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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세피난처-탈세천국-수퍼부자 재산 몰수해야-뉴스 타파 김용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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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53 한준구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 댓글 0건 조회 1,377회 작성일 2013-07-03 2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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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탐사보도냐고? 권력은 감추고 기성 언론은 못 밝히니까”

등록 : 2013.07.01 19:29수정 : 2013.07.01 19:29

김용진 대표는 <뉴스타파> 저널리즘의 모토는 ‘비영리와 독립’이라고 했다. 이를 위해 광고를 싣지 않고 시민후원금으로만 운영되고 정파저널리즘을 철저히 배격한다고 밝혔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한겨레가 만난 사람]
김용진 ‘뉴스타파’ 대표

이명박 정부의 폐해 가운데 꼭 빼선 안 될 게 <한국방송>(KBS) 김용진(51) 기자에게서 마이크를 빼앗은 일이다. 그는 2009년 탐사보도팀장에서 팀원으로 좌천된 뒤 바로 지방으로 쫓겨났고, 2010년엔 한국방송의 친정부적 논조를 비판한 언론기고로 정직 4개월의 징계를 받았다.
그는 권력이 감추고 싶어하는, 그러니까 진짜 뉴스를 전하고 싶었다. 2005년 탐사보도팀을 만들어 노무현·이명박 정부의 고위관료 재산 검증 등 권력감시 본분을 다했다. 그가 새 정부 출범 이틀 뒤인 지난 2월27일 사직서를 던졌을 때, 떠오른 것은 방송저널리즘의 미래였다. 안타까웠다. 석 달 뒤 김용진은 조세회피처 탐사보도로 세상과 다시 포옹했다. 김용진 <뉴스타파> 대표를 19일 서울 마포구 뉴스타파 사무실에서 만났다.
인터뷰/ 강성만 기획에디터 sungman@hani.co.kr
-뉴스타파에 ‘한국 탐사저널리즘 센터’라는 이름이 붙었다.
“지난 대선 직전까지 뉴스타파 시즌 1과 2를 마친 뒤 방향성을 놓고 고민했다. (뉴스타파가) 탐사보도를 표방하는 독립매체로 시작했으니 조금 더 선명하게 조직의 틀을 그렇게 가져가자고 결정했다.”
-탐사보도란 뭔가? 왜 굳이 탐사보도여야 하나?
“사전적 정의를 보면, 누군가 감추고자 하는 사회적으로 중요한 이슈를 기자의 독자적 취재로 발굴해서 폭로하고 이를 통해 사회개혁을 추동하는 저널리즘 행위다. 기성 매체의 틀 속에서는 이런 저널리즘 행위를 하기 힘들다. 그래서 이런 장르에만 집중할 수 있는 독자적 언론조직이 필요한 시기가 도달했다고 봤다. 비영리와 독립을 내세웠다. 기존 언론들이 상업 동기에 매몰돼 제 역할을 못하고 있다는 생각에서다. 시민 후원으로만 운영된다.”
-후원회원은 어느 정도인가?
“3만여명이 매달 회비를 납부한다. 보통 만원 정도 낸다. 우리 언론의 문제가 정파성이다. 정파적 영향을 받지 않겠다는 차원에서 비당파를 내세웠다. 기성 언론 행태로는 좀 힘들다. 한국방송 탐사보도팀 만들고 팀장까지 했지만, 정권의 부침에 따라 지속적 운영을 하기 힘들다. <한겨레>도 탐사보도팀 없어졌다. 언론사 운영 방향에 따라 유동적이다.”
-호흡이 긴 탐사보도보다는 현안에 초점을 맞추자는 이견은 없었나?
“비당파, 비정파가 객관주의와 결합한 그런 얘기는 아니다. 객관주의 저널리즘은 (이쪽저쪽 주장을) 균형있게 배치해 그걸로 역할 다한 것으로 끝내는 것이다. 그건 아니다. 현안과 이슈에 대한 논란이 있을 때 어떤 것이 진실인지 불분명할 때, 취재 인력과 자원을 집중해 어느 게 최대한 진실에 가까운지 알고, 움직일 수 있는 증거로 확증해내려 한다. 이걸 수용자들에게 제시하고 판단하게 하는 것이다. 어떤 정파에 유리한지 판단하지 않고, 발견된 증거에 자신의 가치관이 배치되면 그 가치관을 버리겠다는 것이다. 골대를 정해놓고 증거를 찾아가는 정파 저널리즘을 배격한다는 것이다.”
-취재 초점을 어디에 맞추느냐는 문제는 있을 것 같다. 예컨대 여야 대선 주자 검증과 같은.
