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봉 총동창회 홍보 수석부회장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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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41 진만석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 댓글 0건 조회 2,539회 작성일 2007-03-19 12:43본문
박종봉 동문은 그 덩치가 크거나 위풍당당하지는 않다. 그러나 그 생각함이나 행동의 폭은 막힘이 없다. 특히 그 친교 범위의 넓음은 우리 동문을 넘어 대전 지역사회에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무슨 고상한 언사로 점잖을 빼는 것이 아니라, 거침없이 뱉어내는 친화력 있는 말로 다가서는 타입이다. 혹 그런 언행이 버릇없음으로 비쳐질 수 있으나 그것이 그의 장점일 수도 있다.
내 개인적인 이야기를 끌어들이는 것은 좀 거시기 하지만, 얼마 전 아는 사람이 친상을 당해 문상차 을지병원 장례식장에 갔었다. 그 사람은 성남동 살 때부터 잘 알고 지내던 내 종씨였다. 그 자리에서 그의 사촌 여동생을 정말로 오랜만에 만났다. 그녀는 나 보다 다섯 살 아래인 데 자기 신랑? 인 45회 안수일님을 나에게 인사 시켰다. 내가 젊었을 때 그녀가 병원 집 아들과 혼인한다는 말은 들었어도 만나본 바는 없었다. 안수일님은 내가 41회라고 말하자 대뜸 ‘박종봉’을 말하고 그 다음에 우리 총동창회회장인 ‘김각영’님을 댔다. 그의 친교 범위 넓음을 익히 알고는 있었지만, 안수일 후배님의 뇌리 속에는 우리 41회의 대표주자가 바로 박종봉님이었던 것이다.
지난 3월 18일은 우리 41회 김진혁님의 자혼이 있었던 날이었다. 예식이 끝난 후 우리들 몇몇은 떼를 지어 갈마동에서 ‘샘부동산’을 하는 민석홍님의 사무실로 갔었다. 이런 저런 이야기 중에 내가 41회 홈피에 올린 글 ‘號’ 에 대한 말이 나왔다. 그때 박종봉님은 자신의 호가 ‘毅堂’ 이라고 했다. 그는 원래 고향이 공주군 儀堂面이다. 그래서 그 음이 같지만 뜻이 다른 ‘毅堂’이라는 호를 지었다는 것이다. 과연 그에게 딱 들어맞는 ‘號’이다.
그는 얼마 전에 큰 수술을 했다. 위험한 수술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타고난 그 강인함으로 병마를 꿋꿋하고 이겨내고 있다. 과연 당당하고 굳셈(毅)을 보여 주고 있는 중이다. 그런 후 그는 술, 담배를 끊고 종교에 귀의하였다. 우리 동문 ‘조성운님’(대흥동 소재 조성운 내과 원장)의 인도로 장로 계통인 '세광 교회‘에도 나간다. 욕 잘하며 아직도 담배를 끊지 못하고 있는 나를 그 교회에 인도하겠다는 그의 강한 권유가 있었지만 아직은 망설이고 있음을 부언한다.
그는 대전 사범 부속국민학교 출신이다. 그야말로 대전 사회에서는 귀족학교 출신이다. 내가 옛날 화장장이 가까이 있는 변두리 중의 변두리 대전홍도국민학교 출신이라는 것에 비하면 그는 나보다 한 수 위이다. 그와의 인연은 우리가 대전 중학교 입학시점부터 지금까지이니 근 50 여 년간이다. 비록 내가 그보다 신체적인 나이는 세 살 정도 많으나 모든 면에서 족탈불급이다.
그는 요즘 금년 4월 25일에 실시되는 대전 서구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관심이 많다. 심대평 선배님의 당선을 위해 어떻게 힘을 모을까 고심하고 있다. 더구나 옛날 심선배의 캠프에 있던 모 후배가 한나라당 이재선 캠프 쪽으로 간 것에 대하여 매우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다. 우리 동문들의 결집된 힘으로 지난 지방선거에서 박성효 후배님이 대전 시장에 멋지게 당선 된 것처럼 저력을 발휘해 줄 것을 바라마지 않고 있다.
다른 이야기이지만 그날 우리 41기 몇몇이서 만든 아주 작은 술자리 모임에서 후배들의 면학 정진에 대한 이야기도 나왔다. 2007년 입시에서 서울대에 8명씩? 이나 합격한 내용이었다. 새롭게 조성된 대전의 신시가지 둔산에 소재한 충남고와 비교해 결코 손색이 없는, 대등한 합격생을 배출시킨 것에 대한 것이었다. 우리 모교가 처한 교육환경의 불리함에도 불구하고 그만한 합격자를 배출할 수 있었던 것에 대해 우리 모두는 명문 대고로서의 자부심에 환호작약하였다. 총동창회 수석부회장인 송성헌님의 말에 의하면 작년에는 서울소재 대학에 10여 명 정도 진출하였었는데, 금년에는 70여 명을 진출시켰다고 전하면서 ‘지금까지 우리 동문들이 벌인 장학사업의 결과가 서서히 드러난 것이다’ 라고 하였다. 앞으로 거기에 만족하지 않고 14명을 합격시킨 대성고를 제치는 것은 말할 것도 없이 전국적으로도 명문 대고로서의 명성을 이어가길 바랐다.
아무튼 우리 박종봉 동문의 건투를 빈다. 그가 65세가 되면 동기들에게 한 턱을 쏜다고 하였으니 그때까지 기다려 볼 작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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