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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 高大-나쁜 일 잠시 잊고-좋은 국보 249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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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53 한준구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 댓글 0건 조회 3,382회 작성일 2013-08-07 0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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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명문 고려대학 민족 고대가 얼굴에 먹칠하는 일이 잦아  망신살이 뻗치고 잇습니다.
 
한국 사람들은 잘 잊어먹는 습관이 있으므로  민족 고대 출신들은 염려를 놓으시길 바랍니다.
 
고려대 의대 여학생 성추행 사건도 이젠 잊어야 합니다.
 
 
막걸리 고대에서 와인 고대로의 변신과정에서의  외화내빈의 일부 극소수 나쁜 결과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시사평론가로서 개인적으로 해보았습니다.
 
 
 
 
이명박 정권 기간동안 고대사 전공의 최광식 고대 교수는?
 
물론 별명이 을지문덕인 데
 
하여튼 그 정권하에서  중앙국립박물관장을 비교적 잘 수행헌 덕에
 
문화재 청장-차관급--그리고 나아가 문화체육부장관도 역임한 바가 있습니다.
 
고소영 이란 별칭의 이명박 정권하에서 핵심 주류인 -영포라인  이상득 라인이 이런저런 일등으로
 
  앞으로 검찰의 수사를 어떻게 피할지도 무척 궁금해지고 
 
4대강의 저주가 서서히 엠비의 목을 죌지도 모릅니다.
 
 
하여튼 정치적인 이야기는 수박 겉핥기로만 여기서 그치고
 
다음 좋은 내용을 읽어보시길 강추합니다.
 
************
 

고려대박물관서 ‘동궐’ 특별전…

동궐도 숨은 비밀

기사입력 2013-02-25 03:00:00 기사수정 2013-05-16 11:32:10
홍문관 마당에 웬 은잔? 후원에 웬 논?
 


국보 제249호 동궐도에 숨은 비밀을 찾아라


26일부터 서울 고려대박물관에서 열리는 특별전 ‘동궐’은 사상 처음으로 함께 전시되는 국보 제249호 ‘동궐도(東闕圖)’ 진본 2점이 백미다. 조선시대 궁궐회화의 최고로 꼽히는 동궐도는 가로세로 578.2×274cm에 이르러 크기부터 보는 이를 압도한다.

▶본보 19일자 A1면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쌍둥이 ‘동궐도’와의 만남

하지만 그 위세에 취하면 동궐도의 섬세한 매력을 놓치기 쉽다. 19세기 초 창경궁과 창덕궁 전경을 담은 그림 속엔 무궁무진한 이야기와 미스터리가 숨어 있다. ‘조선의 집 동궐에 들다’를 쓴 한영우 이화여대 이화학술원 석좌교수와 한국전통조경 전문가인 심우경 고려대 환경생태공학부 교수, 동궐도 화첩본을 소장한 고려대박물관의 도움을 얻어 숨은 비밀을 슬쩍 들춰봤다.

창덕궁… 팔작지붕 모양의 돈화문… 현재의 모습과 왜 다르지?

동궐도 왼쪽의 창덕궁은 궁궐 가운데 임금이 가장 많이 머물던 공간이었다. 경복궁이 법궁(法宮)으로 권위를 누렸으나, 왕실은 창덕궁 생활을 선호했다. 특별한 국가행사는 경복궁에서 치러도, 일상 업무는 창덕궁에서 주로 봤다.

동궐도를 만든 시기의 임금인 순조의 아버지 정조도 창덕궁을 사랑했다. 동궐도 중앙 아래에 있는 중희당(重熙堂)은 원래 동궁이지만 정조가 편전으로 자주 사용했다. 앞마당엔 과학을 중시한 정조의 세계관을 반영하듯 해시계와 측우기, 풍기(풍향계)가 그려져 있다. 동궐도 제작 당시 실권을 쥐고 있던 효명세자의 할아버지에 대한 존경이 느껴진다.

동궐도 왼쪽 아래 옥당(홍문관) 앞마당에 놓인 ‘은배(銀杯)’도 독특한 전시품이다. ㄱ자로 낮은 돌담장을 두르고 2개의 잔을 모셔뒀다. 홍문관은 임금의 교지를 작성하던 기관. 한영우 교수는 “술잔을 마당에 놓은 것부터 돌담장 형태까지 유례가 없는 배치”라며 “19세기 편찬된 것으로 알려진 ‘동국여지비고’에 임금이 홍문관에 은배를 하사했다는 대목이 나오긴 하나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다”고 말했다.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라면 창덕궁 정문 돈화문(敦化門)을 빼놓을 수 없다. 현재 돈화문은 우진각지붕(지붕 옆면이 삼각형)인데 그림엔 팔작지붕(옆면이 ‘八’자 형태)으로 나온다. 화원의 단순 실수로 보기엔 뭔가 이상하다. 강임산 국외소재문화재재단 활용홍보실 팀장은 “돈화문처럼 동궐도는 실제와 맞지 않는 부분이 여럿 있다”고 지적했다.

