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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53 한준구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 댓글 0건 조회 2,443회 작성일 2013-09-08 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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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북 연구 25년,

 

 

 

 

유동열 박사가 본 이석기

 

 

 

[온라인 중앙일보] 입력 2013.09.08 09:08 / 수정 2013.09.08 09:12
 

"RO 130명 내란 가능? 차고 넘치는 숫자…압수수색한 계좌에 밝히기 곤란한 거액"

 
 
 
 
 
사람들은 그를 ‘종북 퇴마사’라고 부른다. 우리 사회에 암덩이처럼 퍼진 주사파·종북세력의 행태를 진단·분석하고 퇴치방안을 연구하는 게 그의 직업이다. 유동열(55) 경찰대 치안정책연구소 선임연구관. 1989년 1월 경찰청 공안문제연구소 연구관으로 첫발을 들여놓은 그는 25년 동안 외길을 걸었다. 북한의 대남 통일전선전술과 이와 연계된 국내 간첩·종북세력 연구로는 독보적 존재다.

 경기도 용인 경찰대 내에 있는 그의 사무실에는 비밀이나 대외비라고 빨간 도장이 찍힌 문건이 하루에도 수십 건 쌓인다. 국내 종북세력의 동향과 해외 체류 북한 공작원과 친북 인사들의 움직임 등을 담은 첩보 보고서가 대부분이다. 여기에는 내란음모 혐의로 구속된 이석기 통합진보당 의원 관련 파일 등 따끈따끈한 내용도 포함돼 있다고 한다. 6일 그를 만나 이석기 사건에 대한 생각과 처방을 들어봤다.

 - 내란음모 사건이 온 나라를 충격에 빠트렸다.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올 것이 온 것뿐이다. 친북·종북세력에 대한 우리 사회의 묵인과 관용이 이런 사태를 부른 것이다. 종북을 종북이라 비판하지 못했다. 내란음모 종북세력의 핵심에게 ‘존경하는 의원님’이라 불렀다. 뭐가 존경스럽다는 말인가.”

 - ‘RO(Revolution Organization)’와 같은 조직이 등장했다. 과거 간첩·종북 사건과 비교하면 어떤 특징이 있나.

 “지하에 암약하던 종북세력이 김대중·노무현정부 10년을 거치며 제도권으로 올라왔다. 그 탄력으로 국회라는 합법적 공간까지 침투한 것이다. 유럽식 의회민주주의가 아닌 사회주의 폭력혁명을 노골적으로 드러낸 것도 눈에 띈다. 국가적 망신이자 대한민국의 불행이다.”

 - 130명의 RO 조직으로 내란이 가능하냐는 주장도 일각에서 나온다.

 “공산주의 전략전술을 모르고 하는 이야기다. 레닌은 비합법적인 소수 정예요원으로 혁명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고, 이 지침은 종북·주사파에 유효하다. 러시아 볼셰비키 혁명은 3명의 노동자 해방동맹에서 시작해 레닌 시기 17명에서 46명으로 늘려 가며 성공했다. 당시 러시아 인구는 1억5000만 명이다. 중국도 공산주의 소조 50명이 씨앗이 됐고, 쿠바의 카스트로도 80명으로 혁명을 주도했다. 130명은 차고 넘치는 숫자다.”

 - 국내 종북세력의 규모는 어느 정도인가.

① 1999년 당시 국가정보원 엄익준 2차장이 민족민주혁명당 간첩단 수사 결과를 브리핑하고 있다. ② 97년 침투한 간첩 최정남·강연정 부부가 사용한 장비들. ③ 고 황장엽 전 조선노동당 비서 측근 암살을 계획하다 2011년 검거된 간첩이 보관했던 볼펜형 독침과 만년필형 총, 손전등형 총. [중앙포토]▷여기를 누르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직업적으로 ‘혁명가’라 부를 사람만 3000명 정도다. 학원·노동계와 재야에 포진돼 있다. 그중 극히 일부가 이번에 드러난 RO라 할 수 있다. 제2, 제3의 RO가 있다는 얘기다.”

 - 총기 무장과 핵심 군·산업시설 테러 등이 녹취록에 등장했다. 이석기는 종북 주사파의 전형인가, 아니면 돌연변이인가.

