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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53 한준구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 댓글 0건 조회 2,114회 작성일 2013-08-16 0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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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선거 풍토 아직 멀었어…
양심 팔면 나라 망치는 거야"
[Interview 이희정의 사람, 이야기]

양심선언 20년, 회고록 준비 한준수 전 연기군수


입력시간 : 2012.08.24
  • 관련사진
  • 한준수 전 연기군수가 공판을 받기 위해 출정하고 있는 모습. (한국일보 자료사진)
부정으로 얼룩진 92년 총선

당시 도지사가
"고교동기 여당후보 당선시켜라"… 느닷없이 연기군수로 발령

도지사가 수표까지 줘가며 채근… 근무일지에 관권개입 꼼꼼 기록

양심선언문 쓰기까지

여당 낙선하자 "그만둬라" 압력… 마음속 울분 터져 행동으로

아들
결혼식날 검찰 소환장… 호통 쳐 쫓아냈지만 결국 끌려가


고난의 20년

檢 축소수사, 되레 주범 몰려…
정년 사흘 앞두고
파면까지

명예회복 법정투쟁 벌였지만 패소…
뒷바라지하다 떠난 아내 가슴 아파


2012년처럼 총선과 대선이 겹쳤던 1992년은? '양심선언의 해'이기도 했다. 제14대 총선 투표일을 이틀 앞둔 92년3월 22일, 육군 제9사단 소속 이지문 중위 군 부재자 투표에서 자행된 총체적 부정을 폭로했다. 총선 결과는 민주자유당 149석, 민주당 97석, 통일국민당 31석, 기타 22석. 3당 합당 후 첫 시험을 치른 민자당으로선 야당과 무소속을 합한 150석에 한 석 뒤지는 불안한 승리였다. 이 중위의 파면과 이등병 강등 전역 이후 잊혀지는 듯했던 3ㆍ24 부정선거 논란은 8월 또 다른 양심선언이 터져나오며 대선 정국을 뒤흔들었다.

"지난 14대 총선은 사상 유례없는 관권타락선거였으며, 12월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총선체제를 그대로 연계해서 관권개입이 더욱 가속화되고 있습니다."

한준수(당시 61세) 전 충남 연기군수는 8월 31일 국회 민주당 원내총무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총선 당시 관권개입 부정 사례를 폭로했다. 충남지사와 민자당 후보에게서 받은 돈과 군에서 조달한 자금 등 8,
500만원이 선거용으로 뿌려졌고, "직을 걸고 여당 후보를 당선시키라"는 윗선의 지시에 따라 읍면은 물론 리 단위까지 조직적인 표 관리가 이뤄졌다는 등 충격적인 내용이었다. 이 일로 치러야 할 혹독한 대가를 모르지 않았던 그는 14쪽에 달하는 육필 양심선언문 말미에 이렇게 적었다. "나 한 사람의 희생으로 공무원 전체의 중립성과 신분이 보장되고, 나아가 이 나라의 참된 민주정치가 실현된다면 당장 이 자리에서 죽는다 해도 두려울 것 없으며, 아무 여한도 없습니다."

그로부터 20년, 그 절절한 바람은 얼마나 실현됐을까. 지난 20일 대전 오류동 자택에서 만난 한 전 군수에게 그 물음부터 건넸다. 망구(望九)의 그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때처럼 (공무원과 행정조직) 다 동원하고 그런 식은 아니지만, 선거 부정이 아주 사라지진 않았지. 자신의 영달을 위해 권력에 아첨하는 공직자들도 있고, 새누리당에서 터진 공천헌금 사건이나 통합진보당 (비례대표) 경선 부정도 그렇고…. 사람이라면 양심이란 게 있는 거잖아. 그걸 지키고 살아야지, 그것만이라도…."

-건강은 어떠신가요?

작년 6월에 심근경색이 와서 1주일 입원했어요.
완치는 안돼 왼쪽 팔다리가 좀 불편한데, 기억력은 좋아. 어릴 적부터 옛날 기억은 그대로 다 있지. 아홉 살에 초등학교에 들어갔는데, 일제 때니까 소학교였지, 2학년 담임이었던 일본 선생이 "어느 학자가 인생이 뭔가 평생을 연구했는데 끝내 답을 못 찾고 산에 올라가 바위에서 떨어져 죽었다"는 얘기를 해 줬어. 그땐 무슨 뜻인지도 몰랐을 텐데,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이 나.

