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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가슴 속에 흐르는눈물까지 닦아 줄 수 있는 진정한 법조인

작성일 07-05-04 1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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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총동창회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조회 6,127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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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형수의 동문탐방 / “그가 대능인이어서 우리는 행복하다”


“타인의 가슴 속에 흐르는 눈물까지

닦아 줄 수 있는 진정한 법조인”


송인준(42회) 재경동창회장, 전 헌법재판관

중국 당서(唐書)의 <문예전(文藝傳)>에 마부작침(磨斧作針)이란 말이 나온다.

스스로를 취선옹(醉仙翁)이라 칭했던 시선(詩仙) 이백(李白)이 어린시절 촉 땅의 성도에서 자랄 때 학문에 매진하기 위해 집을 떠나 상의산(象宜山)에 들어가 공부하고 있었으나, 낭만주의자였던 이백에게는 견디기 힘든 생활이었다. 하루는 학문에 싫증을 느낀 이백이 산 아래로 내려가게 되었는데, 길 가에서 바위에 도끼를 갈고 있는 백발이 성성한 할머니와 마주치게 되었다. 그 이상한 행동의 연유를 묻는 이백에게 할머니는 ‘중도에 그만두지만 않는다면 언젠가는 이 도끼가 바늘이 될 것’이라고 답해주었다.

도끼를 갈아 바늘을 만드는 할머니의 인내심과 노력에 감동을 받은 이백은 발길을 돌려 다시 산으로 향해 학문에 정진했고 훗날 두보(杜甫)와 더불어 중국뿐만이 아니라 동양을 대표하는 시인이 되었다.

어느 분야든 ‘성공’을 인정받는 사람들에게는 겉으로 드러나는 화려함 이면에 치열한 노력과 고통을 이겨낸 인내의 흔적들이 감춰져있기 마련이다. 달을 노래하고 동양의 자연 속에서 자신의 시세계에 취했던 이백이 ‘도끼를 갈라 바늘’을 만들고자 했던 노파의 노력을 실천했던 것처럼 성공한 자들에게는 그만의 처절한 노력과 고통을 극복하는 흔들리지 않는 의지가 동반한다.


끊임없는 노력은 도끼를 바위에 갈아 바늘로 만든다

   오늘 우리가 만날 송인준(42회) 동문이 바로 그런 인물이었다.

2006년 9월 14일 우리나라 제3기 헌법재판소를 마감하며 27년의 검사생활과 6년 헌법재판관으로서의 공직생활을 명예롭게 마무리한 그를 향해 사람들은 ‘성공’이라는 수사를 아끼지 않는다. 하지만 그에게도 남들이 알지 못하는 그만의 시련과 좌절에 대한 치열한 극복의 과정이 녹아있다.

기차통학을 해야 했던 대전고등학교 시절, 달리는 열차 안에서나 길을 걷는 동안에도 책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 한다. 남들이 따뜻한 방에서 공부하고 있는 것을 생각하면 시끄러운 통학열차였지만 공부를 게을리 할 수 없었다 한다. 너무도 배가 고팠던 학창시절, 친구와 함께 역 앞 호떡집에서 먹은 호떡 수를 속였던 것이 지금까지도 가슴에 아련히 남는다는 송인준 동문.

그토록 어렵게 공부한 결과, 서울대학교 법학과에 진학한 그의 대학시절 소망은 기자였단다. 그가 청년시절 가슴에 품은 인간에 대한 숭고한 사랑을 연구하는 ‘한국 휴머니스트회’라는 모임을 주도적으로 만들어 활동하기 시작한 것도 이 무렵이었다. 이 모임은 ‘인간성의 발현과 인간 존중’ 등을 목표로 연구활동과 실천을 지금까지 45년여 전통으로 이어오고 있다. 그가 검찰지휘관으로 있던 서울북부지청, 대전과 창원, 대구지검 등지에서 검찰 최초로 소년소녀 가장돕기에 앞장섰고 장학재단 설립을 주도한 밑바탕엔 이러한 휴머니즘 정신이 깊게 흐르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젊은 청년 송인준 동문이 진지하게 다가갔던 화두, 인간에 대한 원초적 고뇌가 깊어갈수록 자신의 학문이었던 법에 대한 신념이 견고해진다. 드디어 그는 고시공부를 준비하게 된다.