 “북한 김정은이 3~4월 대남벌초 발언을 했다. 제주도에 인공기를 꽂겠다는 말도 나왔다. 그러니 5월 들어 RO 모임을 급히 소집해 ‘혁명의 결정적 시기’가 왔다고 본 것이다. 과대망상이 아니라 지하혁명가들이 무장폭동을 준비해야 한다고 판단한 것이다.”

 - 북한은 유화 국면으로 돌아섰다. 이석기의 판단이 잘못된 건 북한과 제대로 교감하지 못했다는 정황 아닌가.

 “판단 오류라는 건 우리 식으로 볼 때고, 걔들(RO 세력)은 혁명을 준비하는 시기이기 때문에 이런 일을 해야 한다고 본 것이다. (북한으로부터) 지령이 왔거나 뭔가 있었을 것이다.”

 - 루블화 등 돈다발이 압수수색에서 나왔다. 북한과의 연계를 밝히는 데 돈의 흐름을 파악하는 게 중요할 텐데.

 “압수수색된 통장 계좌에 금액을 밝히기는 곤란한 거액의 돈이 있다. 과거처럼 라면 끓여 먹으면서 혁명하는 게 아니란 얘기다. 과거 북한 공작금과 연관되지 않은 지하조직은 없었다. 민혁당의 경우도 96년에 김영환이 40만 달러를 받았다. 후임자 격인 하영옥도 엔화 50만 엔을 받았다. 수사가 진행 중이라 곧 구체적인 결과가 나올 것으로 보고 있다.”

 - 이석기의 경우 돈 관리를 어떻게 했나.

 “지하조직은 사상과 조직·자금 등 3가지 요소가 중요하다. 이석기는 주체사상으로 무장하고 RO란 조직이 있었다. 그리고 돈으로 조직을 관리했다. 지역조직의 책임자에게는 직업을 줬다. 경기도·수도권의 급식소 등 책임자 자리다. 그들은 월급 중 일정 부분을 다시 RO로 돌려준다. 나머지 조직원은 국회 보좌관이나 월급 나오는 자리에 앉혀 준다.”

 - 그 정도 자금이 어떻게 조달될 수 있었나.

 “통진당은 2010년부터 정당 보조금 95억원을 받았다. 이 중 상당 부분이 이석기 개인회사 쪽으로 선거비용 명목으로 흘러갔다.”

 - 이석기에 대한 조직원들의 충성도가 상당한 것 같다.

 “이석기만을 위한 10여 명의 경호팀이 운영됐다. 이석기가 행사를 위해 출발하면 ‘수(首)께서 출발하셨나’라고 통신을 하고, 도착 의전을 하는 방식이다. 압수수색·구속 과정에서 폭력적인 저항을 주도했던 인물들이다.”

 - 북한이 이번 사태에 대해 비난 논평 등 없이 사실상 침묵하고 있다.

 “과거 왕재산·일심회 사건 때는 ‘통일 애국세력 탄압이고 조작’이라고 비난했다. 지금은 관망 중인 듯하다.”

 - 이석기와 통진당은 공안 탄압이라고 주장한다. 권위주의 정부 시절 일부 시국사건이 최근 들어 무죄판결이 나면서 일부 국민은 ‘혹시나 이번에도’ 하는 생각도 할 수 있지 않을까.

 “무죄를 받는 건 당시 수사 과정에서 적법 절차를 거치지 않은 때문이라고 이해해야 한다. 당시 남북 대치상황에서 국민은 간첩·공안사건은 좀 엄하게 다뤄야 한다는 공감대가 있었고 수사 당국 등이 인권 문제를 소홀히 한 측면이 지금 지적받고 있는 것이다.”

 - 사법부는 여전히 엄격한 범죄소명을 요구한다.

 “북한 대남공작의 은밀성과 치밀성을 고려하지 않는다. 황장엽 전 노동당 비서가 재독 송두율 교수가 북한 노동당원이라고 밝혔는데, 법원은 이를 증언으로 채택하지 않았다. 김정일과 김정은을 수사해 자백을 받아 올 수는 없지 않은가.”

 - 제2, 제3의 이석기가 안 나오게 하려면.

 “간첩 및 반국가 활동을 해 확정판결 받은 경우 사면복권을 제한해야 한다. 독일의 경우 72년 극단주의자에 대한 정부훈령을 통해 반국가 행위자는 공무원 임용이 불가능하게 했다.”

