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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운의 선수' 임동진을 아시나요? (77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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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홈운영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 댓글 0건 조회 3,718회 작성일 2003-05-02 0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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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동진.' 그를 기억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세월의 두꺼운 먼지와 함께 존재의 윤곽이 흐릿해진 지 2년째. 그가 다시 글러브를 챙겨서 서울에 나타났다. 마치 과거를 보러 한양에 온 수험생처럼 달랑 가방 하나에 투수 글러브와 야구공 몇 개를 찔러넣고서. 잊혔던 임동진(24)이라는 이름이 최근 다시 거론된 것은 지난달 9일이다. 대학야구 선수권대회에서 성균관대 강관식이 대학야구에서 노히트노런을 기록했을 때 그의 이름이 신문지상에 한 줄 걸쳐 갔다. 임동진은 2000년 4월 7일 원광대 재학 시절 대학야구 춘계리그 인하대와의 경기에서 노히트노런을 작성했다. 장래가 유망해 기대를 모았으나 프로의 문을 두드리면서 인생은 꼬였다. 기아와의 계약에 실패하고 프로가 아닌 실업리그에서 야구를 해야만 했다.그렇게 1년반이 지나버린 4월. 따뜻한 봄 햇살이 한 줄기 뻗어왔다. 드디어 프로 세계에 발을 들여놓을 수 있는 좁은 문이 그에게 살짝 틈을 열어줬다. ●잔인한 4월은 끝났다 5월을 이틀 앞둔 지난달 29일. 대전에서 홀로 훈련을 하던 임동진은 깜짝 놀랄 만한 전화 한 통을 받았다. SK 구단에서 걸려온 전화였다. 영입에 관심이 있으니 30일 입단 테스트를 받으러 오라는 것. 1년반 동안 참고 기다려온 희소식을 직접 들은 임동진은 그날로 SK 입단 테스트를 받기 위해 부랴부랴 짐을 꾸려 문학구장으로 향했다. 1년반 동안 가슴속에서 떠나지 않았던 아쉬움이 4월의 마지막 날 가슴 설레는 희망으로 바뀔 줄이야. ●첫번째 꼬임 주목받던 아마추어의 인생이 꼬인 것은 2001년 겨울. 당시 해태로부터 고교 우선 지명을 받았던 그는 원광대 졸업을 앞두고 기아와 입단 협상을 벌였다. 그러나 일은 순조롭게 흐르지 못했다. 원광대와 기아 측이 불편한 관계인 데다 기아가 제시한 계약금이 그의 예상에 절반도 못 미치는 5000만원이었기 때문. 동기생 이현곤 박용택 서승화 등이 수억원을 계약금으로 받고 입단하는 것을 지켜보면서 5000만원은 그의 자존심이 허락지 않았다. 더욱이 기아 김성한 감독이 협상하는 자리에 직접 모습을 나타냈을 정도였으니 스스로 자신의 성적과 가능성이 뒤떨어지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기아는 승강이가 계속되도 계약서에 사인할 것으로 기대했으나 그는 "계약을 못하겠다"며 끝까지 펜을 잡지 않았다. ●두번째 꼬임 프로 입단이 좌절된 후 그는 대만으로 방향을 돌렸다. 기아와 불협화음이 빚어질 즈음 그를 아마추어 때부터 지켜본 대만 스카우트로부터 입단 제의가 들어왔다. 조건도 괜찮았다. 그러나 한번 어긋난 인생의 씨실과 날실은 계속 엉클어졌다. 언론사에 대만 진출이라는 보도자료를 냈으나 실제로는 중간 협상 과정에서 일이 틀어져 대만행은 없던 일로 됐다. 두번째로 불어닥친 파도였다. ●실업자의 열정 가슴속의 야구에 대한 열정은 지금도 뜨거운데 석달 동안 맛본 좌절은 소름이 끼치도록 차가웠다. 그를 받아준 것은 아마추어였다. 오갈 데 없는 신세가 된 그를 안타깝게 여긴 박병준 감독(당시 영흥고 감독)이 실업팀인 제일유리를 소개했다. 야구를 할 수 있다면, 그래서 프로 무대를 다시 꿈꿀 수 있다면 못할 것도 없었다. 실업 야구는 실력을 향상시키는 데는 별 도움이 안됐지만 정신적으로 큰 용기가 됐다. 그의 재능을 눈여겨본 관계자들은 "밑바닥 팀에 너 같은 선수가 와서 고맙다. 기다리다보면 좋은 소식이 올 것이다"라며 희망을 불어넣었다. 실업팀 소속 선수들은 다른 일에 종사하면서 야구를 하는 이가 거의 대부분. 임동진은 야구만 하는 유일한 선수였다. 당연히 정식으로 지급되는 월급도 없었지만 돈을 보고 실업팀에 간 것은 아니었다. ●나에게도 기회를 방황은 깊었다. 프로야구 중계도 일부러 보지 않았고 프로에 입단한 친한 친구들과도 연락을 끊었다. 캄캄한 앞날에 대한 걱정으로 새벽 3~4시까지 뒤척였다. 기독교인인 임동진은 아마추어 시절 항상 잠자리에 들기 전에 마인드 컨트롤을 위해 항상 좋은 생각만 하고 잤지만 옛날 일이었다. 용돈을 벌기 위해 경호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배짱 있게 "계약을 못하겠다"고 버텼던 1년 전을 상기하며 조금씩 시간의 무게에 눌려 약해지는 마음을 추슬렀다. ●그에게도 햇살이 실업팀에서 뛰는 동안에도 계속 기아 측과 삐걱거렸다. 지명해제 문제 때문이었다. 임동진은 어차피 기아가 다시 자신을 잡을 의지가 없다면 다른 팀에서라도 뛸 수 있게 지명을 풀어달라고 부탁했다. 시즌이 끝난 11월까지 매달렸으나 기아는 묵묵부답이었다. 실업자로 남아 있는 사이 실력이 줄어들까 걱정됐던 그는 지난해 겨울 대전 모교에서 홀로 훈련을 시작했다. 그러던 지난 3월. 제비가 희소식을 물고 왔다. 기아가 1년반 만에 지명을 풀었다. 비로소 그는 자유인이 됐다. ●좁은 문은 열렸다 임동진의 꿈은 최고의 선발 투수도, 마무리 투수도 아닌 최고의 중간 투수다. 아마추어 때부터 두산 차명주를 존경했던 그의 목표는 차명주보다 더 많은 경기에 출장하는 것. 특이하게 쉬는 날에도 계속 등판해 피칭을 해야 성에 찬다. 30일 문학구장으로 가는 길에 만난 그의 얼굴은 밝았다. 임동진은 "포크볼을 배웠는데 프로에 가서 던지려고 아껴놓았다"며 마치 소풍 전날의 아이처럼 설레는 표정이었다. 눈초리를 살짝 내리며 웃는 그의 미소에 비가 걷힌 화창한 봄 햇살이 살짝 번졌다. 심은정기자 fearless@ (스포츠서울에서 퍼온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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