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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病주고 藥준-브루스 커밍스의 6.25전쟁!및 정충신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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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53 한준구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 댓글 0건 조회 1,672회 작성일 2013-07-07 1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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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병태 칼럼/6월 25일]
 
 
 
 
@@제목: 브루스 커밍스의 6· 25
 
 
 
 
 
 
 
 
'남침 유도' 등 친북 수정주의 역사관 스스로 부정

 
 
전쟁의 기원과 책임의 폭 넓은 탐구는 평가할 만

  • 강병태 주필
 
 
입력시간 : 2013.0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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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역사학자 브루스 커밍스(70)는
 
 
 
교수 브루스 커밍스교수 브루스 커밍스프로필 더보기
브루스 커밍스 (Bruce Cumings) 교수
출생
1943년 9월 5일 (미국)
소속
시카고대학교 (석좌교수)
학력
컬럼비아대학교 대학원 정치학 박사
경력
미국 시카고대학교 사학과 석좌교수
미국 노스웨스턴대학교 정치학과 교수
미국 시카고대학교 교수
미국 워싱턴대학교 교수
 
 
 
6· 25 전쟁에 관한 수정주의 역사관을 대표하는 진보 학자로 꼽힌다.
시카고 대 석좌교수인 그는
1981년과 1990년 발간한 <한국전쟁의 기원> 1· 2권에서
6· 25가 미국의 '남침 유인(誘引)'에 따라
일어났다는 수정주의 사관을 피력한 것으로 널리 알려졌다.
이를 통해 6· 25 연구와 인식에 좋든 나쁘든 큰 영향을 주었다.

그 영향력은
1980년대 우리 사회에 진보주의가 본격 대두한 것과 맞물렸다.
6· 25가 김일성의 적화 야욕에서 비롯됐다는 반공주의 시각을 벗어나려는 이들에게,
나름대로 깊이 있는 미국 학자의 연구는 학문적으로 기댈 값진 자원이었다.
커밍스는 <한국전쟁의 기원>으로
미 역사학회의 존 페어뱅크상 등을 받았다.
그는 흔히 '친북'으로 매도되지만,
여전히 6· 25 연구에 자주 인용된다.
 
 
6· 25 전쟁 63주년을 맞아 커밍스가 언론에 등장한 것은 언뜻 예사롭게 볼 수 있다.
그러나 그제 서울신문 인터뷰에서
"한국전쟁은 남침이며, 나는 남침 유도설을 말한 적이 없다"
고 밝힌 것은 흥미롭다.
그는
"나는 수정주의자도 아니며,
북침 주장설은 전두환 정권이 조작한 것"
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커밍스는
"남한을 방어선에서 제외한 애치슨 국무장관의 모호한 전략 때문에
김일성이 어리석게 전쟁을 일으켰다"
고 전쟁의 직접적 발단을 규정했다.
또 "애치슨이 전쟁을 유도하는 음모를 꾸민 것은 아니다"
고 남침 유도설도 부정했다.
서울신문은
1990년대 옛 소련 기밀문서 공개로
북한의 '선제적 남침'을 부정할 수 없게 되면서
남침 유도설도 위축됐고,
커밍스도 결국 이를 공식 부인한 셈이라고 평가했다.

이 인터뷰는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
다만 커밍스의 과거 주장과 관련해 모호한 부분이 있어 미 학계의 객관적 분석을 살펴 볼 필요가 있다.
플로리다캐스린 위더스교수는
1993년 논문에서
커밍스의 주장을 이렇게 요약했다.
"커밍스
6월25일 군사행동을 시작한 쪽이 어딘지 단정하지 않았다.
한국의 도발적 공격에 북한이 대응했을 가능성도 있다고 보았다.
또 소련의 영향력이 약소해 북한이 독자적으로 행동했을 수 있으며,
미국의 개입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해
소련이 침략을 승인했다는 주장은 넌센스라고 주장했다."

이에 따르면,
커밍스는 전쟁의 직접 발단에 대해 독자적 견해를 내놓지 않았다.
다만 <한국전쟁의 기원> 등에서
6· 25 전쟁 이전 남북이 옹진반도 등지에서 국지 전투를 되풀이한 사실을 강조했다.
이런 모호한 입장은 소련 기밀문서가 공개되기 전에
주로 미국과 한국 자료에 의존한 결과로 볼 수 있다.
북한과 소련의 실제 움직임에는 무지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소련 붕괴 뒤 공개된 기밀문서
스탈린
남침 계획을 승인한 경위와 준비과정을 구체적으로 밝히고 있다.
소련 군사고문단이
1950년 5월초
'선제공격작전계획'을 작성,
인민군총참모부와 함께 6월25일을 D데이로 잡은 사실까지
명확히 드러났다.
결국 커밍스의 학자로서의 과오는
부족한 근거를 토대로
진보적 견해를 피력, 의도가 어쨌든 북한과 소련 쪽에 기운 것이다.