이영종·정원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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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10문10답 뉴스 깊이보기 게재 일자 : 2013년 08월 23일(金)
흔들리는 육군사관학교… 생도생활의 모든 것
입교전부터 군사훈련 5∼10명 포기… ‘三禁制’ 시대따라 변화 미투데이공감페이스북트위터구글
▲ 여생도 성폭행 사건과 태국 봉사활동 중 숙소무단 이탈 사건 등으로 최근 육사 생도들의 일탈 현상에 대한 논란이 일고 있다. 사진은 육사 졸업 및 임관식에서 생도들이 도열해 있는 모습. 문화일보 자료사진
어느 국가든 군대를 조직하면 우수한 지휘자를 양성하기 위한 사관학교(교육기관)를 동시에 설립한다. 국내에서도 해방 직후 군사교육기관이 문을 열었고, 여기서 배출된 이들은 6·25전쟁과 베트남전쟁 등의 전장에서 앞장섰다. 육군사관학교는 창군 초기에 만들어져 역사를 갖춘 만큼, 육군의 다른 장교 양성기관인 육군3사관학교나 ROTC에 비해 임관자들이 군의 주요 지위에 포진해 있다. 하지만 최근 연이어 불거진 여생도 성폭행 사건과 태국 봉사활동 지역에서의 숙소무단 이탈 사건으로 육사에 대한 사회적 비난이 거세다. 일부 군 전문가들은 이를 두고 “1990년대 중반 문민화 여파로 경쟁률이 급감한 이후 육사에 최대의 위기가 찾아왔다”고 진단했다.

1. 육군사관학교 전신과 역사

해방 후 한국의 첫 장교 양성기관은 군사영어학교(Military Language School)로 1945년 12월 설립됐고, 학생들은 한 달가량의 교육을 거쳐 장교로 임관했다. 군사영어학교는 단기로 운영됐으나 학도병과 일본 육군사관학교 출신 군인들이 많아 한국군의 한 축을 맡았다. 육사가 지금과 같은 학교의 모습을 갖춘 것은 1946년 5월 1일 만들어진 남조선국방경비사관학교(같은해 6월 조선경비사관학교로 개칭)로, 첫 입학생 88명을 포함해 1948년 9월 7기생이 졸업할 때까지 총 1800여 명의 군 간부를 배출했다.

경비사관학교 또한 단기간 운영된 학교며 군 경력자 위주로 선발했지만, 정규적인 교육기관으로서의 역할 때문에 이를 육사의 전신으로 삼는다. 이후 ‘육군사관학교’란 이름은 1948년 9월 5일 처음 얻었으며, 1951년(11기) 9월 지금과 같은 4년제 신입생을 모집했다.

2. 육사 생도가 되기 전

일반 대학생들이 입학 전 야외로 MT를 가서 술을 마시는 것과 달리 육사 생도들은 입학 전 기초군사훈련에 들어가 ‘짬밥’을 먹기 시작한다. 기초군사훈련은 5주간 진행되며, 신병들이 훈련소에서 교육을 받는 것과 같이 기본적인 병과 훈련으로 구성돼 있다. 보통 육사의 입학식은 2월 말에 열리며 군사훈련 1월 중에 실시돼 생도들은 입교 전 혹독한 훈련을 받게 된다. 기초군사훈련까지는 입학생들에게 ‘생도’란 호칭을 쓰지 않고 ‘기초군사훈련생도(기훈생도)’라 칭한다. 기초군사훈련의 내용은 크게 가치관 함양 교육(국가관·역사관 등 7개 과목)과 군사훈련(개인화기·각개전투 등 15개 과목), 생도생활 적응교육(생도생활 예규 등 10개 과목)으로 구성된다.

기초군사훈련 때부터 훈련생들에게 군대급식이 지급되며, 이 기간에는 직각식사를 해야 한다. 직각식사란 음식을 먹을 때 팔의 동작을 직각으로 하는 것으로, 사회 생활에 익숙해 있는 훈련생을 빠르게 ‘각’이 잡힌 군인으로 만들기 위한 목적을 담고 있다. 훈련이 힘들고 익숙지 않은 까닭에 매년 5∼10명의 훈련생이 중도포기한다.

3. 생도가 되면

육사 생도들은 총 8개의 중대로 구분돼 생활한다. 오전 6시 기상을 시작으로, 8시 학과수업과 오후 3시 체육수업 등 정해진 일과에 따라 생활하며 이를 어길 시에는 교칙에 따라 징계에 처해질 수 있다.

