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 작업 중 부상을 입고 수술을 받다 병원 측 실수로 B형간염 바이러스에 감염된 소방관이 결국 간암에 걸려 고통받다 명예퇴직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지난 26일 오전 8시 50분쯤 광주광역시 광산구의 한 아파트에서 전직 소방 공무원 안모(56)씨가 자기 집 창문으로 뛰어내렸다. 안씨는 119구급대가 병원으로 옮겼으나 이미 숨진 상태였다. 경찰은 "안씨가 광주남부소방서에서 근무하다 최근 간암 말기 진단을 받은 뒤 지난 3일자로 명예퇴직했으며, 이후 집에서 통원 치료를 받으며 투병해왔다"고 밝혔다. 유족과 동료 소방관들은 "안씨가 29년 전 화재 진압 중 부상을 입고 수술받다 B형간염 보균자의 피를 수혈받은 뒤 간염과 간경화로 20년 넘게 고통받아왔다"고 말했다.
안씨에게 불행이 시작된 것은 1984년. 신혼여행에서 돌아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았던 그해 11월 23일 오전 광주 동구 충장로에서 발생한 화재 현장에 투입됐다. 2층 창문으로 진입해 불을 끄던 안씨는 감전돼 쓰러지면서 유리 파편에 오른쪽 대퇴부를 관통당해 신경이 절단되는 부상을 입었다.
급히 병원으로 옮겨져 긴급 수술에 들어갔으나, 병원 측 실수로 B형간염 바이러스에 감염된 사람 피를 수혈받게 됐다고 유족은 말했다.
이 때문에 만성간염을 앓게 된 안씨는 꾸준한 치료에도 불구하고 1990년대 중반 간경화 진단을 받았다. 결국 2011년 5월엔 간암 진단을 받은 뒤 동료들 모르게 치료를 받으며 병마와 싸워왔지만 최근 병세가 악화되면서 더 이상 업무를 수행하기 어려워졌다. 안씨는 이달 초 명예퇴직을 신청했고 30년간 입었던 소방복을 벗었다.
안씨는 투병 중에도 맡은 업무를 성실히 수행해온 모범 소방관이었다고 동료들이 전했다. 안씨는 퇴직하며 동료들에게 남긴 글에서 "직장과 동료들에게 조금이라도 폐를 끼치지 않을 때 떠나기로 했다. 소방 현장에서 부상을 입어 고통 속에 살아가는 소방 공무원들의 비애를 알아주기 바란다"는 뜻을 밝혔다고 한다.
한 동료는 "투병 중에도 주변에 부담을 주지 않으려 신경 쓰는 깔끔한 성격이었다"며 "그의 안타까운 죽음이 재난 현장에서 사투를 벌이는 소방대원들을 한 번 더 생각해보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경찰은 안씨가 처지를 비관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보고 시신을 유족에게 넘기고 수사를 마무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