물론 커밍스의 학문적 기여는 그 것대로 평가할 가치가 있다.
그는 <한국전쟁의 기원> 서문에서
"한국전쟁의 원인은
주로 1945년에서 1950년 사이 사건에서 찾아야 하며,
그 다음으로 식민통치 기간과
2차 대전 뒤 외부세력이 한국에 남긴 자취에서 검토되어야 한다"
고 썼다.
다른 책에서는
"김일성이 일으킨 한국전쟁은
1950년 6월25일 이전에 시작됐다"고 말했다.
그처럼 전쟁의 기원을 폭 넓게 탐구하고,
모든 당사자에게 전쟁 책임이 있다고 본 것은 교훈으로 삼을 만하다.
한반도와 우리 사회의 평화에 도움 될 것이다
 
******
 
 
[오피니언] 뉴스와 시각 게재 일자 : 2013년 06월 25일(火)
 
 
 
歷史   날조·왜곡의 6·25
정충신/논설위원

하나원에서 한국 사회 정착 교육을 받는 탈북자들이 가장 큰 충격을 받는 순간이 바로 역사 수업 시간이다. ‘북한 김일성이 정당한 이유없이 기습 공격을 감행하면서 6·25전쟁이 촉발됐다’는 사실을 접한 탈북자들은 북한 역사의 근본이 날조(捏造)됐다는 사실을 거부하고 화를 내기까지 한다. 러시아·중국 정부 비밀해제 문서들을 보기 전까지 그들을 지배해온 남한의 북침(北侵)설을 쉽게 수정하지 않는다.

북한 정치범 감옥인 14호 수용소에서 탈출한 신동혁 씨의 이야기를 다룬 ‘14호 수용소’(아산정책연구원 간) 저자인 미국 언론인 블레인 하든은 “이는 미국이 도쿄 항구를 기습공격한 후 태평양에서 2차 세계대전이 촉발됐다고 누군가가 이야기했을 때 미국인들이 보일 반응에 상응한다”고 설명한다. 목숨 걸고 탈출한 그들조차 남침(南侵)의 진실을 쉽게 인정 못하는 건, 역사 의식이 정체성과 관련되기 때문이다.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3대 세습 독재를 유지해온 비결은, 주민들의 대남(對南) 대미(對美) 적개심이다. 적개심의 출발점은 날조된 북침설이다. ‘모든 가난과 고통의 원인은, 북침을 했고 아직도 북침을 획책하는 미국과 한국에 있다’고 세뇌시키고 있다. 북한이 중국식의 개혁·개방을 망설이는 것은 외부 정보 유입으로 역사적 진실이 드러날 경우 정권 기반이 한순간에 무너지기 때문이다.

북한이 역사를 날조한 데 비해 우리 역사는 빈사 상태다. 기형적 교육제도와 종북(從北) 교사, 선동적이고 균형감각을 잃은 사이비 역사학자 등 삼두마차가 광란의 질주를 하며 근현대사를 무참하게 난도질하고 있다. 지난해 한국교총 설문조사에서 청소년 23.7%가 북한이 아닌 남한·미국 등이 6·25전쟁을 일으켰다고 대답했다고 한다. 최근 안전행정부 설문조사에서 성인 35.8%, 청소년 52.7%가 ‘6·25가 몇년에 발생했는지 모른다’고 답했다는 설문조사도 나왔다.

이념 편향 교육으로 중·고교 일부 역사 교사들이 “이승만도 이완용과 같은 매국노”이고 “천안함 사건은 미국의 자작극”이라고 가르치기까지 한다. 극좌파와 종북 세력은 극단적 역사 왜곡(歪曲)으로 역사를 정치 선전물로 전락시키고 있다. 건국 대통령을 친일파로 매도하는 저급한 동영상 ‘백년전쟁’은 대한민국 건국의 정통성을 부정한다. 진보 정치학계 원로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가 “건국 과정을 오늘의 잣대로 재단하는 것은 잘못된 역사 인식”이라고 우려할 정도다.

최근 고교생 69%가 6·25전쟁은 북침이라고 대답했다는 한 설문조사는 김정은에겐 핵실험 성공보다 더 반가운 소식으로, 오판의 빌미를 줄 수 있다. 김정은으로선 이런 추세라면 ‘미사일·핵 없이도 적화통일은 식은 죽 먹기요, 땅 짚고 헤엄치기’라고 생각할는지도 모르겠다.

역사가 날조된 줄도 모른 채 허위 의식의 포로가 된 북한 주민들은 ‘역사 돌연변이’이자 ‘기형아’다. 그에 비해 우리 국민은 역사 왜곡과 교육 실종으로 ‘역사 무뇌아’를 양산하고 ‘역사 불구자’로 전락하고 있다. 안양옥 교총회장의 한국사 수능 필수 과목 지정 요구를 수용해 역사 교육 정상화 계기로 삼아야 한다. 날조되고 왜곡된 역사, 실종된 역사 교육을 회복하는 것이 통일교육의 첫걸음이다. 북한 핵보다 더 무서운 것이 역사 왜곡과 실종 현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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