학교를 벗어나는 외출과 외박 또한 토요일과 일요일만 가능하며, 오후 9시 이전까지 복귀해야 하는 등 군인 신분으로 생활하는 것이 일반 대학과 큰 차이점이다.

입교 후에도 생도들의 훈련은 계속된다. 생도들은 1∼4학년 동안 매년 여름 총 25주(1∼3학년 6주, 4학년 7주)의 훈련을 받으며, 주요 내용은 전투 숙달훈련 및 리더십 함양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 학년별로 훈련 내용에 차이가 있는데 1, 2학년 때는 육군훈련소(충남 논산)와 부사관학교(전북 익산)에서 기본적인 병과 교육을 받고 3학년이 되면 북한군의 소부대 전술 등을 익히며 4학년은 일반전초(GOP) 지역에서 100㎞ 행군을 실시한다.

4. 입시와 경쟁

육사는 매년 250명 안팎의 신입생을 선발하며, 여생도는 전체의 10% 이하로 뽑는다. 전액 국비로 교육과정을 이수할 수 있고 매달 30만∼40만 원 정도의 품위유지비(2013년 기준)가 지급되는 까닭에 1960∼1970년대는 주로 집안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이 지원했지만, 최근에는 과학고와 외국어고 등 특수목적고 학생들의 진학이 크게 늘어 전체의 20% 정도를 차지한다. 2014년도 육군사관학교 생도 모집에는 6000여 명의 학생들이 몰려, 20.6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으며, 여생도의 경우에는 43.3대 1로 역대 최고였다.

육사의 경쟁률은 정치·경제 상황에 따라 움직임을 보이는 특징도 있다. 김영삼정부 출범 이후 문민화가 한창이었던 1994년에는 4대 1까지 떨어졌으나 외환위기(IMF) 직후에는 다시 큰 폭으로 올라 최근에는 20대 1 안팎을 유지하고 있다.

5. 여생도 입교·생활

육사는 1998년(58기)부터 여자 생도를 받기 시작했으며, 매년 남자 생도들보다 높은 경쟁률과 성적을 보이고 있다. 특히 2012년(68기) 임관한 윤가희(25) 중위가 여생도로는 처음으로 수석졸업을 차지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여생도 입학 경쟁률은 안보위기와는 무관하게 꾸준한 추세를 유지하고 있다. 북한의 천안함 폭침사건과 연평도 포격이 있었던 지난 2010년 71기(2011년도 입교) 모집에선 여생도의 경쟁률이 사상 처음으로 40대 1을 넘겨 군 관계자들을 놀라게 했다.

여생도들의 생활 역시 일반 여대생과 다르다. 남자 생도들과 똑같은 수준의 훈련을 받는 것은 물론, 머리길이는 차려 자세로 섰을 때 뒷머리가 제복의 깃에 닿지 않아야 하고, 귀걸이 등 장신구는 일체 사용할 수 없는 등 화장과 외모 관리에 제한을 받는다.

6. 생도 구성과 책임

육사는 미래 군의 지휘관을 배출하는 곳인 만큼 자율정신과 책임의식을 강조한다. 이 때문에 생도 자치활동의 일환으로, 야전부대 형식의 지휘근무제도를 운영한다. 지휘근무 편성은 크게 생도연대와 예하 연대본부와 2개 대대로 구분하며, 각 대대마다 4개 중대와 3∼4개 소대를 둔다. 생도들은 구분된 부대에 각종 훈련시 지침을 일원화한다.

생도자치규정을 강조하기 때문에 그에 따른 의무와 책임도 무겁다. 대표적인 것이 무감독 시험이다. 생도들은 각종 학과 시험시 감독관 없이 시험을 본다. 담당교수는 시험 시작 3분 전에 도착해 부교반장 생도의 시험 준비 보고를 받으며 시험지를 분배한 후에는 시험감독을 하지 않는다. 생도 스스로의 양심에 맡기는 것이다. 하지만 시험 중에 지켜야 하는 사항을 어겼을 경우에는 명예 최저기준을 위반한 것으로 간주해 퇴교처리된다.

