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군 이래 최대규모인 총 사업비 8조3000억 원 규모의 차기전투기(F-X) 3차 사업이 위기에 빠져있다. 최종 가격 입찰 결과 미국 보잉사의 F-15SE가 단독 후보로 상정될 계획이지만 스텔스 성능이나 기술이전 등에서 록히드마틴사의 F-35A나 유로파이터보다 뒤처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공군은 “한국적 상황에 적합한 공군력 확보를 위한 F-X 3차 사업에서 방위사업청과 정부의 방침에 떠밀려 자칫
‘구형 전투기’를 또다시 구입해야 할지도 모른다”며 허탈해하고 있다. 하지만 정부와 방사청이 예산과 한·미동맹만을 의식, 영공방어 지배력과
한국형전투기(KF-X)개발 사업 등 미래의 한반도 안보 상황을 외면하면서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지난해 1월 30일 제안요청서(RFP)를
배포한 뒤 1년 7개월 만에 멈춰버린 F-X 3차 사업의 논란 발단과 배경을 점검하고 해결책은 무엇인지를 찾아보기 위해 앞으로 5회에 걸쳐 사업
전 과정을 집중 분석한다.8조3000억 원의 혈세로 차기전투기 60대를 들여오는 F-X 3차 사업이
최종 입찰을 끝내고 기종 선정을 위한 종합평가만을 남겨두고 있다. 그러나 F-X 3차 사업은 “사업비 안에 들어오지 않는 기종은 차기전투기로
선정될 자격이 없다”는 방위사업청의 새로운 규정으로 뜻밖에도 1960년대에 개발을 시작한 미국 보잉사의 F-15SE 한 기종만이 한국이
2050년대까지 사용해야 할 전투기로 선택되느냐 마느냐의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방사청은 29일 언론에 배포한 ‘F-X 사업
10문10답’ 자료를 통해 “총사업비(8조3000억 원)를 초과하는 기종은 계약이 불가능해 총사업비 이내 제안 기종을 방위사업추진위원회에
상정한다는 원칙하에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지난 16일 끝난 차기전투기 가격입찰에서 총사업비 내 가격을 제시한 보잉의 F-15SE를
제외하고, 총사업비를 초과한 F-35A(록히드마틴)와 유로파이터(유럽항공방위우주산업·EADS)의 탈락을 재확인한 셈이다.
이처럼
F-X 3차 사업에 제안된 유로파이터와 F-35가 기술이전과 무장, 스텔스 성능 등에서 F-15SE보다
비교 우위를 보이고 있음에도 사실상 탈락되면서 사업을 진행해 온 방사청의 사업
관리 능력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30년 군수
유지비용까지 합하면 30조 원이 넘어가는 초대형
국제경쟁 입찰 사업을 정확한 원칙 없이 진행함으로써 ‘문제백화점’으로 만들어 현재의 상황을 자초했다는 지적도
빠지지 않고 있다.
전문가들은 F-X 3차 사업이 현재의 상황을 초래한 근본적인 이유는 무엇보다 개발 중이거나
설계도면 위에만 있는 기종을 경쟁기종으로 받아들여 사업 참여를 허용한 때문으로 분석하고
있다.
실제로 2012년 사업을 시작할 당시 미국 록히드마틴의 F-35는 개발이 30%도 끝나지 않았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방사청은
F-35가 스텔스 전투기로 개발 중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경쟁기종으로 받아주었다.
특히 지난 마지막 가격입찰에서 예산 내 최저
가격을 제시해 방추위의 단독 후보로 상정될 보잉의 F-15SE는 시제기 한 대 없는 설계상의 기종인데도 불구하고 경쟁기종으로 참여시켰다.
F-15SE는 한국이 보유한 F-15K의 꼬리날개와 내부무장창 개조를 통해 스텔스 기능을 추가하겠다는 기종이어서 항공역학적으로 심각한 기체
변형이 이뤄진다.
경쟁 기종으로 받아주려면 당연히 시제기 개발을 통해 비행테스트를 끝내고 성능
보증이 담보돼야 하는 것이 정상적인 절차다. 하지만 방사청은 “좋은 전투기를 선정하기 위해 ‘경쟁 입찰’을
하려면 다양한 기종의 참여가 필요하다”며 ‘한국이 먼저 선정해주면 나중에 만들어 주겠다’는 기종까지 허용했다. 이 때문에 결국 한 번도 만들어본
적이 없는 도면상의 전투기가 최종 가격 입찰 결과 단독후보로 상정되게 됐다.
이뿐만 아니라 전투
기로서의 실체가 부족한 F-35와 F-15SE를 경쟁 기종으로 받아들이면서 F-X 3차 사업은 지난 1년 7개월
동안 심각한 문제를 노출할 수밖에 없었다.
FMS(대외군사판매)
방식으로 거래하는 F-35는 외국인이 탑승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는 미국 정부의 내부규정에 따라 비행테스트도
받지 못했고, F-15SE도 현지 평가에서 연습기로 대체하는가 하면 최종 입찰에서는 확정가와 성능도 담보 받지 못하는 처지에 몰렸다.
이 같은 상황이
계속되자
민주당은 “자전거 한 대를 살 때도 직접 타보고 결정하는 데 한 대에 1000억 원을 넘는 전투기는 그러지
않아도 문제없다는 방사청의 주장을 이해할 수 없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하지만 방사청은 28∼29일 양일간
언론사 논설·해설위원과 정치·외교안보 부장 등을 초청한 F-X 사업 설명회에서 ‘F-15SE는 1970년대
전력화가 시작된 구형 전투기의 개량형으로 차기전투기로는 부적절하다’는 논란에 휩싸인 F-15SE를 옹호해 여론의 질타를 받기도
했다.
결국 실체가 불분명한 미국 전투기 두 기종을 F-X 3차 사업에 받아주면서 스스로 문제를 떠안은 셈이 됐고, 최종적으로
1960년대 개발된 기체를 변형하겠다는 F-15SE가 차기전투기 최종 선정 후보로 남게 되는 이상한 현실로 나타난 것이다.
한강우
기자 hangang@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