하지만 그 과정에는 또 다른 난관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대학 졸업 무렵, 갑자기 찾아온 폐결핵은 고시 불합격과 기울어진 가세와 함께 인간한계에 대해 통감하게 한다. 치료를 위해 연기군에 있는 대광사 좁은 절방에서 책과 싸워가며 스스로 스트렙토마이신 항생제 주사를 투여하는 1년여 동안 그는 인간이기에 부딪쳐야 하는 극심한 절망과 고독을 만났을 것이다.

그의 詩 <그 어떤 날>을 함께 읽어보자.

더듬이 끊긴 나비 되어

내 안팎 하루 내내 빗줄기 쏟아 내리고

젖은 날개로는 어디에도 날아갈 수 없었다.

사람들은 어디론가 바삐 오가고

눅눅한 지하에 움츠리며 홀로 가슴 앓았다.

그 지독한 어둠 속에서

흰 빛들은 절름대며 모두 사라지고

가파른 바람은 더더욱 나를 깊은 나락으로 떨어뜨렸다.

빌딩숲 어느 솔가지에 허물 벗으며

한 웅큼의 객혈마저 곰팡내로 마취되던 날

나는 미궁 속에서 한줄기 빛을 찾았다.

마침내 그날

가슴에 뚫린 구멍마다 따순 햇살이 다가서더니

어느샌가 동공마다 새살이 돋아나고

내 안의 애벌레들은 나비가 되어

빛을 향해 날개를 펼쳤다


송인준 동문은 그 절박한 상황을 치열한 노력과 도전정신으로 극복했다. 지금 모교에서 밤낮없이 학업에 열중하고 있을 후배들이 주목해야 할 대목이다. 처절하리만큼 극한의 노력은 절망을 희망으로 되돌려 놓는 가장 확실한 대안이기 때문이다. 그는 우리 후배들에게 그런 교훈을 남긴 대능인의 한 사람이다.


인간에 대한 사랑으로 빚은 시인, 송인준

송인준 동문에 대해 우리는 헌법재판관을 기억한다. 하지만 그를 대표하는 또 하나 이름은 바로 詩人이다. 그는 ‘바람 그리고 나무’와 ‘겨울 숲 봄빛통로’, ‘이후’란 제목의 시집 세권을 발간했다.

이미 대전고등학교 재학시절, ‘한모문학’ 동인이었으며 서울대학교 시절에는 대학신문에 시를 투고하여 받은 원고료로 독재시절을 달래는 막걸리를 구하기도 했단다. 학창시절부터 그가 천착했던 ‘인간’에 대한 화두는 인간이기에 맞이할 수밖에 없는 한계를 잔잔하게 전한다. 질병과 고통, 죽음, 불행, 외로움이라는 인간의 본질에 접근하고 그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과 구원을 모색한다. 결국 그 답은 인간에 대한 무한한 사랑과 희망이 아니었을까.

필자는 우리 대능인이 너무도 잘 알고 있는 헌법재판관 송인준을 조명하기보다 인간에 대해 무한한 사랑을 가슴에 품고 있는 시인으로서의 그를 동문들에게 소개하고 싶은 욕심이 더 강했다고 고백한다.

이번 인터뷰를 위해 법무법인 ‘서린(瑞隣)’ 그의 방을 찾았을 때, 법에 대해 문외한인 후배에게 이렇게 설명했다.

“법은 곧 경우이다. 경우에 맞다 혹은 경우에 어긋나다로 표현되는 ‘사리’와 ‘도리’를 말한다. 무지하다 할지라도 양심의 소리에 따르는 평범한 촌로의 말, 누구나 인정할 수 있는 상식과 순리가 바로 법이다”라고.

따라서 “진정한 법조인은 남이 속으로 흘리는 눈물까지 닦아 줄 수 있어야 한다”는 신념으로 33년 법조인으로서의 공직생활을 마쳤다.

그는 권위의 표상인 헌법재판관으로서나 인간과 삶에 대한 깊은 애정으로 일관한 시인으로나 결국은 인간에 대한 깊은 호흡을 가지고 있었다.