-어릴 적 굉장히 영특하셨나 봅니다.

2남2녀 중 막내로 났지.
한일합방(한일 강제 병탄) 前 면장을 지내신 할아버지께서 형님 더러 "동생 잘 가르쳐라, 집안 일으킬 놈 저 놈밖에 없다"고 하셨는데, 형님이 징용을 가는 통에 소학교만 마치고 아버지 농사일 거들었지. 해방되고 돌아온 형님 덕에 이름난 선생들 찾아 다니며 한문
공부를 했어요. 논어, 맹자 공부하면서 내가 좌우명으로 삼은 게 '심청의립(心淸義立)'이여. 마음이 맑으면 의로움이 정립된다는 거지. 군대 갈 나이가 됐는데 사병은 안되겠다 싶어 독립운동 하셨던 친척 어른을 찾아가 사관학교 보내달라 했지. 그 어른 말씀이 "문관으로 출세하라"며 국학자 위당 정인보 선생 문하에 넣어줄 테니 그 전에 공부 좀 더하라는 거야. 그렇게 외지 나가 공부하는데 6ㆍ25가 터졌어. 고향 가서 한다고 병적 신고를 미루다 기피자 단속에 걸려버려 지서에 끌려갔지.

-고초를 좀 겪으셨겠네요.

한학 공부한 덕을 좀 봤지.
어디서 그 얘길 들었는지 지서장 특별대우 받고 훈련소 가서도 심사관이 <논어>를 줄줄 암송하는 걸 듣더니 이력서에 '성균관대 유교학과 3학년 중퇴' 이렇게 써주더라고. HID 첩보대에 배치 받고 3년 6개월간 정보 분석만 하다 제대했어. 그때도 아기똥 만한 정의감 같은 게 있었나 봐. 상사 권유로 교회에 갔는데 매미채(헌금주머니)가 왔다 갔다 하며 돈을 넣으래. 이게 무슨 순수한 거냐고 따지곤 그 뒤로 안 갔지.

-공무원 생활 시작이 좀 늦은 편인데요.

제대 후 보통고시 준비하다 59년 제1회 상급(주사)지방공무원 시험에 합격하고 고향인 청양군 읍사무소에서 첫 발을 뗐지.
이듬해 2월 말 군청 행정계에 배치됐는데 투표용지가 잔뜩 든 투표함을 다락방에 넣어놨더라고. 그게 바로 3ㆍ15 부정선거였어. 개표집계를 하는데 합계가 120%야. 이승만 찍은 표를 마구 넣은 거여. 내무부에 보고하니 이승만 95%, 누구 몇 표, 이렇게 불러줘. 법원서 검표 나오면 어쩌냐니까 "새까만 쫄병이…시키는 대로 해" 그래. 이러다 나라가 망하겠다, 딱 그 생각이 들더라고. 그 후로도 4ㆍ19혁명 나고 치른 7ㆍ29 선거 빼고는 죄다 관권ㆍ금권선거였으니, 절대 정권교체가 될 수 없는 거지. 5ㆍ16 이후엔 조폐공사에서 트럭으로 돈을 싣고 날라다 마구 뿌리기도 했어.


-도지사 청탁 거절했다가 잘린 일도 있다면서요.

72년 충남도청 치수과 이수계장 할 때여.
그땐 천지가 부정이었지. 하천 공사를 입찰로 발주했더니, 도지사가 자기 동창 안 챙겨줬다고 모가지를 자르더라고.
행정소송 내서 이기고 다음해 복직했는데, 후임 도지사가 "저 놈, 촌으로 내쫓으라"고 했다네.

-그 일로 미운 털 박혀 승진도 늦어지신 거죠?