“유력 대선 후보에 집중하는 것은 상식이다. 지지율 차이가 나는데 똑같이 하는 것은 불공정하다. 상식의 차원이다.”
-조세회피처 보도 파장이 컸다. 기성 매체의 태도에서 아쉬운 대목은?
“한화그룹의 사장이 한화재팬 직원 시절에 개인 명의로 신탁회사를 쿡아일랜드에 세워 하와이 아파트 2채를 샀다. 그걸 구매한 자금이 뭐고, 추가 취재할 부분이 많은 것 같다. 지방대 총장이 조세회피처에 페이퍼컴퍼니를 세웠다. 뒷이야기가 얼마나 많겠나. 제대로 된 후속 보도가 없다. 기획물이 안 나오는 것도 아쉽다.”
정파성 철저히 배격하겠지만
균형보도 하겠다는 것도 아냐
최대한의 ‘진실 입증’이 목표
-탐사저널리즘의 요즘 추세는?
“기성 매체의 탐사보도팀 예산과 인력이 2000년대 들어 급격히 줄었다. 반작용으로 독립적인 탐사보도단체가 나온다. 미국의 비영리 탐사보도매체 네트워크인 ‘아이엔엔’(INN)이 5년 전 설립됐을 때 회원사가 20개였는데, 지금은 70여개다. 큰 언론사에서 탐사보도 전문인력과 예산을 줄이니, 나와서 만든 것이다. 독자나 후원자층도 늘었다. 기성 언론에서 깊이있는 탐사보도나 중요한 뉴스를 보기 힘들어지니 독립 탐사매체 수용자가 늘었다.”
-전체적으로 탐사보도 기능이 축소된 것은 아니란 말인가?
“루퍼트 머독이 <월스트리트 저널> 인수 때 당시 주필이 항의 사표를 냈는데, 캘리포니아 갑부 허버트 샌들러가 주필에게 돈 줄 테니 탐사보도매체를 만들어달라고 제안해 <프로퍼블리카>(온라인 탐사보도매체)가 만들어졌다. 예전에는 아마추어적이었다면, 지금은 기성 매체의 전문인력이 만든다.
탐사보도 전문기자인 전 <르몽드> 편집국장이 5년 전 온라인에 만든 탐사보도매체 <메디아파르>의 유료독자가 7만5000명이다. 사르코지가 로레알 화장품 회사의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사실과 사르코지와 카다피 커넥션 등을 계속 폭로했다. 좌파 성향이라고 비판받았으나 좌파 성향 정권이 들어선 뒤에는 초대 재무장관의 스위스 비밀계좌를 폭로해 사임을 이끌었다. 탐사보도의 전형을 보여줬다.”
-갑부가 후원자라니 우리와는 차이가 난다.
“어떤 면에선 큰손 몇몇보다는 수많은 소액 후원 모델이 바람직하다. 많은 시민이 확고한 지지층 또는 독자층이 돼주기 때문이다. 다만 비영리 독립언론이 더 많이 생겨나기 위해서는 의식 있는 돈 많은 독지가의 지원이 필요하다고 본다. 90년대 이후 벤처나 아이티 붐으로 성장한, 비교적 리버럴한 기업인들이 잠재적 후원자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후원금 모델’의 지속가능성에 회의적인 시각도 있다.
“뉴스타파와 협업한 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ICIJ)의 모기관인 탐사보도 전문매체 시피아이(CPI)는 설립 당시 구멍가게 수준이었으나 지금은 연 예산이 900만달러다. 창립 후 수십년 동안 공익재단과 독지가의 후원만으로 성장해왔다. 메디아파르도 정권의 부정부패를 폭로할 때마다 유료독자가 급증했다. 좋은 기사를 쓰면 돈을 지불하고 보겠다는 독자가 많다는 걸 입증한 것이다. 경기 영향을 받는 광고보다 안정적인 재정 구조일 수 있다.”
-한국방송과 같은 공영인 <비비시>에서는 정치 편향성 논란이 거의 없다.
“케이비에스는 크게 보면 두 가지가 문제다. 권력을 누가 장악하든 정권의 전리품 비슷하게 사장 자리가 취급된다. 수십년 동안 그랬다.”
-수십년?
“노무현 정부 때도 본질적 변화는 없었다. 노 대통령도 (언론고문을 지낸) 서동구 사장 사퇴 파문 뒤 ‘(서 고문 사장 임명을) 의식하지 않고 했는데 하고 나니까 부끄럽게 됐다’고 이야기했다. 한국방송은 또 굉장히 관료적인 사회다. 정점에 수장이 있으면 관료 체제가 줄을 서는 구조다. 이런 것들이 수십년 동안 온존했으니 조직이 굉장히 보수적이다. 자리 지킴 내지는 더 나은 자리로 올라가려는 그런 것들이 조직문화로 팽배해 있다. 저널리즘 조직이라기보다는 관료적 조직이다.”