이런 점 때문에 동궐도가 향후 개조를 염두에 둔 설계도일 수 있다는 얘기도 나오나 어디까지나 해석에 불과하다. 사실 동궐도는 왜 그렸는지가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보안이 엄중한 궁궐을 이렇게 세세히 그린 점도 의문이다.

창경궁… 사도세자 태어난 집복헌-정조 승하한 영춘헌은 어디?

동궐도를 보면 건물 없이 터만 있는 곳이 몇 군데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창경궁 중심에 있는 통명전(通明殿) 터다. 왕비의 침전이었던 통명전은 정조 14년(1790년) 화재로 사라졌다가 순조 33년(1833년) 중건됐다. 동궐도는 그 사이에 제작된 것이다. 통명전은 숙종 때 장희빈이 인현왕후를 저주하려 각시인형과 동물 사체를 파묻었던 곳으로도 유명하다.

통명전 뒤에 있는 자경전(慈慶殿)은 아스라한 아픔이 느껴진다. 정조가 어머니 혜경궁 홍씨를 위해 지은 건물로, 그림만 보면 돌계단으로 단장한 화단에 각종 꽃들이 아름답다. 하지만 고종 때 화재로 불탄 뒤 일본 총독부가 일본식 건물인 장서각을 지어 조선 왕조를 농락했다. 장서각은 1980년 철거했고 지금은 솔밭으로 바뀌었다.

통명전 오른쪽에 보이는 ‘ㅁ’자로 생긴 집복헌(集福軒)도 시대의 애환이 서려 있다. 아버지 영조에게 폐위당한 사도세자가 태어난 곳이기 때문이다. 영조는 첫아들이 9세 때 요절한 뒤 41세의 늦은 나이에 사도세자를 얻었으니 얼마나 기쁨이 컸을까. 하나 30년도 안 돼 그 귀한 아들의 목숨을 자기 손으로 뺏는 참화가 벌어졌다.

집복헌 바로 오른쪽 아래에는 눈에 잘 띄지도 않는 영춘헌(迎春軒)이 있다. 일반 사대부 거처보다 작으나 정조가 독서실 겸 집무실로 애용하던 곳. 정조는 이곳에서 승하했다. 한 교수는 “투박한 무명베를 입고 하루 식사도 단출하게 2번만 한 정조의 성향을 엿볼 수 있다”고 말했다.

왕궁 내 유일한 초가지붕… 청의정에 담긴 왕실의 마음은?

요즘은 후원이라 하면 창덕궁 비원(秘苑)을 떠올리지만 이는 잘못된 개념이다. 비원 자체도 일제가 지은 이름일뿐더러 원래 창덕궁과 창경궁 후원은 담장도 구분도 없었다. 왼쪽 대보단부터 오른쪽 춘당지까지 두 궁 뒤편 전체가 북한산과 어우러진 후원이었다.

후원은 아름답지만 결코 화려하지 않다. 심우경 교수는 “당대의 기술과 문화가 집약됐지만 최대한 인공미를 배제하고 소탈한 멋을 추구했다”고 설명했다. 임금이 마음을 쏟았던 후원에는 자연과의 조화, 백성에 대한 사랑이 가득했다는 뜻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동궐도 오른쪽 상단에 있는 내농포(內農圃). 궁궐 내에 11개의 논이 조성돼 있는데 왕이 직접 농사를 체험하기 위해 만들었다. 전시용으로 생색만 낸 게 아니라 위에는 물 대는 저수지, 아래는 작황을 관찰하는 관풍각도 있다. 일제강점기에 춘당지라는 연못으로 변질됐지만 농업을 나라의 근본으로 여겼던 왕실의 마음이 담겨 있다.

왕궁 내에 있는 유일한 초가지붕인 청의정(淸의亭)도 같은 맥락이다. 옥류천 주변에 있는 청의정은 인공으로 만든 논과 함께 소박한 농촌 풍경을 그대로 재현했다. 휴식처에서조차 백성의 고초를 잊지 않으려는 의도다.

왼쪽 상단 대보단(大報壇)은 동궐도에서 가장 의미심장한 장소다. 대보단은 임진왜란 때 원병을 보낸 명나라 신종을 기리는 제단. 하지만 그림 속 대보단은 실물보다 훨씬 크게 그려졌다. 당시는 이미 청나라가 패권을 잡고 있던 시절. 신경숙 한성대 교수는 “명과의 의리를 내세워 변치 않는 군신 간의 충성을 강조하려는 왕실의 속내가 숨어 있다”고 해석했다.

동궐도 가운데 상단 백운사(白雲舍) 앞 절벽 바위엔 ‘예필(睿筆·왕세자가 쓴 글씨)’이란 설명과 함께 ‘명월송간조 청천석상류(明月松間照 淸泉石上流·밝은 달은 소나무 사이로 비치고 맑은 샘은 바위 위에서 흐르네)’라는 시구가 적혀 있다. 동궐도를 제작하던 시절에 효명세자가 쓴 글일 가능성이 크다. 호연지기를 뽐내던 세자의 기상이 오롯하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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