그런 셈이여.
89년 1월 공직생활 30년 만에, 동기들보다 10년 늦게 서기관 달고 군수로 나갔지. 당시 도지사 장인상에 문상 갔다가 묏자리 싸움 난 걸 풍수학적으로 설명하며 해결해 준 일이 있는데, 그게 고마웠던지 청양군수로 보내주더라고. 향약운동 펼친 거 좋은 평가도 받고 고향서 계속 일하다 정년을 맞고 싶었는데, 91년 초 새 도지사가 상의도 없이 연기군수로 발령을 냈어. 고교 동기인 청와대 수석 출신 임재길이 3ㆍ24 총선 나가는데 "일 잘하고 똑똑한 군수를 보내 달라"고 하더래. 이게 알아서, 잘 해달라는 얘기지. 선거가 다 군수 하기에 달렸던 시절이었거든. 지방단체장 선거를 자꾸 미룬 것도 총선, 대선에 지방공무원들 동원하기 어려워지니까 그런 거잖여.

한준수 前 군수는 청양군수 시절부터 '목민일기'란 제목을 붙여 매일매일 써온 근무일지에 92년 총선을 앞두고 벌어진 관권개입의 실태를 날짜, 시각까지 밝혀 기록해뒀다.

2월 16일. 도 기획실장, 전화로 총선 위해 도지사 포괄사업비를 풀 테니 군수포괄사업비도 풀어 선심사업도 펴고 관변단체도 지원해서 활용하라고 통보.
2월 19일. 신임 이종국 지사, "당신, 주위에서 바꾸라는 등 말이 많다"고 분위기를 잡은 뒤 "이번 선거에서 직을 걸고 여당후보 당선시키라"고 지시.
2월 28일. 선심사업용 내부무특별교부금 7억원 배정돼 민자당과 협의해 사업 선정.
3월 4일. 이 지사, 조치원읍내 여관으로 불러 500만원(수표) 건넴.
3월 15일. 이 지사, 지사실에서 수표 1,000만원 주며 "현금으로 바꿔 쓰라" 당부.
3월 18일. 도 내무국장, 한 가게에서 "지사님이 주셨다"며 현금 500만원 건넴.

한 전 군수는 쓰지 않고 보관해뒀던 수표 일부를 양심선언 당시 여당 후보 지원을 위한 읍ㆍ면ㆍ리 단위별 공무원 배치표, ○(여당 지지) △(부동표) 붉은 형광펜 줄(반대)로 성향을 분류해놓은 새마을지도자 명부, '지역안정대책협의회 명단'으로 위장한 야당 성향 주민들 리스트 등 각종 문서와 함께 증거물로 공개했다.

-당시 돈이나 부정 지시를 거부할 수 있는 분위기는 아니었나요?

아니었어. 그러면서 참 괴로웠지.
상부의 압력과 지시 때문에, 또 낙후한 지역 발전을 위해 어쩔 수 없다고 자위했는데, 한겨레신문 등에 "군수가 여당 후보 지지"라는 기사가 나오니 양심의 가책을 견디기 힘들더라고. 임재길이 당선되면 그 다음날로 사표 내자고 마음 먹고, 집사람한테도 그리 알라고 했어요. 그런데 개표해보니 졌어. 1만표 차, 야당이 이긴 거여.

-당연히 문책이 뒤따랐겠네요.

도청에서 군수회의가 있어 갔는데,
이 지사가 인사도 하기 전에 "졌는데 그만둬야지" 그러는 거여. 총선 졌는데 대선을 어떻게 맡기냐는 거지. 아니, 군수직 하고 국회의원 선거 하고 무슨 상관이 있냐, 이런 본심이 확 일어나서 버텼지. 감사에 경찰 수사까지 동원됐지만 아무 것도 안 나왔어. 도지사가 "나도 어쩔 수 없으니 그만둬 달라"고 사정하는 걸 또 거부했더니, 7월 4일자로 군수직 박탈하고 공로
연수 발령을 내더라고.


-퇴임 압박을 받지 않았다면 양심선언을 안 하셨을까요?


그때 나 말고도 결딴난 공무원들이 한 둘이 아니었어.
전국에서 여당 후보가 떨어진 지역 군수 30여명이 잘렸다고 하더라고. 나 하나 잘렸다고 그 생각한 건 아니었어.