-비비시도 공룡 조직이라고 비판을 받지 않나?
“비비시도 완전히 독립돼 있다고 보기는 힘들다. 하지만 누가 (사장으로) 오더라도 나름 독립성을 지킬 수 있는 것은 저널리즘 그리고 비비시의 가치를 지켜야겠다는 공통된 기풍이 조직 안에 있어서다. 비비시에서 오보로 사장과 이사회 의장이 동반퇴장하는 최악의 사태가 있었다. 당시 여론조사 해보니 (총리) 블레어보다 비비시를 더 믿는다는 답이 많았다. 독립성을 지킬 수 있는 기반이다. 케이비에스는 결여하고 있다.”
언론장악 않겠다는 박근혜정부
‘문화방송’ 사장 인사 등 보면
MB때와 뭐가 다른가 의구심
-공영방송 탐사보도가 제구실을 하지 못하고 있는 데 대한 아쉬움이 크겠다.
“(케이비에스 탐사보도가) 제대로 된 게 2000년대 중반이다. 제작 자율권이 주어지고 조직이 한때 창의적으로 움직였다. 아이러니는 권력 기반이 취약한 정권에선 비판을 제대로 하고, 제대로 비판해야 할 때는 하지 못한 것이다. 자괴감이 들었다. 그렇다고 공영방송 시스템이 사라져선 안 된다. 기울어진 한국의 여론지형을 그나마 바로잡아줄 유일한 언론기관이 한국방송이다.”
-엠비 시절, 케이비에스가 프로파간다(선동)로서 전두환 시절을 능가하는 솜씨를 발휘했다고 했다.
“전두환 정권을 케이비에스 뉴스에서 찬양하던 정치부 기자 출신이 사장으로 왔다. 엠비의 언론특보였다. (5공 때 배운) 그 솜씨를 발휘했다. 사장 1명의 탓은 아니다. 5, 6공 시절 권력에 맹종하고 정권의 나팔수 노릇을 했던 인사들이 케이비에스 내부에 온존하고 있고, 후배들을 관리하면서 주류를 이루고 있다. 이런 구조가 엠비 시절 그 낯뜨거운 G20 특집 퍼레이드 등 숱한 선전선동 방송을 만들어낸 일차적 원인이다.”
-박근혜 정부는?
“언론장악 의사가 없다는 말이 진정성을 획득하려면 먼저 엠비 때 해직된 언론인들을 원직 복직시켜야 한다. 엠비 언론장악에 항거하다 부당 해고된 사람들이다. 전향적인 기미는 별로 보이지 않는다. <문화방송> 사장 인사 등을 보면 여전히 방송을 장악해 이미지 조작의 도구로 활용할 것이라는 의구심을 지우기 힘들다.”
-사표로 삼고 있는 언론인은?
“국내는 리영희 선생이다. 탁월한 탐사저널리스트였다. ‘남북한 전쟁능력 비교연구’는 논문의 형태이지만, 한국 언론사에서 가장 뛰어난 탐사보도다.
해외는 시모어 허시이다. 베트남전 당시 미군의 밀라이 학살을 폭로해 퓰리처상을 받은, 언론사 교과서에 나오는 전설의 인물이었지만, 2004년 나에겐 갑자기 현실이 돼 나타났다. 미군의 포로 고문 사건을 폭로한 기자가 그라는 사실을 알고 충격을 받았다. 그의 나이, 60대 후반이었다. 40대 초반의 나이에 이미 조로화돼 가던 나에게 큰 자극이 됐다. 지금도 그는 주간지 <뉴요커> 기자로 일하고 있다.”
-현장 기자로서 언론인 조갑제를 높이 평가했다. 언제까지 현역으로 뛰고 싶나?
“조갑제 전 <월간조선> 대표의 박정희 시절 포항석유 발견 조작설을 파헤친 기사나 <사형수 오휘웅 이야기>(한길사) 등은 탁월한 탐사보도다. 여건만 된다면 60이고 70이고 현장을 지키고 싶다.”
-관심이 있는 탐사보도 영역은?
“한국에서 탐사보도가 집중해야 할 부분은 예산감시, 공직감시 부분이다. 끈질긴 취재와 인내가 필요하고, 그 때문에 언론이 등한시해왔다. 개인적으로는 한-미, 한-일 관계 이면을 다룬 비밀 외교문서나 기록들을 추적해 발굴하는 일에 흥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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