1993년에 발간한 그의 첫 시집 <바람 그리고 나무>에서 인간의 본질적 고독과 원초적 비극성을 논의했다. 다음 2001년에 출간한 <겨울숲 봄빛통로>에서는 그 인간 한계에 대한 극복으로 현대인이 돌아가야 할 고향과 생명력을 불어넣어야 할 사랑을 제시한다. 2005년 세 번째 시집 <이후>의 후기에서 그가 이야기한 것처럼 “좀처럼 멎지 않는 된바람에 우리는 사시나무처럼 흔들리며 살았고” “숨 가빴던 쓰디쓴 기억들에 가슴 저리며 저무는 가을 殘光 속을 걸으면서 이제 경건한 시간을 갖는다.”

그가 확신하는 “허무의 잿더미 위에서도 또 하나의 르네상스를 꿈꾸고 가꾸는 질긴 힘”, 그것이 바로 생명에 대한 무한한 사랑과 희망일 것이라 공감한다. 설사 그것이 현대인의 고독 속에서 출발하는 “황량한 거리 한복판에서 숨죽이며 태동하는 우리들의 열망”이라 할지언정 인간에 대한 깊고 따뜻한 시선이 있는 한 우리에게는 꺼지지 않는 희망은 있다.


동문을 위해 내실 있게 일하는 재경동창회를 만들 터

작년 재경동창회장으로 선출된 송인준 회장은 임기동안 재경동창회를 이끌어갈 방향에 대해 이렇게 전한다.

“동창회는 회원들 상호간의 친목과 단합을 통해 대능인으로서의 자긍심을 고취하는 것이 가장 우선하는 가치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들을 사안별로 하나하나 내실있게 추진해 갈 계획입니다.”

그 구체적 사업으로 후배들에 대한 장학사업을 좀 더 현실성있게 확대해 갈 계획이라 한다. 대전지역 타 고교에서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다양한 채널의 장학제도는 대전고등학교를 명문으로 이어가는데 가장 확실한 토대가 될 것이다.

또한 동문들의 고충을 효과적으로 해결하고 사회 각 분야에 있는 인재들을 양성하는 일도 동창회의 존재가치를 높이는 일이라 말하는 송인준 회장의 눈빛에서 대능인으로서의 단호한 긍지와 함께 소명의식을 느낄 수 있었다.

재경동창회는 수재의연금 등 사회에 대한 명문인의 책임과 봉사에도 다각적인 방안을 찾아 실천할 것이며 사안별로 의미를 공유하고 연구할 수 있는 조찬모임이나 골프모임 등 동호회 모임을 활성화할 계획이고 이미 작년부터 실천에 옮기고 있다.

또한 매달 첫 목요일에 개최하는 임원회의를 더욱 확대하여 동창회 정체성에 대한 의미를 전차하는 한편 각 기수별, 회원간의 유기적 관계를 증대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총동창회와 재경동창회의 위상을 정립하는 데에도 관심을 갖고 있다는 송인준 회장은 “동문회원 개인의 발전을 통해 모교와 동창회가 발전한다는 기본에 어긋나지 않도록 내실있는 운영에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인터뷰를 정리했다.


어려운 상황에서 오히려 진가를 평가받았던 동력, ‘일탈’

검사와 헌법재판관이라는 경력이 주는 첫 느낌이 권위라는 것은 어쩌면 너무도 일상적인 일이다. 권위가 인정되어야 마땅한 헌법재판관이라는 이름 외에 앞서 살폈듯이 그는 인간의 근원적 한계에 대해 고뇌하고 그 해답을 찾아가는 과정을 치열하게 모색하는 시인이기도 하다.  그의 시에는 인남순 한국전통문화연구원장이 무용공연의 모티브로 사용될 만큼 삶에 대한 깊은 통찰이 있으며 봄날의 희망과 눈물겨운 생명력을 집중적으로 담아내고 있다.

인터뷰를 위해 그를 만나던 날 밤, 그의 시 “들국화, 봄비” 등이 재즈가수 윤희정 씨에 의해 노래로 만들어져 공연했다. 이 자리에서 송인준 동문은 ‘마이웨이’와 ‘떠나가는 배’ 등을 무대 위에서 직접 노래할 예정이라 했다. 뿐만 아니라 그는 패션쇼 무대에 서기도 했다.

