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석기 용어 분석-주사파 잔류파들의 발달 장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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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53 한준구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 댓글 0건 조회 1,918회 작성일 2013-09-14 11:04본문
"바람처럼 사라지시라"
지하공작원 용어로 강연 끝내
[중앙일보] 입력 2013.09.02 02:30 / 수정 2013.09.02 16:25
이석기 녹취록 북한식 표현 보니
종파분자, 결사성지, 남녘의 혁명…
안찬일씨 "뼛속까지 종북주의자"
이석기 의원은 지난달 30일 기자회견을 자청해 지난 5월 12일 비공개 회합에서 한 강연과 관련해 “나는 전쟁에 반대하는 뼛속까지 평화주의자”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내가 (강연에서 구체적으로) 북은 옳고 남은 틀리다고 한 적은 없다”고 했다. 그러나 이 의원은 강연에서 북한에 대해 예찬 일변도였다. 이 과정에서 북한에서 일상적으로 사용되는 ‘정치용어’들을 다수 등장시켰다. ‘조중(북한과 중국)혈맹’ ‘남녘의 혁명’ ‘북남외교’ 등 북한을 주체로 하며 “위원장 동지”라는 표현도 썼다.
이 의원이 사용한 표현을 전해들은 건국대 전영선(북한 문화 전공) 연구교수는 “김일성이나 김정일이 사용했던 특유의 표현을 표준어처럼 사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탈북자 출신인 안찬일 세계북한연구센터 소장은 “뼛속까지 평화주의자라고 했는데 ‘뼛속까지 종북주의자’란 말을 다르게 표현한 것 같다”고 평했다.
본지가 입수한 녹취록에서 이 의원은 “지난해 우리가 5·2 사태죠. 5·2의 성격을 단순한 장내 쿠데타라 볼 것이 아니라 종파분자들의 당권 찬탈 모의…”라고 발언했다. 지난해 5월 2일 이 의원 등이 연루된 비례대표 경선 부정 사태 당시 당의 조준호 진상조사위원장이 ‘총체적 부정 경선’이라는 보고서를 낸 점을 언급한 대목이다.
이 의원이 언급한 ‘종파분자’는 북한에선 김일성 주석이 1950년대 스탈린 격하운동이 벌어지자 최창익·박창옥 등 소련파·연안파를 ‘반당 종파분자’로 몰며 숙청할 때 사용됐던 용어다. 이들이 숙청된 8월을 놓고 북한에선 ‘8월 종파사건’이라고 공식적으로 부른다.
강연 말미에 그는 “그야말로 ‘총공격’의 명령이 떨어지면 속도전으로, 일체감으로 강력한 집단적 힘을 통해서 각 동지들이 자기 ‘초소’에 놓여 있는, 그야말로 무궁무진한 창조적 발상으로… 한순간에 우리 서로를 위해서 여러분을 믿고 마치겠습니다. 바람처럼 사라지시라”고 했다.
이 가운데 ‘바람처럼 사라지시라’는 말은 북한이 지하공작원들에게 쓰는 말이라고 안찬일 소장은 소개했다.
안 소장은 “은밀하게 모였다가 은밀하게 해산하고 노출을 절대 삼가라는 뜻”이라며 “공작원들에게 노출을 절대 삼가라고 경고하면서 격려할 때 쓴다”고 설명했다.
북한이 올해 들어 개정했다는 ‘당의 유일사상체계 확립을 위한 10대 원칙’엔 이 의원이 사용한 ‘초소’라는 말에 관한 대목도 들어 있다. 북한은 “모든 단위, 모든 초소에서 수령님에 대한 충실성에 기초하여 혁명적 동지애를 높이 발양하며 대렬의 사상 의지적 단결을 강화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강연 도중 이 의원은 “결사성지 기억은 나시죠”라고 물으며 “조선민족은 신념과 의지 이런 데 대해서 굉장히 강합니다”고 했다.
이에 대해선 안 소장조차 “결사성지(決死聖地)라는 표현으로 볼 때 북한이 숭배하는 장소를 뜻하는 것 같다”며 어디를 말하는지에 대해선 고개를 갸웃했다. 본지 확인결과 북한의 ‘당의 유일사상체계 확립을 위한 10대 원칙’엔 ‘금수산태양궁전을 영원한 성지로 꾸리고 결사보위한다’는 구절이 들어 있어 김일성·김정일 시신이 있는 금수산태양궁전을 가리킨 말로 보인다.
