가득한 사람들이 많아졌다.
북한은 이산가족 상봉 전 대상자들을 평양으로 불러서 잘 먹여 살도 찌우고 ‘때깔’도 바꾸려 애쓴다. 하지만 평생의 고초가 몇 달 잘 먹는다고 바뀔 수는 없다.
당국은 또 매일 정치교육도 하고, 남쪽 가족에게 할 예비 답변까지 준비시킨다. 수십 년을 사상교육으로 세뇌하고도 못 믿는 것이다. 이런 까닭에 남쪽 가족을 만난 사람들은 “장군님의 은덕으로 행복하게 살고 있다”는 똑같은 말만 되풀이한다.
이산가족 상봉은 북한에 전혀 달가운 일이 아니다. 호텔에서 잘 먹이고 남쪽 가족에게 줄 선물까지 챙겨주는 것은 적대계급에 어울리지 않는 대접이다. 더구나 남쪽 가족을 만나 돈과 선물을 받으면 그 자손들까지 남쪽을 선망할 수밖에 없다. 북한의 입장에선 이산가족 상봉 규모가 커질수록 적대계층을 더 늘리는 일이다. 그러니 아무리 남쪽에서 대규모 이산가족 상봉을 호소해봐야 먹혀들 리 없다. 북한에 이산가족 상봉은 인륜의 문제가 아닌 대남 전술적 차원에서 일부 적대계층에게 어쩔 수 없이 베푸는 호의일 따름이다.
이산의 한을 품고 눈을 감는 사람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다. 우리에겐 가는 세월을 멈춰놓고 싶을 정도로 안타까운 일이다. 하지만 북한 당국의 심정은 세월의 태엽을 더 빨리 돌리고 싶은 것일지도 모른다. 이산가족이 줄어든다는 것은 남쪽을 동경하는 잠재적 체제 위험분자들이 그만큼 빨리 사라진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이산가족은 이미 오래전에 사라졌어야 할 적대계급일 뿐이다.
주성하 국제부 기자 zsh75@donga.com
▲ '콘도르 작전'은 1970~80년대 좌우대립이 극심했던 남미 친미국가들이 공산주의에 공동 대응한다는 명목으로 전개한 '좌파 때려잡기'였다. 칠레 아르헨티나 볼리비아 브라질 파라과이 우루과이 6개국 정보수장들은 75년 칠레 산티아고에서 콘도르 네트워크를 가동한 뒤 야당정치인, 반체제 인사들을 대한 암살과 납치공작을 자행했다. 83년 아르헨티나 독재정권이 종식될 때까지 계속되면서 5만명이 살해되고 3만명이 행방불명 됐으며 40만명이 투옥됐다.
▲ '죽의 장막'을 걷어 올린 키신저가 독재정권을 비호한 정치공작의 장본인이라고 비난 받은 것은 처음이 아니다. 국가안보기록연구소(NSA)에 따르면 키신저는 76년 콘도르 작전에 대한 미국의 경고를 만류해 사실상 이를 방조했다. 75년 인도네시아군이 동티모르를 침공, 피의 살육을 벌이기 하루 전 독재자 수하르토와 회담한 것도 그였다. 그가 73년 미국ㆍ 북베트남(월맹)ㆍ월남의 파리협정 체결 공로로 받은 노벨평화상은 역사상 가장 수치스러운 평화상이라는 오점을 남겼다. 그는 올해 90세다. 고해성사를 할 시간도 얼마 없다.************************
@+제목--북한의 기만
전술
올해 들어 북한은 다양한 대남전술을 구사하고 있다. 3차 핵실험, 전쟁위기 고조 등 위기조성전술과 개성공단 폐쇄에서 보여준 벼랑 끝
전술뿐만 아니라 개성공단 정상화 합의, 평양에서의 애국가 연주 허용, 이산가족 상봉행사 합의 등의 유화전술까지 가히 대남전술의 종합세트라 할 만한 조치를 선보였다. 그러나 ‘한반도의 공산화’라는
궁극적인 대남전략의 목표는 허황되지만 여전히 변치 않고 있다. 당면한 문제에 따라 구체적인 전술은 달라지는데 북한의 위장평화공세가 착시 현상을
가져올 수 있어 특별히 주의할 필요가 있다.
최근 북한이 취했던 일련의 유화조치는 위장평화 공세였음이 만천하에 드러났다. 이산가족 상봉행사를 불과 나흘 앞두고 엉뚱한 것을 트집잡아 돌연 무기한 연기를 우리 측에 일방적으로 통보해왔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꿈에 그리던 혈육과의 재회를 기다리던 190여 이산가족은 엄청난 절망감을 안게 됐다.