필자의 도식적인 사고 속에서 ‘권위’와 일치하기 어려운 헌법재판관의 패션쇼와 콘서트  무대, 그리고 시인이라는 그만의 일탈이 어쩌면 그를 지켜온 동력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상식과 순리, 그 자체가 바로 법’이라고 믿는 그의 신념처럼 그는 법조인의 한 사람이기 이전에 인간에 대한 열정과 그 사랑을 실천할 수 있는 방법을 끊임없이 찾아다닌 휴머니스트였다. 그가 헙법재판관으로 공직을 마무리하는 동안 어려운 상황일수록 오히려 진정한 평가를 받을 수 있었던 동인이 바로 인간에 대한 열정을 놓지 않았던 휴머니스트로서의 겸허한 자세였음을 알 수 있게 된다.

검사시절 그는 강한 성격으로 곤혹스러운 상황을 경험하곤 했다. 하지만 그는 그 때마다 진실에 대한 믿음으로 비굴하지 않고 담대하게 이를 극복해왔고 대전 법조비리, 조폐공사 파업사태, IMF 특검관련, 각종 조폭사건 등 세간의 관심이 집중되는 사건을 맡아 개인적으로 어려운 상황을 맞기도 했지만 그 때마다 그는 의연하게 대처하여 진정한 평가를 받아 오히려 승진을 거듭하는 등 특이한 경력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1988년 창설된 헌법재판소 제3기를 마무리한 송인준 회장은 헌법재판관 임기동안 1년에 약 1천 2백건 정도의 사건을 처리했으며 대통령 탄핵, 수도이전 및 행정중심복합도시 사건 등 정치적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된 사건을 중용의 입장에 서서 신속하게 처리함으로써 국론의 소모적인 분열을 막아냈고 특히 수도이전 위헌 결정에 가담한 재판관으로 그의 출신 지역인 충청인들로부터 일시에 많은 비판을 받기도 했지만 자신의 신념을 굽히지 않는 올곧은 법조인의 자세를 견지했다.

그와의 인터뷰를 통해 퇴임 직전 시각장애인 안마사 제도의 위헌결정은 시각장애우에 대한 보다 근원적이고 미래지향적인 판단이었음을 알게 된다. 장애우에 대한 기본제도의 틀을 바꿔 시각장애우들로 하여금 직업적 자긍심을 갖고 당당한 직업인으로 다시 서게 하고자 하는 깊은 애정에서 출발하였음을 이해하게 된다. 

결코 짧지않은 세월을 법조인으로서 명예와 사회적 책임에 충실했던 그는 퇴임 후 처음으로 자신에 대한 여유를 허락했다 한다. 5개월 남짓 전국 명산을 찾았던 것이 바로 그의 삶에서 스스로에게 준 첫 번째이자 가장 큰 선물이었을 것이다.

겨울산행을 통해 온갖 이파리를 떨구고 나무의 본질만을 드러낸 채 겨울 찬바람 앞에 의연히 버티고 선 겨울나무, 그 나력(裸力)에 매료되었다고 한다. 그는 말한다. “이제 남은 세월을 권력과 부, 그리고 명예의 잎사귀를 모두 떨구고 위선, 허영, 과장의 치장까지 다 지운 채 죽음 앞에 겨울나무처럼 담대히 서는 나력(裸力, naked Strength)을 키우고 싶다고.

겨울산만이 갖는 깊은 사색과 겨울 자연의 숭고한 희생을 가슴으로 유유했을 그는 겨울 산에서 봄볕의 희망을 온몸으로 확인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누구나 그러하듯이 그의 삶 속에 숨어있는 고난과 고독의 시간들은 그 겨울 산의 허허로움 속에서 봄날의 희망으로 부활한 것이다. 돈 잘 벌고 잘 나가는 변호사가 되기보다는 어려운 사람과 함께 있고 남몰래 흐르는 눈물을 닦아 주는 괜찮은 변호사가 되고 싶다는 그의 말처럼 인간에 대한 신념과 희망으로 외롭고 가슴 시린 사람들에게 ‘좋은 이웃’이 되기 위한 그가 우리 대능인이어서 행복하다. 그로 하여 우리 대능인이 행복하다.

                                                   취재 글 : 심형수 간사(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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