7. 삼금(三禁)제도와 생도간 연애

삼금제도는 육사가 1952년 1월 진해에서 4년제로 재개교하면서 도입된 제도로, 금주(禁酒)와 금연(禁煙), 금혼(禁婚)이 이에 해당한다. 삼금제도는 시대에 따라 변천이 있었다. 1968년까지는 약혼이 허용되기도 했으며 금주조항은 2003년 들어 허가권자의 폭이 크게 넓어졌는데, 각종 행사와 관혼상제 등을 감안해야 한다는 여론으로 인해 가족과 훈육관, 지도교수 등으로 그 폭이 넓어졌다. 특히 2005년에는 음주의 허용량도 생맥주 1000cc와 소주 1홉으로 제한했지만 2009년 관련 조항이 삭제됐다. 음주는 허용됐지만 사전에 훈육관 등에 보고해야 하며, 교외에서는 사복차림으로만 가능하다.

여생도 입교 후 생도 간 연애 문제 또한 불거졌는데, 육사는 2001년부터 생도 상호간 이성교제를 제한적으로 허용하며 1학년 생도는 제외시켰고 영내 근무장병과 생도 간 교제도 허용하지 않고 있다.

8. 최근 일어난 사고

육사 생도들이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킨 사고는 대부분 음주 관련 사고였다. 최근 일어난 여생도 성폭행 사건과 6·25전쟁 참전국(태국) 방문시 숙소 무단이탈 외에도, 2003년 일어난 외국인 여성 성추행 사건이 대표적이다.

2003년 8월 육사 3학년 생도 A(당시 21세) 씨가 노래방에 들어가기 위해 계단을 오르려는 영국인 B(당시 35) 씨의 가슴을 만진 혐의로 서울 노원경찰서에 연행된 사건이 발생했다. A 씨는 성추행에서 끝난 것이 아니라 피해자의 비명을 듣고 뒤쫓아온 태권도 사범 C 씨와 멱살을 잡고 싸움을 벌이기도 했다. 육사 조사결과 A 씨는 사건 당시 만취상태였고, 동기 생도 5명과 함께 외박을 나와 1, 2차 술자리에서 다량의 소주와 생맥주를 마셨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 사건에 연루된 생도 6명은 모두 퇴교처분을 받았다.

9. 육사 출신 주요인물

육사는 한국에서 대통령을 가장 많이 배출한 교육기관이다. 박정희(조선경비사관학교 2기) 전 대통령을 비롯해 전두환(11기) 전 대통령과 노태우(〃) 전 대통령 모두 육사 출신이다. 이외에도 김종필(8기) 전 총리 등 육사 출신들은 군사정권 시절 내각의 주요 자리를 차지했다. 현재도 한국군의 주요 요직은 육사 출신들이 맡고 있다. 전체 사성장군(대장) 8명 중 5명이 육사 출신이며, 400여 명의 장군 중 이들 출신이 가장 많다. 박근혜정부 들어 청와대와 국정원 등 안보라인에 기용된 육사 출신도 상당하다. 남재준(25기) 국가정보원장을 비롯해 김장수(27기) 청와대 국가안보실장과 박흥렬(28기) 경호실장, 김관진(28기) 국방부 장관이 모두 육사를 졸업했다.

10. 하나회와 육사

하나회(하나會)는 1963년에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 등 육사 11기생들의 주도로 비밀리에 결성한 조직을 말한다. 육사 11기는 최초로 4년제 과정을 거친 생도들로 선배 기수들보다 결집력이 강했다. 회원 모집은 폐쇄적이었는데 기수가 내려갈수록 경상도 출신 소장파 장교들을 대상으로 3∼4명씩 모집했다.

하나회 회원들은 육군본부 인사참모부, 보안사령부 내사과 등의 진급 담당 요직을 차지해 승진이나 자리 이동 때 선배가 후배를 추천하고 밀어주는 식으로 군내 주요 요직을 독점했고 강령을 만들어 조직을 결속했다. 이들 강령은 ‘하나회의 선후배와 동료들에 의해 합의된 명령에 복종한다’와 ‘하나회원 상호 간에 경쟁하지 않는다’, ‘이상의 서약을 위반할 시 ‘인격말살’을 감수한다’ 등으로, 타 출신을 배제한 채 군을 사조직처럼 운영했다. 특히 이들은 1979년 12·12 사태를 주도했고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강제진압하는 등 한국 현대사의 어두운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정철순 기자 csjeong1101@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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