강의록엔 이 의원이 “거기 나온 게 이른바 반타격대가 나온 거예요. 타격, 반타격해서 당시의 반타격의 대장이 위원장 동지라고 역사적 사실이에요”라고 말한 부분도 있다. 지난 5월 한·미의 연합 대잠훈련에 대해 조선중앙통신은 북한군 서남전선사령부가 “적들의 도발적인 포사격으로 우리 측 영해에 단 한 발의 포탄이라도 떨어지는 경우 즉시적인 반타격전에 진입할 것”이라고 했었다.
북한이 대중 관계를 거론할 때 항상 ‘조중 관계’로 부르는 것처럼 이 의원 또한 “조중동맹이라는, 조중혈맹이라 하는 조중의 혁명 역사를 주장하는…”이라면서 ‘조중’이란 표현을 그대로 인용했다. ‘조중혈맹’은 6·25전쟁 당시 마오쩌둥 주석의 아들 마오안잉(毛岸英)이 중국군으로 참전해 사망하며 시작된 북·중 관계를 상징하는 표현이다.
글=정용수·정강현 기자
사진=김형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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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호택 칼럼]
잔류 주사파의 ***발달 장애
기사입력 2013-09-12 03:00:00 기사수정 2013-09-12 03:00:00
원조 주사파 “엘리트 빠져나가고 판단력 떨어진 사람들만 잔류”
의회를 이용하는 전술은 볼셰비키부터 내려온 것
국보법 두려워 잡아떼지만 ‘주사파’끼리는 서로 통해
황호택 논설주간 채널A 시사프로 ‘논설주간의 세상보기’ 진행
1980년대 후반 소련과 동유럽 공산권이 무너지면서 소련식 사회주의를 대안(代案)으로 생각했던 사람들이 고민하기 시작했다. 김문수 경기도 지사는 감옥에 있을 때 “모스크바의 여대생들이 미제 청바지 한 장을 받고 몸을 판다는 말을 듣고 충격이 컸다”는 말을 강연에서 자주 한다. PD(민중민주파)였던 노회찬은 감옥에 있을 때 동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는 TV 뉴스를 보았다. 그는 감옥에서 나온 뒤에 공산주의가 붕괴한 소련과 독일의 현장을 둘러봤다.
NL(민족해방파)의 주류인 주사파는 소련과 동유럽의 몰락에도 용케 잘 버티고 있는 조국(북한)과 수령(김일성)을 자랑스럽게 생각했다. 그러나 식량난으로 북에서 탈북자들이 쏟아져 내려오기 시작하면서 주사파들도 흔들렸다. 민족민주혁명당(민혁당)을 했던 홍진표 국가인권위원회 상임위원은 “1990년대 중반 탈북자들이 내려와 전하는 말을 듣고 북한의 진실을 아무리 믿지 않으려 해도 안 믿을 수가 없었다”고 말했다.
민혁당은 김일성과 김정일에게 절대 충성하는 주사파들의 지하당이었다. 지금은 전향해 북한 민주화운동을 벌이는 김영환이 주사파의 원조(元祖)다. 공작선을 타고 북에 가 김일성을 만나고 돌아왔던 김영환은 북한 체제에 회의를 품고 1997년 민혁당을 해산했다. 민혁당의 구성원은 대략 100명쯤으로 추산되는데 이 중 3분의 1가량이 김영환 홍진표 씨처럼 전향을 했고, 나머지는 그대로 눌러앉았다. 소련과 동유럽의 몰락 및 북한 주민의 참상을 알고 나서도 완강하게 버티는 잔류 주사파는 오류를 인정할 용기가 없거나 ‘판단력 수준이 떨어지는’(김영환 표현) 사람들이다. 이런 측면에서 민혁당 잔류파들은 심각한 발달 장애를 겪고 있다.