이로써 남북관계 개선에 관한 북한의 진의는 명확해졌다. 북한은 진정 우리와의 관계개선을 희구했던 것이 아니라 그들이 직면한 총체적인 난국을 타개하기 위한 ‘전술상의 후퇴’ 의도에서 유화정국을 기획했던 것이다. 이 점은 세 가지 사실에서 나타난다.
첫째, 지난 8월 북한정권의 통치 바이블이라 할 수 있는 이른바 ‘10대 원칙’을 개정하면서 북한은 김씨 왕조 체제를 더욱 공고히 하겠다는 의지를 공식 천명했다. 10대 원칙에서 북한은 대남 적화통일노선의 고수와 핵무력을 중추로 하는 군사력을 지속적으로 견지해 나갈 것임도 명시했다.
둘째, 지속적인 핵개발 의혹은 여전히 북한의 진의를 믿기 어렵게 만드는 중요한 요인이다. 북한 전문사이트인 ‘38north’에 따르면 북한은 영변의 5㎿급 흑연원자로 복구작업을 끝내고 재가동에 들어갔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 영변 원자로를 본격 가동할 경우 1∼2년 안에 2∼5개의 핵무기를 만들 수 있다고 전해진다.
셋째, 북한은 군부 내 인사이동을 통해 단기간에 실전 전투력을 갖춘 군으로의
체질 개선을 시도하고 있다. 김정은은 최근 단행한 일련의 군 인사에서 전방 출신 인사를 요직에 등용했다. 예컨대 지난 8월 말 총참모장이 된
이영길은 5군단장 출신이고, 인민무력부장으로 승진한 장정남은 1군단장 출신이며, 작전국장 변인선은 4·5군단장을 역임하는 등 김정은은 전방에서 한국군과 직접
대치했던 인물을 군 수뇌부로 채우는 인사를 단행했다. 요컨대 김정은은 대남도발을 주도할 도발 루키로 세대교체를 구상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처럼 북한은 내부적으론 대남대결을 가일층 강화하면서 우리에겐 남북관계 개선의지를 나타냈다. 이산가족 상봉행사의 일방적 연기는 금강산관광이나 6자회담 재개가 뜻대로 되지 않자 우리에게 ‘몽니’를 부리는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중요한 점은 그들이 입만 열면 떠들어대는 ‘우리 민족끼리’ 구호 역시 기만적인 슬로건에 불과하다는 점을 그들 스스로 보여줬다는 것이다. 인륜의 문제까지 정치적 문제와 연계시키는 북한이 민족을 운운할 자격은 없다. 북한의 기만전술에 현혹되지 말고 이럴 때일수록 튼튼한 안보태세를 확립해야 할 것이다.
문순보 세종연구소 연구위원
최근 북한이 취했던 일련의 유화조치는 위장평화 공세였음이 만천하에 드러났다. 이산가족 상봉행사를 불과 나흘 앞두고 엉뚱한 것을 트집잡아 돌연 무기한 연기를 우리 측에 일방적으로 통보해왔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꿈에 그리던 혈육과의 재회를 기다리던 190여 이산가족은 엄청난 절망감을 안게 됐다.
이로써 남북관계 개선에 관한 북한의 진의는 명확해졌다. 북한은 진정 우리와의 관계개선을 희구했던 것이 아니라 그들이 직면한 총체적인 난국을 타개하기 위한 ‘전술상의 후퇴’ 의도에서 유화정국을 기획했던 것이다. 이 점은 세 가지 사실에서 나타난다.
첫째, 지난 8월 북한정권의 통치 바이블이라 할 수 있는 이른바 ‘10대 원칙’을 개정하면서 북한은 김씨 왕조 체제를 더욱 공고히 하겠다는 의지를 공식 천명했다. 10대 원칙에서 북한은 대남 적화통일노선의 고수와 핵무력을 중추로 하는 군사력을 지속적으로 견지해 나갈 것임도 명시했다.
둘째, 지속적인 핵개발 의혹은 여전히 북한의 진의를 믿기 어렵게 만드는 중요한 요인이다. 북한 전문사이트인 ‘38north’에 따르면 북한은 영변의 5㎿급 흑연원자로 복구작업을 끝내고 재가동에 들어갔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 영변 원자로를 본격 가동할 경우 1∼2년 안에 2∼5개의 핵무기를 만들 수 있다고 전해진다.