-그래도 양심선언이란 게 보통 일이 아닌데….

그 일 당하고 공직생활을 돌아봤어.
선거 때마다 공무원들 부정선거에 동원되는 거 보면서 딱 그만두고 싶다, 하면서도…. 그렇게 오래 마음 속에 쌓여있던 게 툭 나온 거여, 그게 양심이지. 이거 꼭 밝혀야겠다 결심하고, 가족회의를 했어요. 1남4녀 맏이인 아들(한상혁
변호사)은 잘 생각하셨다는데, 집사람은 절대 반대야. 세상이 다 그런데, 그거 밝혔다가 무슨 일을 당하려고 그러냐는 거야. 이부영 의원 비서로 들어간 아들 상혁이 고려대 동창을 통해 민주당에 타진했더니박계동 의원 7월 23일에 날 만나러 왔어. 그 양반 말이, 장한 결심 하셨는데 잘못하면 죽을 수도 있고 애들 앞길도 망칠 수 있으니 한번 더 생각해시고 그래도 해야겠거든 연락하래. 2차 가족회의를 열었지. 그땐 집사람도 승낙하고, 대학 다니던 첫째 딸, 둘째 딸도 다들 하라는 거여. 27일 박계동 의원한테 전화하니 모시러 오겠대. 국회의사당 박 의원 사무실에서 한달 간 먹고 자면서 양심선언을 준비했어.

-양심선언 하고 바로 아드님 결혼식이 있었죠?


그 놈이 학생운동 하다
대학 입학 6개월 만에 잘렸어. 제적됐다 복학하기를 세 번, 그렇게 어렵게 졸업해 장가 가는데 일이 터지고 만 거지. 9월 5일 식 끝나고 애들 신혼여행 보내려는데 검찰에서 사람이 소환장을 가져왔더라고. 인륜지대사도 모르는 네 놈들이 무슨 검사냐며 호통 쳐 쫓아버렸지. 그날 대전역에서 관권부정선거 규탄대회가 열렸는데 당시 민주당 대표였던 김대중 전 대통령도 오고, 노무현 전 대통령도 와서 연설했어. 소환에 불응하고 마포 민주당사에서 지내는데, 8일 경찰 수백 명이 쳐들어 와 나를 떠메고 나갔지.


-검찰 수사는 결국 축소 수사, 예견된 결론으로 끝났죠?


부정선거 전국에서 다 벌어진 걸 뻔히 알면서 연기군만의 문제로 축소해버리고 나를 주범으로 몰아 기소했지.
그래도 대전지검서 조사 받고 교도소로 갈 때 동행한 검찰수사관은 "군수님, 우리가 해야 할 일인데… 죄송해요" 하더라고. 교도소에도 소문이 퍼져서 재소자들이 소리 지르며 환영해줬고 옆방에서 속옷이랑 별 거 다 넣어줬지. 운동할 때 만나면 "바로 나가실 테니 걱정 마시라"고 격려하는 이들도 많았고, 교도관들도 꼭 군수님, 군수님 하면서 바깥 소식 일러주기도 하고. 사람들은 정의로운 법 같은 모습이었어,그런데 정작 당시 법은 내 편이 아니더라고.


징역형 선고와 파면… 양심선언의 대가는 가혹했다. 1심 결과는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 한 전 군수가 거꾸로 부정선거의 주모자가 돼 이종국, 임재길씨보다 높은 형량을 받았다. 항소심에서 징역 8월에 집유 1년으로 감형된 뒤 95년 대법원에서 확정됐고, 바로 사면복권이 이뤄졌다. 그 후 정년을 사흘 앞두고 파면 당해 반토막 난 연금, 무너진 공직생활 32년의 명예를 되찾고자 끈질긴 법정 투쟁을 벌였지만, 끝내 패소했다. "가장 가슴 아픈 건… 법정 앞에서 경찰에 맞아 갈비뼈가 부러지는 고초를 겪어가며 뒷바라지를 하던 집사람이 사면되던 해 겨울 세상을 떴어." 한준수 전 군수는?기무사 민간인사찰을 폭로한 윤석양 일병의 어머니와 이듬해 재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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