민혁당은 신원 노출을 피하기 위해 가명을 쓰고 비밀 점조직 형태로 운영했다. 세포 3, 4명만 서로 알고 세포의 책임자가 상부 지도선 한 명과 연결됐다. 체포되더라도 세포 하나만 노출되고 전체 조직을 보호하기 위한 꼬리 자르기 전술이다. 홍 씨는 같은 민혁당이었던 이석기도 당 활동을 할 때는 몰랐고, 나중에 민혁당 사건으로 재판을 받을 때 알게 됐다고 말했다.
경기동부 RO처럼 130명 정도가 모이면 완벽한 보안이 불가능하다는 것이 기본 상식이다. 그런데 왜 130여 명이 모인 회합에서 “무기를 준비하자” “국가기간시설을 타격하자” 같은 말이 나왔을까. 영웅심리의 발로이거나 ‘전략전술적 능력 부족’일 것이다. 김영환은 “중국 공산당이나 (소련) 볼셰비키의 경우 엘리트들이 끝까지 남아 있었지만 한국 주사파의 경우 이미 엘리트들이 남아 있지 않아 전략전술적 능력이 너무 많이 떨어진다”라고 말했다(통진당에 참여했다가 분당사태를 겪고 경기동부의 실체를 폭로한 이청호 부산 금정구의원의 책 ‘진보는 죽었다’에서 인용).
김영환은 이석기가 민혁당의 한 분파였던 경기동부 인맥의 시조이고 대부 같은 역할을 했다고 단언했다. 김영환은 김일성 숭배의 오류를 깨닫고 민혁당을 해산한 뒤에 잔류파들이 북한과의 재(再)연계를 요구했지만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종북적 성향이 강해 북한과의 연계를 간절히 바라던 잔류파들은 1998년에 북에서 남파한 공작원을 통해 다시 북과 연계를 갖게 됐다고 한다. 김영환은 “남쪽 주사파도 역량이 매우 떨어지지만 북쪽의 대남 공작기관의 수준도 저급하다”면서 “남쪽에서 합법정당을 추진하는 것은 김일성의 지시로 추진된 일관된 전술이었다”고 말한다.
잔류 주사파들은 외부에서 자신들을 주사파라고 부르면 “보수신문과 국정원의 낙인찍기”라고 발끈한다. 국가보안법을 피하기 위한 잡아떼기다. 하지만 자기들끼리는 술자리에서 “장군님(김정일) 상중에 술을 자제하라”고 말할 정도로 주사파임을 감추지 않는다. 이청호 구의원은 명예훼손 소송이 들어올 경우에 대비해 통진당 모 의원이 했다는 이 발언의 녹음을 확보하고 있다.
비합법 세력이 의회에 진출하는 전술은 블라디미르 레닌 때부터 써먹던 수법이다. 볼셰비키들은 핵심 당원을 두마에 들여보내 국민을 상대로 선전전을 펼쳤다. 국민의 대표기관으로서 의회의 권능과 규칙을 존중하는 의회주의와 달리 의회 전술은 목적 달성을 위한 도구로 의회를 이용한다. 통진당이 의회에 진출하기 위해 부정선거 폭력 국고횡령을 서슴지 않았음은 비례대표 경선 부정과 분당 사태를 통해 잘 알려진 바다. 잔류 주사파들의 의회 전술을 성공시킨 일등 공신은 야권 연대로 종북 세력을 끌어들인 민주당 국민참여당 진보신당 사람들이다.
황호택 논설주간 채널A 시사프로 ‘논설주간의 세상보기’ 진행 hthwang@donga.com
NL(민족해방파)의 주류인 주사파는 소련과 동유럽의 몰락에도 용케 잘 버티고 있는 조국(북한)과 수령(김일성)을 자랑스럽게 생각했다. 그러나 식량난으로 북에서 탈북자들이 쏟아져 내려오기 시작하면서 주사파들도 흔들렸다. 민족민주혁명당(민혁당)을 했던 홍진표 국가인권위원회 상임위원은 “1990년대 중반 탈북자들이 내려와 전하는 말을 듣고 북한의 진실을 아무리 믿지 않으려 해도 안 믿을 수가 없었다”고 말했다.