문순보 세종연구소 연구위원 |
이처럼 북한은 내부적으론 대남대결을 가일층 강화하면서 우리에겐 남북관계 개선의지를 나타냈다. 이산가족 상봉행사의 일방적 연기는 금강산관광이나 6자회담 재개가 뜻대로 되지 않자 우리에게 ‘몽니’를 부리는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중요한 점은 그들이 입만 열면 떠들어대는 ‘우리 민족끼리’ 구호 역시 기만적인 슬로건에 불과하다는 점을 그들 스스로 보여줬다는 것이다. 인륜의 문제까지 정치적 문제와 연계시키는 북한이 민족을 운운할 자격은 없다. 북한의 기만전술에 현혹되지 말고 이럴 때일수록 튼튼한 안보태세를 확립해야 할 것이다.
문순보 세종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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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룸/주성하]
이산가족 상봉이 북한은 반갑지 않은 이유
기사입력 2013-09-24 03:00:00 기사수정 2013-09-24 14:42:16
주성하 국제부 기자
북한의 이산가족은 크게 6·25전쟁 전후로 남쪽으로 내려온 ‘월남자’와 의용군 등으로 북한에 올라간 ‘월북자’ 가족으로 분류할 수 있다.
월남자 가족이 어떻게 박해받았는지는 남쪽에 많이 알려졌다. 가족 중 월남자가 있으면 간부 승진은 물론이고 좋은 대학에 진학할 수 없다. 이들은 벗을 수 없는 신분의 굴레를 쓴 채 농촌과 광산 등 가장 어렵고 힘든 곳에서 평생 감시 속에 살아야 했다.
월북자 중에는 인민군으로 참전해 싸웠거나 또는 공산주의를 동경해 북한으로 간 사례가 많다. 북한에 공을 세운 사람이 적지 않은 셈이다. 하지만 정치와 거리가 먼 과학이나 예술 분야에 종사한 소수만이 계속 이용가치를 인정받았을 뿐 다른 사람들의 신세는 월남자와 큰 차이가 없다. 인민군으로 참전한 남쪽 출신 역시 대개 탄광이나 광산에서 평생을 보냈다. 김일성은 애당초 남쪽 출신들을 믿지 않았다. 중앙당이나 보위부 같은 북한의 핵심 권부엔 이산가족이 없다.
초기 남북 이산가족 상봉 때는 교수나 예술인 같은 북한이 내세울 만한 사람들이 나타났다. 하지만 상봉 횟수가 점차 늘어날수록 고생으로 얼굴에 주름이 가득한 사람들이 많아졌다.
북한은 이산가족 상봉 전 대상자들을 평양으로 불러서 잘 먹여 살도 찌우고 ‘때깔’도 바꾸려 애쓴다. 하지만 평생의 고초가 몇 달 잘 먹는다고 바뀔 수는 없다.
당국은 또 매일 정치교육도 하고, 남쪽 가족에게 할 예비 답변까지 준비시킨다. 수십 년을 사상교육으로 세뇌하고도 못 믿는 것이다. 이런 까닭에 남쪽 가족을 만난 사람들은 “장군님의 은덕으로 행복하게 살고 있다”는 똑같은 말만 되풀이한다.
이산가족 상봉은 북한에 전혀 달가운 일이 아니다. 호텔에서 잘 먹이고 남쪽 가족에게 줄 선물까지 챙겨주는 것은 적대계급에 어울리지 않는 대접이다. 더구나 남쪽 가족을 만나 돈과 선물을 받으면 그 자손들까지 남쪽을 선망할 수밖에 없다. 북한의 입장에선 이산가족 상봉 규모가 커질수록 적대계층을 더 늘리는 일이다. 그러니 아무리 남쪽에서 대규모 이산가족 상봉을 호소해봐야 먹혀들 리 없다. 북한에 이산가족 상봉은 인륜의 문제가 아닌 대남 전술적 차원에서 일부 적대계층에게 어쩔 수 없이 베푸는 호의일 따름이다.
이산의 한을 품고 눈을 감는 사람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다. 우리에겐 가는 세월을 멈춰놓고 싶을 정도로 안타까운 일이다. 하지만 북한 당국의 심정은 세월의 태엽을 더 빨리 돌리고 싶은 것일지도 모른다. 이산가족이 줄어든다는 것은 남쪽을 동경하는 잠재적 체제 위험분자들이 그만큼 빨리 사라진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이산가족은 이미 오래전에 사라졌어야 할 적대계급일 뿐이다.
주성하 국제부 기자 zsh7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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