민혁당은 김일성과 김정일에게 절대 충성하는 주사파들의 지하당이었다. 지금은 전향해 북한 민주화운동을 벌이는 김영환이 주사파의 원조(元祖)다. 공작선을 타고 북에 가 김일성을 만나고 돌아왔던 김영환은 북한 체제에 회의를 품고 1997년 민혁당을 해산했다. 민혁당의 구성원은 대략 100명쯤으로 추산되는데 이 중 3분의 1가량이 김영환 홍진표 씨처럼 전향을 했고, 나머지는 그대로 눌러앉았다. 소련과 동유럽의 몰락 및 북한 주민의 참상을 알고 나서도 완강하게 버티는 잔류 주사파는 오류를 인정할 용기가 없거나 ‘판단력 수준이 떨어지는’(김영환 표현) 사람들이다. 이런 측면에서 민혁당 잔류파들은 심각한 발달 장애를 겪고 있다.
민혁당은 신원 노출을 피하기 위해 가명을 쓰고 비밀 점조직 형태로 운영했다. 세포 3, 4명만 서로 알고 세포의 책임자가 상부 지도선 한 명과 연결됐다. 체포되더라도 세포 하나만 노출되고 전체 조직을 보호하기 위한 꼬리 자르기 전술이다. 홍 씨는 같은 민혁당이었던 이석기도 당 활동을 할 때는 몰랐고, 나중에 민혁당 사건으로 재판을 받을 때 알게 됐다고 말했다.
경기동부 RO처럼 130명 정도가 모이면 완벽한 보안이 불가능하다는 것이 기본 상식이다. 그런데 왜 130여 명이 모인 회합에서 “무기를 준비하자” “국가기간시설을 타격하자” 같은 말이 나왔을까. 영웅심리의 발로이거나 ‘전략전술적 능력 부족’일 것이다. 김영환은 “중국 공산당이나 (소련) 볼셰비키의 경우 엘리트들이 끝까지 남아 있었지만 한국 주사파의 경우 이미 엘리트들이 남아 있지 않아 전략전술적 능력이 너무 많이 떨어진다”라고 말했다(통진당에 참여했다가 분당사태를 겪고 경기동부의 실체를 폭로한 이청호 부산 금정구의원의 책 ‘진보는 죽었다’에서 인용).
김영환은 이석기가 민혁당의 한 분파였던 경기동부 인맥의 시조이고 대부 같은 역할을 했다고 단언했다. 김영환은 김일성 숭배의 오류를 깨닫고 민혁당을 해산한 뒤에 잔류파들이 북한과의 재(再)연계를 요구했지만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종북적 성향이 강해 북한과의 연계를 간절히 바라던 잔류파들은 1998년에 북에서 남파한 공작원을 통해 다시 북과 연계를 갖게 됐다고 한다. 김영환은 “남쪽 주사파도 역량이 매우 떨어지지만 북쪽의 대남 공작기관의 수준도 저급하다”면서 “남쪽에서 합법정당을 추진하는 것은 김일성의 지시로 추진된 일관된 전술이었다”고 말한다.
잔류 주사파들은 외부에서 자신들을 주사파라고 부르면 “보수신문과 국정원의 낙인찍기”라고 발끈한다. 국가보안법을 피하기 위한 잡아떼기다. 하지만 자기들끼리는 술자리에서 “장군님(김정일) 상중에 술을 자제하라”고 말할 정도로 주사파임을 감추지 않는다. 이청호 구의원은 명예훼손 소송이 들어올 경우에 대비해 통진당 모 의원이 했다는 이 발언의 녹음을 확보하고 있다.
비합법 세력이 의회에 진출하는 전술은 블라디미르 레닌 때부터 써먹던 수법이다. 볼셰비키들은 핵심 당원을 두마에 들여보내 국민을 상대로 선전전을 펼쳤다. 국민의 대표기관으로서 의회의 권능과 규칙을 존중하는 의회주의와 달리 의회 전술은 목적 달성을 위한 도구로 의회를 이용한다. 통진당이 의회에 진출하기 위해 부정선거 폭력 국고횡령을 서슴지 않았음은 비례대표 경선 부정과 분당 사태를 통해 잘 알려진 바다. 잔류 주사파들의 의회 전술을 성공시킨 일등 공신은 야권 연대로 종북 세력을 끌어들인 민주당 국민참여당 진보신당 사람들이다.
황호택 논설주간 채널A 시사프로 ‘논설주간의 세상보기’ 진행 hthw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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